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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
허 준
물 건너 먼 신안 마을에 저녁 연기가 까물까물 뜨기 시작하는 것올 보고 몇 번이나 뒤떨어지는 ―거리를 돌아보는 채숙이의 불안스러운 눈치가 아까부터 보이기는 하였으나, 철은 조그마한 손이 끄는 대로 끌리어 잠자코 물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 채숙이가 자기가 아니면 못 할 말이란 것도 무슨 특별한 말이 있는 것도 없이 그저 오래 만나지 못하던 끝에 만나 자기의 손을 잡고, 장 둘이서 산보로 오던 이 낭암대(狼岩臺)로 내려가는 길을 한번 거닐어 보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으려니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숙이 집에서 기다리면 아니 되리라는 생각도 없지 아니하였으나, 그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않고 가엾이 생각한 소녀 채숙이의 손을 꼭 마주 잡아 주었다.
“그래 나만이 꼭 들어야 할 그 이야기란 무어던구.”
“난 아저씨, 오늘 종일 아저씨 오시는 길목에 앉아서 기다리었수. 중일 점 심때부터라우.”
묻는 말은 대답지도 않고 소녀는 그러고는 다시 어른의 으레 올말치 기다린다.
“학교서는 지금 막 아이들이 오던걸. 점심때라니 그럼 숙인 오늘 또 누구하고 싸울 일이 생겼던 거로구나.”
“싸우기는요, 아저씨두, 호호호.”
하고 소녀는 웃으며,
“내일이 학예회라나요. 그래서 연습도 하고 미리 차비 차릴 건 차비도 차리느라구 그리 늦었는 게죠.”
하면서 남의 말 하듯 생긋이 웃어만 보였다. 그러고는 멈칫 서서 발밑을 더듬더듬하어 모래밭에서 납작한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더니, 든 돌을 물을 향하여 먼 허공에 던지었다.
철은, 어이없이 빙긋이 웃음이 나오려다가 그것이 어느 어른의 하는 짓이라면 하고 생각할 때에는 무엇인지 가슴에 몽클하는 것이 있는 것도 같아서 열었던 입을 다시 다물어 버리었다.
팔매를 치고 나부끼듯이 우쭐렁거리고 앞서서 달아나는 소녀의 자취가 어슬어슬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철은 자기의 추측이 맞은 것을 직각하였다.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기이한 아이가 있으려면 있는 것이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이 내외가 채숙이 집 건넌방을 얻어 숙이와 숙이 어버이 단 세 식구 사는 그들 집하고 내왕이 있게 된 것은 이 늦은봄이었다.
내왕이라고 하여야 교제가 많지 않은 철이니까 안사람들뿐이었는데, 그러나 그때 그의 처에게서 간간이 들은 말은 그들은 워낙 문벌이 그다지 좋지 못한 내력이라는 것이었다. 가업으로 내려오는 갖바치의 일도 그만둔 지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요, 지금은 먹으리만큼 땅마지기나 마련한 것이 없는 것도 아니나, 아들자식을 보지 못한 그들로서는 노래의 몸을 의탁할 곳이라고는 지금 열네 살 먹은 딸자식 하나의 쓸쓸한 집안인데, 그러니까 자연 어디서 데릴사위라도 맞아서 여생을 보내야 할 터이지마는, 그 딸자식 하나 변변하지 못한 탓으로 노 집안이 그리 어둡고 침침한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양반이 많이 산다는 이 고을에서 자기네로서야 그럴 만도 한 일이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야 그리 어두울 리가 있으랴. 채숙이라는 이 아이가 들리는 말로는 아홉 살 나서 들어간 학굔데, 지금 겨우 사년급이라 하니 벌써 그것만 봐도 한두 해는 낙제라도 한 병신 같은 아이인 것이 분명하였고, 학교선 선생이고 생도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싸움만 한다더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그렇게 흉을 옮길 때마다 철은 별로 그렇지 않다고도 않고, 그러려니 하여도 그렇다고 대꾸한 일도 없이 그럭저럭 달포가 갔다.
