내가 생각하는 대학서열은? : 중동경/시외건
동국대 철학은 역사와 전통이 100년 이상된 가장 오래된 철학 입니다.
이는 동국대(1906년 개교, 구 혜화전문)가 고대(1905년 개교, 구 보성전문)와 더불어 역사와 전통이 가장 오래된 대학이고,
또한 동국대는 개교 당시 문사철로 시작한 인문학위주의 대학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경희대는 해방 이후에 개교한 학교로 신흥초급대학이 그 전신입니다.
[동국대 역사]
1906 명진학교 설립 개교
1930 중앙불교전문학교 개칭
1940 혜화전문학교로 개칭
1946 동국대학으로 승격 개편
1953 동국대학교(종합대)로 승격 개편
[경희대 역사]
1949 신흥초급대학(2년제)으로 가인가로 설립
1952 4년제 대학으로 승격
1955년에 신흥대학교
1960 신흥대학교를 경희대학교로 교명 변경
어디 대학 가는 게 정답입니까?
결과보기 기간 : 2010.08.05 ~ 2010.08.11 | 참여자수 : 42 명
동국대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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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24표) |
경희대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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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8표) |
시대별 각대학의 전성시대를 말해보면...
여기선 스카이를 제외하고 웨딩스쿨인 여대는 제외한다.
주위 조언과 각대학에서 발행하는 XX대학 00史를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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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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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 동대더러 3대사학 어쩌고 말이 많은데 이 시기에는 정확한 사실이다. 서울대나 고대교수가 썼던 회고록에도 잘 나와있다. 일제시대에는 중앙불전으로 해방직후에는 혜화전문학교와 동국대학으로 승격되었는데 서울사대 나온 우리 교수가 한 말에 의하면 국문이나 철학,사학같은 순수인문분야와 정치학은 혜전-동대가 연희대학(현 연세대)보다 더 쳐주는 분위기였다한다. 문인의 배출숫자가 연고대 합친거보다 훨 많다고 한다..실제 50년대 학번의 정치학과가 정계에 진출하는 70년대 정치인 명단에는 동대인물이 많이 보인다. 당시는 불교재단이 빵빵해서 6.25 전쟁때 동대는 임시학사를 당시 재정이 상당히 어려웠던 신흥초급대학(경희대 전신, 초급대학은 지금의 전문대다)과 국학대학(고대 의대의 전신)에 무료임대를 해 주었고 56년도에 고대가 큰 경영난이 있자 동국대에 자금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60년대 이후에는 연극영화와 경찰행정이 뒤를 이어가고 있다... 이 당시 경희대는 앞에서 밝힌바와같이 전문대였고 한양대도 동아공과초급학교... 역시 전문대였다. 서강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음.
60 ~ 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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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와 경희대 -> 중앙대가 급부상 하였다. 외국선교단체로 부터 많은 자금을 확보하여 당시 대학도서관중 최대규모이던 도서관을 건립하고 똥값과 다름없던 흑석동에 큰 부지를 마련하여 전기대에 위치했다. 당시 전기대에선 스카이 다음이었다 한다. 게다가 59년에 만든 연영과와 지금의 한림대학인가? 거기도 중앙대 소유였고 서라벌예술대학을 합병하여(언제합병한지는 몰겠다. 이 이후일 수도 있다) 예술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제,경영계열이 유명했다.
경희대는 60년대에 동국대가 인수를 포기한 동양한방병원을 인수하여 한의대의 기초를 마련하고 60년대 전문대(신흥초급대학)를 벗어나 드디어 "경희대"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 새로운 이사장은 이북출신인데 월남한 이북출신의 자금을 많이 확보하여 지금 예쁘기로 소문난 경희캠의 마스터 플랜을 실행하기 시작함. 이제 서서히 한양대가 경제발전과 함께 공과대를 중심으로 발전을 시작한다.
70년대 중반~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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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서강대-> 서강대는 신설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예수회 소속의 엄청난 자금과 함께 서강대 발전의 중요한 기초를 마련한 박통의 딸 박근혜가 입학을 하게된다. 박통은 버스 2대를 기증하고 뒷돈도 많이줬으며 외국의 대학경영 시스템을 도입하여 단기간에 급속한 발전을 했다. 한양대가 경제발전을 위해 공과대 인맥을 배출한데 비해 서강대는 이론이 되는 경제학쪽에 인물을 배출하여 이른바 "서강학파"가 생긴다.
