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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채동석회장님제공]
등불
나로 인해 작은 촛불처럼 만이라도
주위가 환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인생일까요?
어느 날, 테레사 수녀 (Mother Teresa)는
한 노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집 이라기 보다 움막이라고 해야 좋을 그런 형편없는 곳이었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온통 먼지투성이에다 이불이나 옷가지들은 몇 년 전에 빨았는지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헛간 같은 방에서 노인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방을 치워 드리죠."
노인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당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닥을 쓸어내고, 먼지를 털어 냈습니다.
옷가지는 빨아 널고, 더러운 곳은 모두 소독했습니다.
그렇게 청소를 하다가 방구석에서 조그만 등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먼지에 뒤덮인 낡은 것이었습니다.
"이 등은 뭐죠?"
"손님이 오면 켜는 등이라오."
테레사는 등을 닦으면서 노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별로 켤 일이 없는 모양이죠?"
"몇 년 동안 한 번도 켜지 않았소.
누가 죽어가는 늙은이를 만나러 오겠소."
노인은 가족도 없이, 또 찾아오는 사람도 하나 없이 그렇게 쓸쓸히 살아왔던 것입니다.
노인은 먹을 것 보다 사람이 더 그리운 듯했습니다.
이윽고 테레사가 말했습니다.
"제가 자주 오겠어요
그러면 저를 위해 등불을 켜주시겠죠."
"물론 켜고 말고요,
오기만 한다면야..…"
그 이후, 테레사는 자주 그 노인의 집에 가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지 못할 때는 동료 수녀를 대신 보냈습니다.
이제 노인의 방엔 거의 매일 등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노인은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늘 찾아와 집안 일도 해주고, 이야기도 해주는 테레사 수녀와 동료 수녀들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노인은 편안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노인은 죽으면서, 마침 곁에 있던 어떤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에게 꼭 전해주시구려.
테레사 수녀는 내 인생에 등불을 켜준 사람이라고..."
누군가의 등불이 되어준다는 건!
이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삶이 또 있을까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뿌릴 때, 자신에게도 몇 방울은 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우리의 이웃을 행복하게 하도록 노력한다면,
그러면 행복의 향기가 내게로 돌아와 나도 그 향기에 젖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인생이지만,
보다 더 값지고,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길에 설 수 있다면 이것이 보람된 인생이 아닐까요?
나로 인해 작은 촛불처럼 주위가 환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인생일까요?
어느 곳, 어떤 자리에서든지 등불과 같이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그런 삶 살았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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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보는 법
미국 LA에 살고있는 청년이 학비를 벌기위해 여행 가이드를 했다.
어느 날 그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단체 여행객들의 안내를 맡게 되었다.
청년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여행단장이 말했다.
“절대로 우리를 장님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보통사람들에게 하듯이 안내해 주십시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청년은 여행객들에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평소처럼 안내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저 푸른 바다는 태평양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저 산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할리우드입니다.
언덕위에 쓰인 영어 간판이 보이시죠? 할리우드, 그렇습니다. 저곳은 저 유명한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영화의 본고장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청년의 안내에 따라 차창의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끄덕였다. 자기들끼리 손가락질을 하면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은 시각장애인들이 일부러 장님 흉내를 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들은 분명히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일주일의 여행기간이 끝나자 시각장애인들은 청년에게 다가와 악수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정말 좋은 관광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 최인호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일화이다.
사물을 보려면 눈이 필요하다.
하지만 눈은 물체의 상이 통과하는 렌즈일 뿐이고, 사실 물체를 보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딴데 있으면 눈으로 대상을 보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에는 ‘심부재언 시이불견 (心不在焉 視而不見)’이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우리가 관심(關心)을 두지 않으면
사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관심은 어떤 것에 마음을 두고 주의를 기울이는 준비단계이다. 그런데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마음으로 보는’ 관심(觀心)의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부처가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는 제자 아난다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 “부처께서 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쥔 모습을 봅니다.” “무엇으로 보느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난다야, 눈은 다만 대상을 비출 뿐
이고, 보는 것은 마음이니라.”
진짜 세상을 보려면 바깥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강조한 것도 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마음으로 보는 법을 알려준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동화작가 정채봉은 ‘오늘 내가 나 자신을 슬프게 한 일들이 뭐가 있을까’ 하고 돌아봤더니 이런게 떠올랐다고 했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버린 일.
새소리에 무심하게 응대하지 않은 일.
밤하늘의 별들을 세지 못한 일.
정채봉이 세 가지를 꼽았지만
우리들이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가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늘의 조각 구름,
황금빛 저녁놀,
푸르스름한 산 기운...
영혼을 파고드는 눈앞의 풍광에 무덤덤하다면 우리는 눈뜬 장님일 것이다.
새의 노랫소리에 아무 감흥이 없다면 영락없는 귀머거리일 것이다.