그러자 어느 공일날은 철이가 마루 끝에 나와서 오래간만에 손톱을 깎고 앉았노라니까, 앞에서 선생님 하고 공손히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철은 한 번 보고 그것이 주인인 줄은 알았으나, 그 주인이 한편 쪽눈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던 것은 그제야 알았다. 아하 그러면 하고, 철은 이때 갑자기 무엇인지 가슴에 찔리는 것이 있는 것을 느끼면서, 자기가 앉았던 햇살 든 마루를 절반 쪼개어 주인에게 권하였다. 권하니 겸손히 그 자리를 받은 주인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였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철은 주인이 무엇보다도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로서는 떼지 못할 무슨 긴한 것을 속에 감추고 내놓지 못해 하는 것임을, 그의 어딘지 안정하지 못해하는 태도에서 직각할 수가 있있다.
“실상은 선생님.”
하고 주인은 눈을 깔아 뜰 아래를 보며,
“선생님 아시기도 하시겠지만 제게 저 너머 학교 올해 사년급 다니는 딸 자식이 하나 있습지요.”
하고 입을 열었다.
“참 이렇게 흠없이 지내 주시는 터이니 말씀이지요마는, 원 뭐라고 해야 옳겠는지요. 그년의 성미가 사납다 할지 고집스럽다 할지 어찌도 괴팍스러워서 선생님도 구만 동무들도 구만 영 나분나분하지 않습니다그려. 이런 집안 걱정까지 여쭙게 되는 것도 선생님은 신식 어른이시고 보니 어떻게 바로잡을 도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 생각 하던 끝에 하는 말씀입니다만, 하나 또 한편 생각할 날이면 제 자식은 워낙 그러니까 하는 수 없다 하려니와, 그러면 학교 선생님이나 생도들일랑 먼저 집적을 말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며 그는 주머니를 더듬더듬하며 미리 사넣었던 궐련 한 갑을 꺼내어 굽실하며 그것을 철에게 꺼내어 밀었다. 철이 그 속에서 한 대를 빼어드니 그는 성냥을 그어 철이와 자기 입에 대어 한 모금 빨고 나서,
“소제면 방 소제나 뒷간 소제나 할 것 없이 다 같은 생도 사이에 서로 번갈아 하면 될 것을, 이것은 됫간 소제라면 집년이 맡아서 하게 되고 하기 싫은 것을 맡아서 하게 되니 자연 하면서도 놀리우는 법이라, 놀리우니 싸우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 그리 되어서 싸우거들랑 선생은 생도간에 시비를 가려서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훈계할 것은 훈계도 하여야겠는데, 그러지는 않고 싸움한다는 그것만을 가지고 나무라 때려 합니다그려. 그러니 미련한 아비 마음인 줄이야 모르는 게 아닙지요만 참다못해 가지요. 가면 선생이란 이의 하는 말 보세요. 그렇게 학생이 귀한 줄 아시고 학교에서 하는 일을 야속하게 생각하실 양이면 차라리 부형께서들 맡아서 어떻게든지 하는 것이 옳지 학교는 학교로서 일정한 방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 방침을 형편에 따라 마음대로 고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다짜고짜 이렇게 핀잔을 줍니다. 그러니 그러는 자기는 노 입에 담은 말이라 술술 익어서 나오겠지요만, 저야 그렇습니까, 속으론 할 말이 와글와글하는 상싶어도 나오지 않아 핀잔을 보고 그대로 돌아나옵니다. 내일부터는 안 보내리라 하고 돌아나오지요.
하지만 그날이 가면 또 그날이라,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우리 처지에 어느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으려니 하면 자식이 가엾어 아니 간다는 것을 또 보내게 됩니다그려. 아이들 사이에 이런 티가 나기 시작한 것도 다 따지면 근본이 선생에게서 온 것이 아니랄 수도 없는 거지요. 그러니 누구를 야속단들 하겠습니까.
