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들이 1년 사이에 일어났다.
나는 그 1년 동안 가진 것을 다 잃었다.
모든 것이 꿈같고 남의 일 같았다.
내 집을 잃고 돈이 없어 허덕이는 것도
억울한데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돈이
전부 내 빚이 되어 있는 기막힌 현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는 언니가 원망스러웠다.
내 말 한마디에 확인해보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돈을 투자한 사람들도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때부터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
언젠가부터 나는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갑자기 기분이 날아갈 듯 행복한가 하면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어딘가 숨고 싶었다.
느닷없이 가슴이 벌떡거리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창 밖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좁은 공간에 들어가면 곧 질식해서 죽을 것
같은 공포감 때문에 집안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만 인생을 끝내고 싶었다.
죽고 나면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아이들만 남겨두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정말 엉뚱한 생각이 스쳐갔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공부 때문에 생겼으니
공부나 실컷 하고 나서 죽자는 생각이었다.
있다가도 없는 것이 돈이고 잡는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물거품 같은 돈에 목매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바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한 번 공부에 필이 꽂히자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렸다.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고 고소를 당해 법원에
불려가면서도 시험 준비를 계속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한 끝에 둘 다 시험에
합격했다.
둘 다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었다.
우리는 캐피탈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마련했다.
빚은 갚지 않으면서 둘 다 학교를 다니는
우리를 보고 빚쟁이들이 사기꾼 취급을 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부처님과의 만남
박사과정에 들어간 후 여러 학교에 강의를
나갔다.
책도 여러 권 썼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남편도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했다.
그러나 빚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몸은 더 지치고 피곤했다. 또 다시 회의가 밀려왔다.
무책임한 언니와 미련한 나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았다.
현실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내가 쓰지도
않은 돈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다 아는 선생님의 소개로 강남에 있는 능원선원
불교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원래 무엇을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타입이었다.
고통의 해답을 얻기 위해 시작한 공부인 만큼
독하게 몰입했다.
기도를 하면 가피를 입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영험담에도 귀가 솔깃했다.
경전을 읽고 사경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절과 염불을 했다.
어느 새 나의 아침은 천수경으로 시작해서 절과 참선으로
이어졌다.
가끔씩 인연 있는 절에 가서 철야정진도 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난 죄는 언니가 빚을 진 것이지만
거기에는 나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개입돼 있었다.
언니를 통해 나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모든 결과가 나의 어리석음에서 온 사실을 인정했다.
모든 원인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불교는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언니에 대한 미움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못난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없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번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깨달음 뒤에도 수행을 계속하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로소 불교공부가 내 삶의 중심이 됐다.
이제 어떤 곤란을 겪어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공부에 더욱 속도를 냈다. 공부방에 모셔놓은
부처님 앞에 앉아 한참동안 염불을 하고 있으면
사방에서 향내가 날 때도 있었다.
염불을 하면 시방세계에 계신 화엄성중이 엄호해주신다는
가르침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나의 공부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선을 하려고 앉아 있으면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본 사람의 과거도 그림처럼 읽혀졌다.
때로는 꿈에 이름을 들었던 사람을 현실에서 직접 만날 때도
있었다.
부처님 시대에 여러 수행자들이 신통을 부렸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니었다.
점점 수행에 재미가 생겼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도
부처님처럼 천안통, 숙명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무당들이나 하는 짓인 줄 모르고 확철대오인 줄 알았다.
그러다 우룡 스님의 책을 읽고 그것이 절대로 수행자들이
빠져서는 안 될 마구니라는 것을 알았다.
부처님 법대로 사는 공부가 중요하지 귀신을 보고 신통을
부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하는 사람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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