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럽네요
봄이 오는 길목인 이월 하순이다. 간밤까지 제주와 남해안에 봄을 재촉하는 비가 살짝 내렸다. 올겨울 하늘을 자주 뒤덮는 미세먼지를 가라앉힐 소중한 비였다. 겨울은 강수량이 적은 계절이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비나 눈이 적게 내린 편이다. 근교 산행을 나서보면 비가 얼마나 적게 왔는지 등산로에 폴폴 이는 먼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길바닥 가랑잎도 말라 부서져 바스락거렸다.
이월이 이틀 남은 목요일이었다. 길바닥이 젖어 산행이나 산책은 머뭇거려졌다. 아침나절 베란다의 다육식물 화본을 갈아주었다. 우리 집에 온지 십년 가까이 된 화분으로 그새 분갈이를 해준 기억이 희미하다. 플라스틱 화분은 햇볕에 삭아 퍼석퍼석 갈라져 새 화분으로 바꾸어야했다. 우리 집에 있는 화분은 달랑 네 개다. 그 가운데 지인한테 받은 소나무 분재가 최근 것이다.
점심 식후 산책을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려는 참이었다. 용강고개를 넘으니 대체 국도가 개통되어 진영 방향으로 진행하는 차량들은 시원스레 뚫린 도로를 달렸다. 마을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사무소 앞을 지났다. 주남삼거리에서 가월마을과 주남저수지 곁을 거쳐 대산 들녘으로 갔다. 가술에서 모산마을을 지나 수산교를 지났다.
대산 들녘은 온통 비닐하우스 세상이었다. 그곳 농민들은 벼를 거둔 뒷그루로 비닐하우스를 지어 수박을 가꾼다. 예전엔 농한기에 해당하는 겨울철 수박농사가 벼농사 소득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영농 기술이 나날이 진화되어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당도 높은 수박을 거두는 것으로 안다. 요즘은 농촌일손이 부족하면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도 농사인력으로 투입되는 모양이었다.
수산교대를 지나니 일동마을이었다. 그곳엔 초등학교와 주민 여가활용 시설인 운동장도 있었다. 1번 마을버스 종점은 상리마을을 지난 신전마을이었다. 신전마을에서 강둑 방향으로 나가니 강변여과수정수장이었다. 창원시민들이 먹는 식수원인데 강 둔치 모래밭에서 뽑아 올린 지하수를 정수하여 상수도로 공급하는 곳이다. 창원 사람들은 부산 사람들보다 깨끗한 물을 먹는 셈이다.
나는 틈나면 더러 강변여과수정수장 부근 강둑으로 산책을 나가는 편이다. 그쪽은 대중교통으로 시골 들녘으로 나갈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높은 산이 없는 들녘이지만 강변이라 공기가 아주 맑고 사방이 탁 틔어 좋았다. 들길이나 강둑길은 평탄하여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알맞았다. 간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매연 없고 인적이 드물어 마음에 들었다.
여기다 이맘때 들녘에 나가면 빈 배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두 차례 그곳으로 나가 냉이와 쑥을 캐어 우리 집 식탁에서 봄 향기를 맡은 바 있다. 간밤 비가 내려 강둑 잔디는 습기를 알맞게 머금고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가 농수로 곁에 완두콩을 심어 놓고 검불은 긁어 불태운 자리가 있었다. 볕바른 자리라 다른 곳보다 쑥이 먼저 비집고 돋아나 파릇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는 배낭 속에 넣어간 과도를 꺼내 쪼그려 앉아 쑥을 캐었다. 쑥을 캐는 데는 느긋함이 필요함은 경험자는 알리라. 다른 곳보다 쑥을 캐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불은 불태워 없어졌고 쑥에는 적게 따라 붙었다. 검불이 탄 재거름은 쑥한테 영양분이 되어 쑥은 다른 곳보다 토실토실 살져 있었다. 그렇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상당한 양의 쑥을 캐 모았다.
가까운 곳은 4대강 자전거 길이었다. 쉼터 의자에 앉아 앞서 캔 쑥과 냉이에 묻은 검불을 가렸더니 아까 캘 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강둑 따라 수산다리를 향해 내려가다 뒤를 바라보니 해는 천마산 위로 넘으면서 저녁놀이 붉게 물들였다. 본포에서 흘러오는 낙동강 물줄기는 수산을 거쳐 삼랑진으로 유장하게 흘러갔다. 시내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를 탔더니 차창 밖은 어둑했다. 1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