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석조전 / 안희연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밤의 석조전
낮에는 가본 적 있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선명했다. 기둥의 수, 창문의 투명도, 호위무사처럼 서 있는 나무의 위치까지도 돌인지 자갈인지 모래인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낮엔 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밤이어야만 했다. 백년 전의 사람들, 백년 전의 비, 백년 전의 쇠락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면
모든 돌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고, 나는 이 거대한 돌이 말하게 하고 싶었다.
티켓을 끊고 들어간 밤의 석조전은 인공적인 빛에 휩싸여 있었다. 야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밤의 석조전이 감추고 있는 밤의 석조전으로 들어가려면
눈은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열지못한다. 닫을 수 있을 뿐이다.
여러 겹의 달빛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한 사람이 눈을 감았다 뜨는 소리는 몇 데시벨일까. 꽃병 속에서 줄기가 짓무르는 소리는?
몇걸음 못 가 돌아봤을 때, 아닌 척 눈을 부릅뜨는 밤이 보였다. 실핏줄이 드러나 피곤해 보이는 눈이었다
― 시집 『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2024.06) ----------------------
* 안희연 시인 1986년 경기 성남 출생. 서울여대 중문학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12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당근밭 걷기』 2016년 신동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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