딸년이 학교에 들어가자 두번째 보는 시험 땐가 봅니다. 처음에는 아비도 모르고 지낸 일입지요. 한데 그년이 영 시험 임시하여서는 가지를 않겠답니다그려. 그래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시험 보기가 싫다고 하면서 하는 말인데, 아비가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하니까 그년이 숨기고 말을 하지 않었더구먼요.
처음 학교에서 아이들을 뽑을 때에 벌써 척 보고 이아이 저아이를 한반에 갈라 세우고 제일 똑똑한 체해 보이는 아이를 1급, 그 다음이 2급, 3급, 4급, 매겨 놓는답니다. 그럼 그렇게 매겨 놓은 것이걸랑 시험 때라도 그대로 앉히고 보게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을 시험 때가 되면 4급에 앉은 아이들은 1급 아이들 앉은 자리에 옮겨 앉어서 1급 아이들 것을 보고 쓰게 하고, 3급 아이들은 2급 아이들 것을 보고 쓰게 하니, 보고 쓰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마는 자연 아이들이 보고 쓰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첫번 시험 때도 선생님이 생도들에게 자리를 바꾸라고 하니까, 집년도 4급에 앉았다가 멋모르고 바꾸어 앉었답니다. 바꾸어 놓고 시험을 보노라니까 아이들이 모두들 슬근슬근 1급 아이들 것을 기웃거려 보더랍니다그려. 그러면 저도 남 하는 대로 따라 했으면 그만인 것을 애 성미가 꽤 까다로워서 그랬겠지만요, 보기는 제지하고 저 아는 것까지 안 쓰고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으러져 있었답니다. 하니 선생이 와서 왜 안 쓰고 있느냐고 해, 아무 말도 안 해, 하고 보니 선생으로 앉아서는一― 안 쓰는 거냐 못 쓰는 거냐―말이 왈가닥불가닥하게 되었겠지요. 그래서 이것이 삐죽 터지고 보니, 선생은 공부도 못 하는 것이 모르면 모른다고는 못 하고 속일 줄부터 알아서 안 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마냐 하고, 꾸짖고 꾸짖은 나머지에는 내다가 아이들 앞에서 벌을 세우니 이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것도 나중에 알아보니 자기 맡은 반의 성적을 좋게 하느라고 선생들끼리 하는 경쟁이 있어서 그렇다나요. 생각하면 분하지요. 도둑질은 아이들더러 하라 하고 먹기는 어른이 집어먹겠다는 셈 아닙니까.”
이러면서 그는 숨과 함께 넘어가듯 뚝 말을 끊는 것이다.
“네에, 그런 일이 계셨습니까. 그렇게 된 일인 데야 부모 되시는 분은 고사하고 누구라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진심으로 응하면서 철은 수그듬한 채 제 발끝만을 내려다 보고 앉았는 주인의 옆모습을 몇 번이나 도둑질해 보았다. 그 말하는 티며, 일을 이해하는 품이, 듣고 보기와 달라 대단히 조리가 있는 것을 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 외양으로 남만 같지 못한 것 같고 또 어딘지 매양 침울한 까닭은 그러한 모든 것으로 해서 넘쳐흐르는 자기의 생각이 터져나갈 곳 없이 어느 무거운 추에 눌려 있는 탓이 아닌가 하였다.
“아니, 어르신네께서 실심(失心))하시는 것보다 도리어 저는.”
하고 철은,
“저는 대단히 훌륭한 드물게 보는 아이인 줄 압니다. 그것을 학생들의 잘못이라고 하느니보다는 아이들의 가진 각각 성미를 모르고 이것 저것을 가려서 가르칠 줄을 모르는 선생들의 흠이라고밖에 저에게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곳에서 자기의 가진 고운 순을 휘이지 않자면 여간 버티기 쉬운 힘이 아니면 안 될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도 앉아서는 대단히 주제넘은 말씀입니다마는 생도가 가기 싫다면 당분간 쉬어 두시는 것도 좋은 방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지요. 저도 그러기에 이따금은 모두 집어치우고 이놈의 땅에서 떠나야만 하겠다는 생각조차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것이 죄다 우리네의 영 씻어 보지 못할 죄업의 탓이거니 하면 못 참을 때가 많습지요.
