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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시고, 알게 하소서
□ 본문 : 요한복음 16장 12∼15절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지난주에는 잘못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두 가지 역사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1.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 지금 새가족 교육을 받고 있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왜 성경은 우리를 양으로 비유합니까?’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1-6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할 때, 양의 특성을 설명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첫째, 양은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게다가 양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먼 짐승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마실 물이 있고, 어디에 먹을 풀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늘 다니던 길도 찾지 못해서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둘째, 양은 매우 약한 동물입니다. 다른 동물을 해할 수 있는 무기도 없고,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걸음이 느려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셋째, 양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조금만 비탈지고 험한 길에서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올라가지 못합니다. 양은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목자가 일으켜주지 않으면 넘어진 채로 버둥거리다 죽고 맙니다.
이런 양이 어떻게 길을 잃지 않고 시냇가와 푸른 풀밭을 찾아갑니까? 이런 양이 어떻게 맹수들 사이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까? 목자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고 지키고 돌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신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양은 양입니다. 목자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리석고 연약한 양이라 할지라도 목자가 있으면 됩니다. 우리의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시기에(요10:11)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가는 것으로 인해 근심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가 자신들을 인도해 줍니까? 이제는 누가 자신들을 가르쳐 줍니까? 이제는 누가 자신들을 돌보아 줍니까? 이제는 누가 자신들을 도와줍니까? 이제는 누가 자신들을 보호해 줍니까?
그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16:7)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것이 어떻게 양인 제자들에게 유익입니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을 그대로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행16:6,7)
육신으로 계셨던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제자들과 함께 계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풍랑으로 인해 고생했던 것 아니겠습니까?(마14:24) 그러나 성령님은 언제 어디서나 제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께서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 안에 계십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여러분,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그냥 아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시편139편16절을 현대인의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주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보셨으며 나를 위해 작정된 날이 하루도 시작되기 전에 그 모든 날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아셨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도 알고 계시며, 앞으로의 모습도 알고 계십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복된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지난주간에 쉐마학당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 전도사님 한 분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막 믿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계획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거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박한 일이었습니다. 정욕을 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일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많이 낙심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분의 고백입니다. 지금도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정말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만약 그때 자신이 계획한대로 되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상상이 안 된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자신이 계획한 일이 막혔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마음 깊이 고백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고백을 들으면서 나의 생각과 나의 계획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을 걸으면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육신의 죽음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한 죽음, 지옥의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을 걸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그 길이 진리의 길이 아니면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마지막이 사망인데 어떻게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진리의 길을 걷는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 마지막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길이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을 간다면, 세상 즐거움을 따라간다면, 그 마지막이 영생이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넓은 길을 가면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보면 그 마지막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을 걷고 있다면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진리의 길이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 진리의 길이 아니라 내 생각과 내 욕심과 내 감정을 따라 가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세상에서 살려면 어쩔 수가 없지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 길을 걷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저도 진리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돌이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보다 청소년이 힘들고, 청소년보다 청년이 더 힘들고, 청년보다 장년이 힘들고, 장년보다 노인이 더 힘듭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이 세상에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좁을 길이 있고 넓은 길이 있습니다. 진리의 길이 있고 거짓의 길이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이 있고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이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좋습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더 깊은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깊으면 깊을수록 돌이키기가 더 힘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잘못된 길에서 진리의 길로 돌이키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오늘, 바로 지금입니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때가 되면 진리의 길을 걷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모르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잊는 것이 있습니다. 내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돌이키겠다고 말합니까? 오늘 밤에 하나님이 부르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가복음 12장17절 이하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얼마나 소출이 풍성했는지 지금의 곳간에 다 넣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큰 곳간을 지을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12:19)
이것이 세상 사람의 목적 아닙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많이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한 다음에 주의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이 부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
이 부자의 어리석음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이야기는 아닙니까? 언젠가는 이 길에서 돌이켜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지,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이 부르셔도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지금부터 진리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까? 1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님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길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길, 바로 말씀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말씀 길을 가고 있지 않다면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 길을 가는 첫 단계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읽은 말씀 가운데 성령님이 감동 주신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십시오. 계속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묵상입니다. 이것 없이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 없이는 진리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 쉐마학당 컨퍼런스가 안성에 있는 사랑의교회 수양관에서 있었습니다. 선한목자교회 마 목사님께서 차를 빌려 주셔서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는 이 권사님께서 운전하셨고, 돌아오는 길은 제가 운전을 했습니다.
