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시절 내무반에서 TV를 보다가 깜짝놀랐다
나의 아버지가 낯선 청년과 껴앉는 장면과 함께
34년만의 숙부상봉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는 해방전 함께 서울에 유학왔다가 징용되어
이북고향으로 돌아간 큰아버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사촌형이 되고 형에게는 호적상 한살아래인데
호적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었다. 형은 그게 내내 억울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년후 사촌형은 부모를 버리고왔다는 죄책감으로
경북 영주로 내려가 양로원을 운영한다고 마지막 성묘를 우리형제와
함께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점심먹으며 내가 솔직히 왜내려왔냐고 물었다.
사촌형은 상관과의 갈등때문에 부대를 옮겼는데 그곳까지 따라와 큰일이 생겼고
남한에 작은 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생각나 철책을 넘었다고 했다.
그런데 형이 갑자기 사촌형에게 너라고 부르며 말다툼이 생겼다.
큰 싸움으로 비화되지는 않았지만 그후 서로 연락을 안하고 지낸다
오늘은 17년전 미국으로 이민간 처형부부가 귀국하여 동생을 만나러
아산까지 내려온다하여 잠시후 1시에 온양시내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식사후 우리집에 왔다가 방을 잡아놓은 인천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처형네는 아들 둘다 미국연방공무원으로 취직했고 동서도 큰 회사 매니저로
근무하며 미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것으로 보인다
동서는 아버지의 고향선배 아들로 사실 나보다 한살아래지만 결혼초에
장인이 형님이라 부르라 해서 지금도 형님이라 부르고 있다
얼마전 수필방에 아내의 얘기를 올린적이 있는데 아내에게는 언니가 부모같은
존재이다. 둘이서 카톡전화로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누고 또 잘싸우기도 한다.
나도 올여름 부모님산소 호국원이장때 20여년전 폴란드로 떠난 동생을
10년만에 만났다. 그리고 우리집에서 며칠 머무르며 경치좋은곳 몇군데
같이 다녔는데 폴란드로 돌아간후 잘도착했다고 카톡한번 오고
또 연락이 않된다. 그저 건강히 잘살기만을 바랄뿐이다
첫댓글
그렇지요.
'그저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에
마음을 같이 합니다.
그 사촌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숙부를 만나서 그산님을 만나게 되었고,
여자 형제는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를 두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런 것 같습니다.
엄마가 계시지 않으니 더욱 언니가
부모처럼 소중하지요.
대체로, 부모 슬하의 형제들은 정이 오고 갑니다.
각자 결혼해서는 자신의 식구들 챙기느라
부모님 가시고 나면 세월따라,
형제들과도 뜸해지는 것 같습니다.
Try to Remember 잘 듣고 있어요.^^
넵 방장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제 서로 장성하여 70을 눈앞에 둔 나이에
서로 연락안해도 그저 잘살고 있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아내를 보면 언니와 그리고 언니같은 작은 엄마,
고모와 거의 매일 전화하고 지냅니다.
정작 자신의 딸과는 전화를 거의 안합니다
아내말로는 딸이 저를 닮아 아주 퉁명스럽다고 합니다 ^^
올려드린 노래는 부드럽고 듣기좋아 자주 듣습니다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는 친척들이군요.
모두 현지에서 자신의 몫을 잘 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처형부부와 용인 장어집에서 헤어지고
조금전 집에 왔습니다
그산님의 가족 이야기는 평범하지는 않은데
그산님은 그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시는것
같습니다 .
저도 오빠들이 늘 먼저 연락을 해 옵니다 .
이렇게 소통하기 좋은 세월에 무심하게
사는 저를 반성 해 볼때도 있습니다 .
제가 좋아하는 노래여서 고맙게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시절에 참어울리는 노래라 올려봤습니다
처형부부가 오랜만에 귀국해 온양에서 만나
우리집에서 쉬었다가 다시 용인까지 가서
저녁먹고 헤어져 조금전 집에 왔습니다
카톡이 있어 생각나면 금방 금방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삽니다. ㅎ
반갑습니다
카톡이 생겨 국제전화안걸어도 되고
참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
제가 혼자 자라면서 외로웠기 때문에, 제 딸들은 외롭지 말라고 세 자매를 낳아줬어요.