하지만 이놈의 땅에 구겨박혀 살면서 그래도 정이 들었다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그냥 떠나서는 못쓴다는 그 아이가 끊기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참고 지내 갑니다. 그야 이런 땅이나 집뿐이라겠습니까. 제 목숨까지 귀찮을 때가 없지 않습지요.”
하고 그는 너무 넘치게 말해서 아니 되었단 생각이 났던지 찌푸렸던 얼굴을 철이 눈앞에서 폈다.
철은 그의 말을 잠자코 들으면서도 남과 같이 떳떳하지 못하고 늘 어떠한 모욕 속에 산다고 하는 뜻이 이렇게도 쓰라린 것이었던가를 새삼스러이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무슨 위안의 말을 찾으려고도 하였으나, 이런 때 이런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위안의 말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한 대단치 않은 통속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알고, 구태여 그는 아무런 겉바른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주인과 철은 그날 이런 이야깃거리로 낮까지 같이 앉았다가 헤어졌다. 그러나 이때 철의 가슴에 숨겨 준 그들의 깊은 인상은 감개에 넘친 것이었다.
*
철이 숙의 손을 잡고 강가로 오고 숙이 철의 손을 잡고 강가로 나오게 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하루 아침은 철이 군청에 들어가려고 예전이나 다름없이 마루 끝에서 구두를 신으려다가, 그날따라 자기의 낡은 그 한 켤레 구두에 매끈히 기름이 먹이어 반들반들하게 손질을 하여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내는 지금까지도 자기의 구두는커녕 제 몸조차 단정히 거둘 줄을 모르는 여자인데, 그럼 필시 이것은 숙이네 집안 사람이 틀림없으리라 하여 그는 고맙게만 생각하고 이날은 그대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튿날은 마루에 밀어 내어 놓았던 자기 손수건이며 헌 양말짝 같은 것까지 말짱하게 빨려서 빨랫줄에 결려 있는 것을 철은 집에 돌아오다 보았다.
그는 자기 방 미닫이를 열고 우선 들어가려다가 문턱 아래 다붙어서 몸을 풀어 흔들 대로 흔들고 쿨쿨 낮잠 자는 아내의 꼴을 보고는, 갑자기 어디로 발을 밀고 들어갈 데도 없을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그들에게 치사나 하여야겠다고 하고 안방문에 다가섰었다.
“날마다 빨래를 그리 수고롭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문 밖에서 인사를 하니, 안에서 급하게 미닫이가 열리며,
“선생님 돌아오셨어요.”
하면서 바깥 주인이 얼굴을 내어밀었다.
“원 별말씀도 다 하십니다. 오늘 숙이년이 심심하다고 하면서 빨아드린다구 하더니.”
하며 빙긋이 웃으려 하는데 그 웃음이 다 끝나기 전에,
“네에.”