- 배연국 / 세계일보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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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겨울의 시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 옮긴 글 -
비움달 12월에 만난
박노해의 시가
우릴 따뜻하게 한다
추운 겨울에 우린
한편의 시로도
이렇게 훈훈할 수 있는데
무얼 그리 움켜잡으려고
분주한가
마음을 비우면
외로운이들이 보이고
몸을 비우면
가난한 이웃들이 보인다
위대한 시인의 탄생은
참으로 놀랍다
할머니의 그 따뜻한 마음에서
시인의 시는 시작되고 있었구나
12월엔 안부라도 묻고 살자
정신없이 살다가 덜커덩 서면
얼마나 아쉽겠나
그리운 사람은 만나자
12월이 다 가지 전에
그리운 사람은 안부를 묻자
잘 지내냐고
아프진 않냐고
제발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고...
'박노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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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을 기리며 -
이은상 선생하면 먼저 가곡 '가고파'와 '사우(동무생각)'가 떠오릅니다.
나는 한국 가곡 중에 특별히 "사우"(동무생각) 와 "가고파" 를 좋아합니다.
친구를 그리워 하는 절절 마음을 그린 두 노래 모두 우리시대 (1960년 고등학교 졸업)의 음악 교과서에 실렸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은상의 작시 입니다.
멜로디도 좋지 만, 고향과 동무들을 그리위 하는 그 마음 절절한 가사가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중에 "가고파"는 젊은 시절, 제주 바닷가에서 발성 연습겸 자주 부르던 노래 였습니다.
↪️가고파
(1) 내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2) 어릴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3)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가 돌아가.
(4) 가서, 한데 얼려. 옛날 같이 살고 지고.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갈까 찾아가.
사우(思友)는, 이은상이 22세 때 그리고 가고파는, 29세 때 만든 시라고 합니다.
옛날 친구가 누구보다도 더 그리울 나이인 80이된 지금도 그렇게 절절한 그리움의 표현을 할 수가 없는데 20대에 그런 시를 발표한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이 순수하고 따뜻하기에 가능했겠지만 그의 천재성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고파 시를 읽으면서 또 노래를 하면서 우리글 한 글자가 이렇게 중요한 역활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에서 이은상은 '그'라는 글자 한자를 사용하므로 노래를 부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어릴적 고향, 그리고 친구를 더욱 그리워 하게 만듭니다.
파란물 대신에 '그' 파란물 입니다.
잔잔한 대신에 '그' 잔잔한 입니다.
물새들이 아니라 '그' 물새들 입니다.
동무들은 '그' 동무들이고
눈물 없던 때가 '그' 눈물 없던 때입니다.
'그' 자를 빼고 읽으면 감정이 반감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 유학시절 해서 황해도 수재라 불리던 양주동과 마산 수재로 불리던 이은상과의 기억력 시합 일화를 본인의 수필 <양주동과 우수 마발> 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한때 그는 마산의 천재로 불리우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가고파 시비는 마산의 돝섬 해상유원지, 마산여객선 터미널, 양덕동 수훈공원, 자산동 통일동산 그리고 창신대학등에 서 있다고 합니다.
노산은 시 2,000여편, 열사들의 비문(碑文) 200여편, 그리고 50여 권의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문인(시인)으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은상이 대한민국의 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한 애국자라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해방후 많은 문인들과는 달리 노산은 체제내에서 정부를 도와 정부시책(문화적 측면)을 이끌어 가면서, 때로는 비판도 하면서 적극적 활동을 하는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하였습니다.
재야에서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아무말로 애국하는 길보다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체제내에서의 애국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결정입니다.
이것이 내가 노산한테 마음이 끌린 이유중 하나입니다.
그는 1945년 광주에서 호남신문을 창간하여 1945년 겨울 <이충무공 일대기>를 연재 했으며 우리나라 신문사상 최초로 가로쓰기를 체택했고 1946년 8월에는 미 군정을 비판하는 기사로 신문은 2개월간 정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호남신문사 사장시 발간한 그의 수필 '대도론(大道論)'에서 '북에는 소병(蘇兵)이, 남에는 미국이 제각기 딴전을 피우고 있다'라고 밝힌바 처럼 해방 직후의 노산은 김구 계열의 민족 주의자였습니다.
그러던 그를 반공 운동에 헌신하도록 한 것이 6. 25 전쟁이라는 동족 상잔의 민족적 아픔이 었습니다.
그는 1962년 6월 25일을 전후하여 휴전이 길어 지면서 휴전선이 아닌 국경선으로 굳어져가는 동서 155마일(약240km,) 을 10일간의 일정으로 답사하였습니다.
서쪽 끝 강화 교동도에서 동쪽 끝 강원도 명호리 까지 약600리를 답사하면서 국토의 분단에서 비롯된 상실과 아픔, 민족이 처해있는 비극에 대한 울분을 글로써 표현하여 '피어린 600리'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59세때 일입니다.
휴전선을 다녀온 후 노산은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정으로 반공 청년 애국운동에 압장섰습니다.
그는 제2대 청우회 회장이 된 후 1965년부터 죽을 때 까지 17년간 계속 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그는 청우회야말로 휴전선을 걷어내고 통일 조국의 미래를 건설하는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60세에 과감하게 반공 운동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1967년 거행된 민족 문화협회 창립 2주년에서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노산은 죽기 2년 전인 1980년, 그의 나이 77세 때 두번째 휴전선 종주를 했습니다.