우리 죽어도 서로 의지하며 살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언니와 동생이 서로 챙기는 모습이 진짜 흐뭇합니다.
저는 자랄 때보다 결혼 후에 더욱 의지할 동기간 없음이 힘들었거든요.
달항아리님 반갑습니다
따님들은 외롭지 말라고 세자매를 만들어 주셨군요
제딸은 무남독녀에 비혼주의지라 우리가 죽고나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됩니다
오랜만에 미국에서 언니와 아내는 온양에서 점심먹고
헤어지기 싫어 우리집에서 쉬었다가 용인 장어맛집까지
9시넘어 헤어져 조금전에 집에 왔습니다 ^^
네 3명 대단합니다.
애국자 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
離散(이산)**은 ‘서로 떨어지고 흩어짐’ 라고 하니 아버님도, 그산님도, 아내분도 이산가족이군요. 조금은 서글프군요...
산책길은 수원 광교산의 경기대 쪽 시작길과 아주 비슷하군요. 소나무도 많고, 산책하기에 아주 좋아 보입니다. 좋은 뒷산을 가지셨군요.
여기는 저의 산책로 숭인근린공원(동망봉)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내는 언니와 1시에 만나 용인에서 21시 넘어서
헤어지고 조금전에 집에 왔습니다. 이제 다시 만날래면
몇년지나야 되겠지요. 경기대 뒷산 산책길이 아주 잘되있네요
우리집 뒷산은 133m에 불과하지만 있을건 다있습니다 ^^
우리는 칠남매
단톡방 만들어서
가끔 안부 정도 나누고 사는데
바로 아래 여동생이랑
자주 연락을 합니다.
재매들끼리는 더 다정하게
정을 나누고 살게 됩니다.
반갑습니다
제아내는 미국에 사는 언니와 달랑 둘인데
카톡으로 자주 대화합니다
오늘 두자매가 헤어졌으니 이제 또 몇년 지나야
만날수 있을것 같습니다 ^^
그러네요 작은아버지가 살고 계시다는
이야기에 철책을 넘어 온 사촌형.
엄마같은 언니와 가끔 추닥거리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여행 온 처형 부부.
그리고 폴란드로 다시 가서 연락두절 된
동생. 이산가족 상봉은 했지만 이산가족
이기에 또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나봐요.
그나저나 폴란드에 계신 동생분 연락이
되어서 노후에 한국에 살면 그산 님도
동생도 넘나 좋은텐데요.
"타향도 정이들면 고향이란" 유행가 가사가
왜 떠 올랐을까요.
나무랑님 반갑습니다
사촌형은 카톡이 있어 맘만 먹으면 저와 대화할수 있는데
아직은 안하고 있습니다. 동생은 폴란드로 귀국했다는 소식한번
전해주곤 그다음부터 또 연락두절입니다. 그냥 잘있을거라 생각하고
살아야 되겠지요. 아무래도 여자형제들간의 우애가 더 깊은것 같습니다 ^^
긋참...한가족사가 전국민의 이주사구먼요...
군내무반에서 본 티비에서 아버지의 등장이라,,,그야말로 드라마군요...
어찌보면 디아스포라같은 가족사입니다
아버지는 6.25에 참전하여 고향근처까지 갔는데
아무도 못만났다합니다 통일되면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술한잔 올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
습니다
TV에서 아버지와 낯선 청년과의
포옹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가족들.
그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애틋했을까 싶네요.
저도 내일 친정 형제자매를 만나러
모처럼 친정 선산에 갑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산소에서 잠깐
예배 드리고 근처에 있는 맛집으로
가기로 했기에 그산 님의 글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베리아님 반갑습니다
저녁먹고 내무반에서 TV를 보다가 아버지가 나오신 걸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남자형제들은 장성하면 제사나 성묘 등
특별한 일없으면 거의 연락을 안하는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리고 내일 성묘잘다녀오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