하고 돌아서는 철이 가슴에는 무엇인지 아름다운 불길이 치미듯 치밀어 낯이 화끈하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 다음은 물가에서 숙이를 만났다. 군청 시간이 늦어서 끝이 난 철은 여름날 저녁 어슬어슬 져가는 물가를 따라 집에 곧추 가기 싫은 대로 그대로 어정어정 낭암대 쪽을 향하여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몸이 곤하면 곤할수록 어쩐 일인지 한쪽으로 밝아 가는 정신의 힘은 해결 못 한 채 묻어 놓은 과거의 수많은 생각―사회, 개인, 생명, 서간, 생, 사 같은 이런 어지러운 문제의 썩어진 뒤꼬리를 물고 그의 가슴을 한없이 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삼스러이 다시 해결할 것도 없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로되 그것은 또 모두가 의지라고 하는 한 큰 무덤에 입을 막아 넉넉히 고이 매장할 수가 있었던 것들이었다. 왜 그러냐 하면 대상을 가지지 아니한 의지 그것이라 하는 것도 결국은 또 무의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러면 그 의지는 왜 대상이 없었는가 대상이 없지 아니하다면 그럼 의지를 버리었던 것인가. 그렇지도 아니하다 하면 그런 것에는 관계도 없는 운명에 대한 깊은 의식이 자기에게 이러한 결심을 주었던 것인가. 그렇다. 그 결심―그 큰 청맹과니가 내게 가치에 대한 판단력을 거부하였고, 그러므로 나는 무능력한 줄을 알았고, 나는 인생에 해태(懈怠)한 사람인 줄을 알지 않았는가. 그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그리고 대체 사람이 이것과 저것을 분명히 색별하여 알면서, 또 동시에 그 구별점이 모호해 가는 그런 허무를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했던 것이냐.
그래서 만나기도 처음이요, 보기도 처음인 덩실덩실 벌레와 같이 뒹구는 음분(淫奔)한 늙은 창부 무릎 위에, 몸과 마음과 돈과 아쉬운 것 없이 다 맡기고, 나를 건져 달라고 하던 그것이, 그것이 또 동시에 내 결혼을 의미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리고 그것이 또한 지금의 내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인생의 첫 고리가 되기도 하던 것이다.
—왜 무엇을 건지라고 하시오.
—내가 왜 있는지 모르는 슬픔의 탓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 없는 허무에서다.
그러나 그 징글징글한 시궁에서 사지가 오싹하여 소스라쳐 깨었을 때에는 벌써 늦었던 것이 아니냐.
낭암대 앞까지 와서 생각에 시진한 그는 모래밭 위에 앉아 거기 사지를 늘어놓았디·. 방향 없이 헤매이던 이리가 물 속으로 비어져 나와 후줄근히 늘얻드리고 목을 축이고 있는 모양을 한 이 낭암대 바위 어름에는, 여름날 저녁 깨뜰벌기가 팔하니 황혼의 넋을 달고 바람 한 점 스치지 않는 수면 위에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파란 무늬들 밑에 비로소 무시무시한 몇 줄기의 잔 주름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철은 자기의 어딘지 인제는 탁 안정해 버리는 정신의 뇌장(腦漿)을 보는 것 같아서 갑자기 치를 떨고 일어섰다.
이때이었다.
이 은밀한 공기를 전하여 오는 한 아름다운 노랫소리, 그 소리가 차차 다가오는 것을 듣고 그는 반사적으로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숙임에 틀림없는 것을 그는 직감하였다. 노래를 잘하고 또 노래를 좋아하는 이 소녀가 노 물가로 나온다는 말일랑 들은 일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너무도 애연하게 들려 온 까닭이었다.
자고 나도 또 바다
내일 또 바다
푸른 물결 위로만
하고 뚝 끊긴 맑고도 은근한 그 소리는 철을 보고 멈칫 서더니 빠른 거동으로 반만큼 외면을 하였다.
철이와 소녀는 이로부터 누구나 서슴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의 손을 구할 수가 있었고, 또 구하는 대로 이 물가로 나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날은 또 그들이 얼마 가지 않아 떨어지는 첫날 저녁도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철이가 숙의 손을 잡고 물가로 온다고 하는 것에는 그의 아내가 생각하는 바 그런 야박한 의미만이 섞이어 있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철에게 나날이 이 고을의 하늘과 땅―물과 길을 길답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소녀의 조그마한 손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철에게 있어서만은 한 광명과도 같은 것이 될 수 있었다 한다면 이 광명을 빚어 낸 조그마한 손은 구원의 손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할 사람은 못 된다 하더라도 그의 처가 이렇게 알아주지 말아야 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처가 하자는 한마디 말에 달갑게 숙의 집을 나와서 그의 처소를 바꾸었던 것이다.
