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잘 못한다. 물론 글을 잘 쓴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말보다는 글이 편하다.
글은 생각할 시간이 있고 고쳐 쓸 여지가 있지만 말은 쏟은 물과 같아 주워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생각의 양은 많으나 생각의 깊이가 덜하여 말을 조리있게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예전엔 장자의 득어망전(得魚忘筌)이나 왕필의 득의망상(得意忘象)이란 말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 사람의 뜻을 얻었다면 그 사람의 표현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달을 보았으면 손가락쯤이야.
그래서 문질빈빈이란 말은 부담스럽게 여기고 노자의 대교약졸이란 말을 더욱 찾게 되는 것이다.
시지프 신화는 빌려온 책이고 시지프스의 신화는 예전부터 집에 있어온 책이다.
오늘 두 책을 펼쳐두고 양쪽을 오가면 앞부분을 정독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 확실하다.
똑같은 책을 번역했음에도 이렇게 느낌이 다르고 이렇게 이해의 정도가 다르단 말인가.
왼쪽 책은 맘에 쏙 드는데 오른쪽에 있는 책은 갖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승질이 난다.
그 이유가 내 마음(재정)의 문제인지 출판사의 문제인지 역자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들이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의 문제일 공산이 무지 크다.
자살하면 떠오르는 낱말이 노무현,최진실 등도 떠오르지만 이 책이 떠오를 때가 가끔 있다.
까뮈는 부조리를 테마삼아 자살이니 희망(철학적 자살,회피)이니 반항이니 그런 말들을 했다.
참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들이고 좋은 말이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삶은 무정하게 그대로다.
......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각 책의 똑같은 지문을 쓰고 번역의 차이와 중요성을 나름 비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기분도 시간이 지나니 덧없이 느껴졌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각자의 몫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정당함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소신을 밝혔을 뿐인데
책한권 값을 지불했다는 본전생각에 쉽게 그 책을 비판하려 들다니 가히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인연이 있다면 사람도 그 인연따라 갈 것이고 책도 인연따라 그 영고생사를 다 할 것이 분명하다.
첫댓글 전 글보다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인간관계가 잘 되어가는것도 아니더라고요.
글을 잘쓰는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특히 소설가.
번역의 문제 역시 인문학 전반에 걸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을 통해 그 책의 사상을 전달하기도 하고 번역이라는 틀을 통해 상상의 지평을 넓힐수도 좁힐수도 있는 문제인데 단순히 활자만 옮긴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세계명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볼 때는 미리 번역본에 대한 정보를 챙겨보는 편입니다. (사실 그래서 명작을 잘 안 읽게 되기도 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등의 책들이 있어서 참고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번역에 대한 인식이 바뀐지 얼마되지 않아 폭 넓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점은 여전하죠.
그런면에서 김화영교수의 존재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이 인문학의 문제라고 말한것과도 연결되는데요. 김화영교수가 까뮈를 전공하고 까뮈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계신분이기 때문에 까뮈의 책에 대한 번역이 남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시지프스 신화는 김화영교수 왈 까뮈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까뮈의 책을 볼 때 항상 시지프스 신화를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좋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좋은 책 많은 추천 부탁드릴께요.
아~ 번역이 그렇게 중요한 거였군요! 제가 놓친 번역본도 혹시 그 이유는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덕분에 변명이 하나 더 늘었네요ㅋㅋ) 제가 놓친 몇몇의 책 중 다른 번역가가 쓴 책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번역은 반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