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5분 거리인 시장에서 연꽃뿌리랑 토마토랑 사들고 오다, 길거리의 걸인한테 1원씩 2원씩 건네준다.
숙소로 돌아와 티베트 생활 넉 달 동안 먹고 싶었던 된장찌개 끓이고 깍두기를 버무린다.
바로 그때 일주일에 한두 차례 울리는 전화벨 소리.
"접니다. 전화도 안 되고 소식이 궁금해서요."
십 년이 지나도록 유학생활의 경비를 다달이 보내주는 동생의 목소리이다.
"이곳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건강히만 계시면 저희도 아무 걱정 없습니다.
안빈이는 원광대학교에 거뜬히 합격했고, 형재는 전주고등학교에 합격했는데 성적이 좋습니다."
몇 년째 한국의 경제가 땅바닥을 기고 있는데, 첫째와 둘째 조카의 합격을 알리는 들뜬 목소리,
마음이 아프다.
다달이 미국 달러를 받아서 쓰는 오십둘인 형의 그것도 출가 수행승인 형의 온갖 뒷바라지를 오십 된 동생이 맡고 있었다.
"개암통상에서 만든 죽염제품들이 국내 백화점과 공항 등의 면세점에서 나날이 잘 팔리고 있어
경제는 전혀 걱정하실 게 없습니다."
형 둘이 출가해 스님이 된 후, 동생 부부는부모님을 편히 모시는 효자 효부가 되었다.
가난한 친척과 친지들의 생활도 거들며 돈 나가는 일이 널려 있었다.
그런데도 동생부부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어두운 친척들에게 빛이 되려고 노력했다.
늘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전화를 끊고 깍두기를 버무리며 작년 5월에 가신 어머님의 봄날 같은 미소를 떠올린다.
곤명 날씨는 왜 이리도 나날이 봄날 같은지,
봄날 같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동생의 목소리가 엉키고 있어 깍두기 버무리는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왠지 모를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세상사 되돌아보면 몇 점 바람이요 허무의 그림자인데,
동생이랑 어머니랑 주일마다 예배당 가던 일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예배당에서 사탕 받아먹던 아이는 스님이 되어, 십 년째 깨달음을 향해 해외에서 순례 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