*
나부끼듯이 팔매를 친 숙은 철을 뿌리치고 낭암대를 지나쳐 살랑살랑 걸어가다가, 문득 그가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되돌아와서 대(臺)에 올라갔다.
그리고 가자미처럼 납작 돌 위에 엎드려서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썩은 고목과 같이 그 자리를 움직여 나지 않는 철의 거동을 살피다가, 이윽고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그를 불러 올리는 것이었다.
“무슨 근심이 있수, 아저씨.”
숙은 철의 손을 당겨 곁에 가지런히 앉히며,
“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우. 오늘만인 줄 아시고 아저씨두―아저씨 이사 가시구 나서 날마다이라우.”
ㅎ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철을 치떠서 보았다.
“으응.”
“으응이 아니우.”
“요새, 좀 바뻐서 그랬어.”
“아저씨 나 오늘 집에 안 가우.”
“왜 안 가, 또 싸웠니.”
“…….”
“싸워야지. 하지만 집에야 안 가서 되나 걱정들 하시게.”
“걱정해도 한 수 없지요, 뭐. 씨·웠다만 그래 보세요, 아버지 또 학교에 가실 테니 아버지 학교에 가시는 거 나 싫거든요.”
“싫으면 잠자코 있지.”
“잠자코 있으면 왜 모르나요. 사람이 벌써 나 찾으러 집에 갔을걸요. 아까 내가 아저씨더러 내일이 학예회라 안 그랬어요. 그랬는데 글쎄 선생이 자꾸만 나더라 독창을 하라는구먼요. 아니 한다고 버티었더니 막 잡아 끌겠지요. 그래 책상을 꼭 붙들고 악을 쓰다가 오줌 누러 간다구 하구 그대로 암말도 않고 와버렸다우. 성이 났을 거야. 하지만 하기 싫은 노릇을 어떡허우.”
하며 철의 얼굴을 치떠서 보는 것인데, 철은 처음에는 이 소녀의 말을 새겨듣지 못하는 듯하였으나,
“숙인 왜 그리 사람 앞에 나서기가 싫을꾸…… 자, 너무 늦었으니 내 데려다주지. 아버지께 말씀도 해드리구.”
하며 소녀의 손을 더듬었다.
그러나 숙은 그때는 벌써 그의 몸을 아양스럽게 몇 번인가 틀고 눈으로 빠른 입엣소리 몇 마디를 반박하고 난 뒤였다. 그리고 아저씨의 표정을 또 한번 치떠보고 나서 그 눈은 다시 물 위에 깔리었다.
잘 보이지는 아니하나 그 눈방울에는 어느결엔가 무엇인지 싸늘한 그림자가 찾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 나도 아저씨만큼은 아주머니가 가없다우. 가엾다뿐이겠어요. 내게는 고마운 어른이지요.”
철은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 난데없는 말에 숙이는 별말을 다 할 줄 아는구나 하고 웃어 대려다가 그러나 말을 끊고 나서 살그머니 오므라지는 그 작은 입에는 아무런 비웃적거림도 없는 것을 보고,
“가없기는 왜 가엾구, 고맙기는 또 뭬 고마운구.”
하였다.
“아저씨가 가없은 양반이니까 가엾지요. 가엾지 않은 양반이고 보세요, 왜 아주머니가 가엾어요.”
“허허, 숙이도 허술치 않은데, 인제는 그런 말을 다 생각해 낼 줄을 알구.”
“아저씨도, 왜 숙이가 그만한 걸 몰루. 아주머니가 미워하는 건 나도 안다우. 미워서 아저씨 데리고 이사 갔지요, 뭐. 그렇지만 아주머니가 있기 땜에 아저씨두 있는 거니깐 아주머니가 고마운 어른이지 뭐유 그럼.”
“숙이가 있는 데도 있지 않을까.”