기원이란 시집의 서시(序詩)에서
"지금 내가 왜 굳이 험하고 어려운 이길을 가나/
역사를 넝마 조각처럼 찢어놓은 분계선 가시철망/
구름도 거기 찔리면 피가 흐르는 길인데/
그래도 나는 가야지 가시철망 내앞길 가로막으면/
나는 거기서 시를 읊고 노래가 끝나면 통곡하고/
하늘 끝 땅끝까지 슬픈 소원을 외치련다"라고 하였습니다.
분단 고착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소원을 외친 것 입니다.
그는 청우회 운동과 함께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일깨우는 사회 개혁운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다.
5,16혁명을 일으킨 후 국가재건 최고위원회 의장에 취임후 국민 정서 통합을 위해 고심하던 박정희에게 노산은 박정희의 정치 이념의 상징인물로 충무공 이순신을 강력히 추천 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애국 애족 정신을 높이 평가하던 박정희는 이를 적극 수용하여 천안 현충사 성역화에 힘을 기울였으며 이에 더하여 노산은 박정희 와 함께 세종대왕, 신사임당 등의 유적지와 경주지역을 성역화 하는등 우리 문화의 창달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우리 문화 창달에 의기가 투합한 박정희 대통령과 노산은 헬리 콥터를 동승하고 다닐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고 하며 당시 문화예술인 중에 청와대를 무시로 드나들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이 노산 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 동학혁명 기념 사업회 이사,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장,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 회장, 독립동지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1982년 향년 79세로 노산이 타계 했을때 장례위원장이 백낙준 이었으며 박순천, 윤보선, 최규하등 장례위원만도 2,549 명에 달했습니다.
그는 동작동 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가 이룩한 훌륭한 업적과 그의 애국정신은 길이 길이 남을 것이며 그의 시 "가고파"도 영원히 사랑 받고 기억될 것입니다
/황 정구
🎶가고파/박인수
https://youtu.be/RVMO7R6RVSU?si=R7TpJpicXbS30F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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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노숙자에게 잔돈을 탈탈 털어준 여성. 💕
집에 온 뒤, 지갑을 확인한 그녀는 뒷목을 잡았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사는 노숙자 빌리(Billy Ray Harris)는 2013년을 잊지 못합니다.
비록 누추한 차림의 노숙자였지만,
누구보다 선한 마음을 가진 빌리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해였으니까요.
그해 어느 날, 사라(Sarah Darling)는 거리에서 구걸하던 노숙자 빌리를 보고 그에게 적선했습니다.
동전 지갑을 열어 그 안에 있던 동전을 그의 앞에 놓인 컵 안에 모두 쏟아주었죠.
몇 시간 뒤,
집에 돌아온 사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습니다.
동전지갑에 넣어둔 약혼반지까지 빌리에게 모두 털어준 것입니다.
당황한 그녀는 급히 차를 몰고 빌리를 만났던 거리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죠.
그사이 빌리는 보석 가게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컵에 들어온 반지를 보고는 진짜인지 궁금한 마음에서였죠.
보석 가게 주인의 말을 들은 그는 깜짝 놀랍니다.
그가 받은 반지가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그 자리에서 4,000달러(약 480만 원)을 줄 테니
반지를 팔라고 말했습니다.
빌리는 순간 갈등했습니다.
그 돈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한 거리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던 그는 결국 반지를 돌려받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다음 날,
사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빌리가 있던 자리를 다시 찾았습니다.
빌리는 그곳에 있었죠.
사라는 초조하게 그에게 다가가 자신을 기억하는지 물었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빌리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사라에게 주었습니다.
사라와 그의 남자 친구는 정직한 빌리에게 크게 감동했고,
곧 빌리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마다하고 반지를 돌려준 한 노숙자의 사연은 금세 화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죠.
모금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무려 2억 3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모였고,
빌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의 도움으로, 빌리는 16년 동안 연락이 끊긴 형제들과도 재회했습니다.
빌리가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형제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얼싸안았습니다.
아름다운 선행이 불러온 훈훈한 결과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비록 거리를 전전하던 노숙자였지만,
빌리는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매우 멋진 분이네요.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그의 힘찬 앞날을 응원합니다.
차원은 다른 이야기지만 정직과 양심의 실마리는 공통으로~
돈의 욕망과
악마의 탈을 쓴
정치계, 국회의원, 법조계,
높은 자리에 있는 자 들!
윤리와 양심은 한줌의 실마리도
찾아 볼 수 없다.
열심히 사는
국민들이 무섭지 않느냐?
너희들을 믿고
나라를 맡긴 국민의 울분,
천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신이시여!
이 나라를 굽어 보시어
썩어있는 정치계, 국회, 법조계가
하루 빨리 쇄신되어
새로운 나라로
도약 할 수 있게 하소서.
👍옮긴글........
오늘도 당신은 좋은일만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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