한양대는 뛰어난 경영능력을 자랑하는 김연준씨의 지휘아래 대학경영의 추진력을 발휘한다. 당시 역시 "왕십리 똥파리"라 하여 아무도 보지 않던 왕십리 땅에 건물을 짓고 각 대학에서 교수들을 초빙하는등 힘을 쏟았다. 전통의 공과대와 법대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여 드디어, 78년 법대 신화의 원년이 된다. 프레지던트 호텔등 수익사업도 만땅이었다. 이때 단국대도 이른바 "사시단대"로 한때 사시합격자 수가 중대를 꺽기도 한다.(하지만, 이때에는 뽑는 인원이 워낙 적어 그리 큰 의미는 없다)
80년대 중반 ~ 90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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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 이시대에는 특별히 튀는학교도 가라앉는 학교도 큰 차이가 없지만, 건대가 법과 상경을 중심으로 반짝했다. 건대는 않좋은 말로 하면 수재를 사는것이오, 좋은말로하면 전액장학금을 십분 발휘하여(59학번인가? 지금 국정원장도 이 장학생 케이스다) 당시, 상경계열로 들어와서 사시에 합격하는 건대사람이 꽤 많았다. 필자가 이때의 법조인 연감을 보니 확실히 건대가 많아 보였다.
9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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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 삼성이 재단을 다시 맡으니 좋긴좋은가 보다. 삼성이 맡기전엔 특히 수원공대는 황량하여 엄청 인기가 없었다. 그리고 이전 재단인 봉명재단은 엄청 무능해서 당시 80년대 학번인 불문과와 문헌정보과 분의 말에 의하면 이 봉명재단은 연탄을 주로 만들었는데 그래서 학교에 넘처나는건 조개탄 뿐이었다 한다. 유리창이 깨져도 안바꿀 정도... 다 떨어져가던 석조관을 허물고 그 자리에 6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한 때도 이때이다.
첫댓글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데
경희가 동국을 잡대로 취급하면 되겠냐........... 서열은 변하는 거지 10년 단위로 변하더만........선동호가 좀 심했다........난나나123 하고^^
경희철학 붙고 동대 철학 떨어진 자료가져와봐 ㅋㅋㅋㅋㅋㅋㅋ 눈팅했으면 캡쳐 했을거 아냐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넵^^
[경희대 백과사전]
1949년 이전에 해방과 함께 등장한 배영대학관과 신흥전문학관이 대학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데다, 또한 경영난에 처하면서 두 학교는 1949년에 재단법인 성재학원의 설립과 함께 이시영 박사를 중심으로 신흥초급대학(2년제)의 가인가 설립을 통해 상황의 타개를 꾀하였다. 그러나 학교 경영의 어려움과 함께 두 차례의 사기로 인해 학원 경영이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자, 1951년 5월 18일에 조영식이 1,500만 원의 부채를 모두 상환하는 것과 함께 재단법인 성재학원을 인수하기로 하였다. 이 5월 18일은 현재 경희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이자, 이후 경희대학교가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반환점이 되었다.
그래서 뭐 임마...보다보다 이젠 별걸 가지고 지롤이네...남의 대학 역사 함부로 들추면서 까불지 마라.
이 ㅅㄲ 보자보자 하니까 수인한도를 넘어갈려고 그러네...훌짓이면 훌짓답게 인풋-아웃풋 가져와서 적당히 하고 가, 임마.
동국대 여기서 저평가고 '삼국대 운운'하는 거 듣기 싫어서, 나름 나도 동국대 입장에서 변호하려고 하는 사람이지만,
이건 뭐 적당히 좀 해야지, 여기가 늬 혼자 노는 뒷뜰이냐?
늬 덕분에 동국대 안티 늘어나는 소리는 안 들리냐? 다른 동국대 애들은 안 그러는 것 같은데, 혼자 날뛰고 있어...--
동국대 좋은 소식있으면 그거나 전하고 가...남의 학교 역사까지 함부로 입에 올리면서 깝치지 말고...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