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혼불』의 저자, 최명희의 작가정신
[1]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남들은 한 번 쓰고 나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일필휘지가 갖고 있는, 한순간에 우주를 꿰뚫는, 정곡을 찌르는 강력한 힘도 좋지만, 천필만필이 주는 다듬어진 힘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일필휘지가 천필만필을 겪으면서 애초보다 더 편안하고 표가 안 나는 것이다. 그러나 고칠 때마다 오히려 때가 묻고 삐걱거린다면, 차라리 고치지 않는 게 더 낫다. 마치 십오 년 전에 떨어져 나간 손가락을 주어다가 접합수술을 하는데 하나도 표 안 나고 잘 붙도록 매 순간 기도하고 전심전력을 기울인다.
[2] 국어사전을 시집처럼 읽다
겨울이니까 삭막한가……? 삭막? 삭막은 아니고 싸늘하잖아요. 적막? 적막하기는 한데 적만만은 아니고…… 막막한 것도 아니고. 초연한가? 초연은 좀 축축해요.
초연하다, 우연하다, 적연하다…… 온갖 ‘연’은 다 써봤어요. 시험 볼 때 줄긋기 있잖아요? 그것처럼 다 갖다 맞춰 보는 거예요. 수십 개를, 그럼 혹시 삭연이라는 말이 있을까? 사전을 찾아보니까 있는 거 있죠.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너무 좋아 가지고.
어느 경우에는 제 몸 속에 고여 있던 말이 음악처럼 (나오고,) 금광의 금싸라기처럼 캐내(지)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수학 문제를 풀듯이 수십 개를 늘어놓고 조립하기도 하죠. 그것이 맞아 떨어질 때는 정말 황홀하고 아름답고 이 말을 막 소문내고 싶고
*괄호 안은 옮기면서 추가한 것임-백
[3] 모국어는 모국의 혼,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느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解冤)의 눈물 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1990년 11월 21일 <소설 『혼불』 두 번째 출간본 작가 후기>에서
[4] 『혼불』에 나오는 아름다운 우리말들
가슴애피 감시르르 귀살스럽다 깔담살이 깨금발 다보록하다 무람없다 무작스럽다 발싸심 붙음키다 사운거리다 삭연하다 수굿하다 숭어리 쑤실쑤실 아리잠직 아슴하다 암상스럽다 엄부렁하다 엉버티다 오련하다 오보록하다 욜랑욜랑 울멍줄멍 윽물다 잇바디 작달비 잡살뱅이 조리돌리다 조붓하다 중뿔나다 지견 찰찰이 쾌연하다 풍연 회술레 흡월정 …
[5] 가장 알맞은 단 하나의 표현을 위해…
2부 4권 15장 <박모(薄暮)>를 쓰는 중이었어요.
그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쓰고 싶은 대목은 하필 딱 겨울이었지요.
저무는 동짓달 눈 내릴 듯 흐린 날씨의 적막함, 스산하면서도 그립고, 그러나 단순히 스산하지만은 않은, 회색의 하늘이 뭔지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 같은, 침묵의 습자지 같은, 그걸 어떻게 써볼까……
신동아 마감 독촉은 빗발치고, 내일까지 안 가져오면 못 싣는다는 협박을 받으면서도 창문을 열고 사흘 동안 어둠을 노려봤지요. 아무것도, 꼼짝도 안 하고.
첫날은 공기가 버석거리더니, 둘째 날은 밀도가 농밀해졌고, 사흘째 되던 날, 비가 오려고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한기가 쫙 끼치는데 그대로 동지섣달 추위가 느껴졌어요. 그 탁한 여름 공기가 어느 저녁에 회색과 보라로 뒤섞이면서 푸른 비늘이 이는 걸 봤지요.
그 공기의 혼은 나의 정수리로 밀밀하게 흘러 들어와 감기었습니다.
그 길로 “날이 저문다.”하고 쓰기 시작했지요.
—1997년 <국립국어연구원 『혼불』과 국어사전 강연>에서
날이 저문다.
그렇지 않아도 진종일 낮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던 하늘은, 구름이 가린 볕뉘마저 스러지는 저녁이 되면서, 그 젖은 갈피에 어스름을 머금어 스산하게 어두워지는데.
하늘은 마치 아득히 펼쳐진 전지(全紙)의 회색 창호지 같았다.
아니면 담묵(淡墨)을 먹인 거대한 화선지라고나 할까.
검은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동짓달의 빈 천공(天空)에, 노적봉은 메마른 갈필(渴筆)로 끊어질 듯 허옇게 목메이며 스치어 간 비백(飛白)의 능선을 긋고 있었다. (중략)
검댕이와 적소(積素)가 얼룩이 져 어스름에 저무는 산의 모경(暮景)은 삭연(索然)하기 그지없다.
—『혼불』 4권 15장 <박모(薄暮>에서
[시 한 편]
최명희 씨를 생각함 / 이시영
최명희 씨를 생각하면 작가의 어떤 근원적인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9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중국 연길 서시장을 구경하고 있다가 중국인 옷으로 변장하고 커다란 취재노트를 든 최명희 씨를 우연히 만났다. 『혼불』의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이제 막 거기까지 왔는데 며칠 후엔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연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너무 바가지를 씌우는 바람에 그런 옷을 입었노라고 했다. 그날 저녁 김학철 선생 댁엘 들르기로 되어 있어 같이 갔는데 깐깐한 선생께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고 어찌나 퉁박을 주던지 민망해한 적이 있다. 그후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났다. 한길사가 있던 신사동 어느 까페였는데 고정희와 함께 셋이서 이슥토록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밤이 늦어 방향이 같은 그와 함께 택시를 탔을 때였다. 도곡동 아파트가 가까워지자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 "이형, 요즈음 내가 한 달에 얼마로 사는지 알아? 삼만 원이야, 삼만 원…… 동생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모두 거절했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고향친구랍시고 겨우 내 손을 잡고 통곡하는 그를 달래느라 나는 그날 치른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홀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하기 힘든 얘기를 내게 했는지를. 그러자 그만 내 가슴도 마구 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혼불』은 말하자면 그 하기 힘든 얘기의 긴 부분일 것이라고.
첫댓글 혼을 살라 글을 쓴 작가 최명희!
존경합니다.
작가 정신의 표본인 최명희님을 본받아야 하겠네요.
최명희님을 직접인터뷰하는 현장에 있는것으로 착각들만크 소름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