먼저 네비게이션으로 선한목자교회를 목적지로 설정했습니다. 일본에서 운전하다가 한국에서 운전하니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였지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네비게이션을 따라 가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꽤 많이 내렸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차가 굉장히 막혔습니다. 그날 오후에 치과예약을 했는데, 계획은 선한목자교회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오후에 치과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체구간이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선한목자교회에 들렀다 가면 예약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치과로 곧장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치과의 주소가 뜨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주소로 다시 검색했더니 번지만 나오고 그 다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번지만 입력했습니다. 세 번 정도 가보았기에 그 근처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치과가 위례신도시에 있었는데, 마 목사님의 네비게이션은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아서 위례신도시가 아예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 길이 그 길 같고, 그 건물이 그 건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까? 열심히 달리면 찾을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 달리면 찾을 수 있을까요? 무조건 달리다보면 찾을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소가 뒷걸음질 하다가 쥐를 잡은 것처럼, 길을 물어보려고 정차했다가 어디서 본 듯한 건물들이 눈에 보여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몇 번 가보았기에 찾을 수 있었지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우연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도도 없이 열심히 달리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천국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진리의 길을 걸아야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신 말씀을 붙잡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 없이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성령님은 기도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권면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상황이나 환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래서 기도 가운데 받은 응답을 성경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권면을 성경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상황이나 환경을 성경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꿈도 성경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합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고후11:14)
인생길은 치과 찾아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날 찾고 찾다가 못 찾으면 중간에 차 세우고 택시타고 가면 됩니다. 그것도 힘들면 안 가면 됩니다. 죄송하다고 사과전화 드리고 다음날 가도 됩니다. 시간 낭비하고 물질 낭비하고 에너지 낭비하겠지만, 얼마든지 다시 찾아갈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쁜 것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말씀 없이 가는 길은 진리의 길이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 필경은 사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앞에서 이번 한국 방문 중에 만났던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을 가려고 했는데 성령님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그 분이 지금,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복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끌었던 출애굽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광야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적, 어느 세대가 더 많이 체험했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출애굽세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어느 세대가 더 많이 들었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출애굽세대입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울리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얼마나 무서웠던지 다시는 자신들에게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에게 말씀하시라고, 그러면 자신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출20:19) 여호수아도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모세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모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나 출애굽세대가 광야세대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세대는 광야에서 죽었지만, 광야세대는 출애굽세대가 정복할 수 없다고 두려워했던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출애굽세대에는 순종이 없었고, 광야세대는 순종했습니다.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날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음성을 밝히 깨닫게 하는 위대한 선지자가 있어도 순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순종이 없으면 광야에서 죽고 맙니다. 순종이 없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목사님, 저도 순종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도무지 순종이 안돼요. 어떻게 하지요?’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도 순종이 안 됩니까? 순종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시간도 없이 바쁜 것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진리의 길을 알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길은 우리의 힘으로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성령님께서 이끌어주셔야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2. 장래 일을 알려주십니다.
장래 일을 알려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연히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이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현대인의성경으로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함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셔서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하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그 계획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계획에 따라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성령님이 임하시면 어린아이들, 젊은이들뿐 아니라 늙은이들도 꿈을 꿉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품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1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다면 먼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주목하십시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주목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비전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땅속에 묻힌 보배와 같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말씀 안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데도 하나님의 계획을 잘 모르겠습니까? 혹시 순종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순종하십시오. 앞에서 소개했던 전도사님의 이야기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보여주시면 순종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하면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비전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것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큰 것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예언하게 하시고, 환상을 보게 하시고, 꿈을 꾸게 하시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셨습니까? 하나님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비전을 품고 기도하십시오. 에베소서 2장1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이름이 보혜사입니다.
※ 쉐마학당 컨퍼런스 중에 우간다의 윌리암 차고라니 목사님이 잠시 간증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윌리암 목사님은 간증을 마치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모든 난관을 뚫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밀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여 삼창하며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주여 삼창으로 시작되는 뜨거운 기도, 강한 기도가 지금의 한국교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윌리암 목사님만의 말씀은 아닙니다. 한국교회를 아는 수많은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의 일관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뜨거운 기도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한국교회는 주여 삼창으로 시작되는 뜨거운 기도, 강한 기도를 통해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극심한 고난과 문제들을 이겨내며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하고 뜨거운 기도, 끈질긴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처럼 주여 삼창을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우리 이상으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기로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시기 위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까지 수많은 고난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습니까? 모든 난관, 모든 고난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시5:2)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18:6)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시27:7)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28: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시30:2)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34:6)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40:1,2)
하나님이 주신 비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그 누가, 그 무엇이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손길이 움직이면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상한 마음과 병든 몸을 고치시고, 쓴 물과 같은 인생과 가정을 회복시키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이 땅을 고쳐주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십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우리 발을 반석 위에 세우시고 우리 걸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순종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가나안 땅은 정복됩니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