철은 그리고 웃으려 하였으나 그 웃음에는 경황이 없을 것을 알았다.
“그럼은요. 숙이만 있어도 소용 없지요. 숙이가 있어도 아주머니가 없으시면 그만이지요 뭐.”
“그럼 숙이는 없고 아주머니만 있으면 어떻게 될꾸.”
“그래도 안 되지요. 그래서 나 아저씨 뵙는 걸 아주머니가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알아서 나도 인제 뵙지 않으려 하면서도 아저씨 다른 데로 가실까 봐 그러는 거라우.”
“응, 그럼 숙이 말대루 하면 숙이만 있어도 안 돼, 아주머니만 있어도 안 돼, 하면 아저씨는 밤낮 갈팡질팡하는 게 좋아하는 사람이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진땀이 나도록 앞이 아득하였다.
“그건 난 몰라요.”
“그럼 아저씨가 달아난다면 어떻게 되게.”
“그때는 다 끝이 난 때지요.”
“끝?”
철은 벼락에 닿은 사람처럼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소녀의 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넋없이 소녀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그의 미간에 불시로 몰려든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한 복잡한 표정은 오한이 되어 싸늘하게 그의 등골을 홀러내렸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다시 수습할 때까지 경황 없이 거기 서 있었다.
숙이 철의 손을 끌고 앞서서 바위를 내려왔다. 그리고 아무도 아무 말도 없이 조롱조롱 달린 거리의 불을 나란히 보고 묵묵히 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
강을 따라서 모래 비탈 위에 강을 내려다보고 비끼어 있는 둔덕에는 뜸뜸이 큰 집이 많이 서 있었다.
학교며 면소며 군청 이발관 자동차부 그리고 그 관사들이 놓여 있는 이 등턱 줄기에는 그전 이조 때의 대개 지내던 사람들의 집 자리가 많았는데 그러나 이제와 같이 많은 변천을 겪어 온 이 땅에서도 아랫거리 김씨네 댁만은 유독히 그 구태를 지니고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 줄기 전면에는 지금은 경성과 강원도 가는 자동차가 다닌다.
김씨네 집 옆집이 바로 차부요, 차 정류하는 마당이 장으로 가는 길과 어긋 매끼는 십자로였다. 그러므로 물가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차부와 이발소 사잇길을 거쳐서 바로 가면 이 장길에 나설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철이 내외가 김씨 집 뒤 초당을 얻어 이사 오던 날 놀란 것은 집은 모두 쳐서 사십여 칸밖에 아니 되는데, 그 터전이 대단히 넓은 것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길에 다가서 입구(口)자로 앉은 몸채를 내어놓고는 집이라고는 이 오륙백 평이 넘는 터 위에 겨우 둔덕에 나붙은 철이 내외가 든 초당뿐이었다.
몸채와 이 초당 사이 텅 빈 데에는 장미 매화 살구나무 벚나무 석류 포도넝쿨 같은 것까지 심고 봄에는 풀에서 오만 가지 꽃이 다 돋아나지마는 헛간이 많은데다가 워낙 넓은 이 터전은 언제나 빈 것같이 허전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집이건마는 저녁을 먹고 초당에 앉았노라면 어둑어둑하여지는 나뭇잎 사이로 젊은 주인이 쓰는 건넌방과, 이 집에 밥을 부치고 있는 보통학교 여훈도 방 방불이 서로 건너다보고 눈을 깜박거리는 것이 신산한 가운데에도 전연 아늑한 곳이 없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초당 뒷문으로는 아침 저녁으로 넓은 벌판으로 흐르는 강가의 여러 가지로 변하는 풍경을 눈 아래 볼 수가 있었다.
이러한 곳이어서 이사 온 뒤로 철의 기분은 이 주위에 대단히 어울려 감에도 불구하고 순이의 걱정은 무슨 앙화로인지 나날이 덧쳐 갈 뿐이었다. 이사가 잘못 되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아니 했다면 그때 또 어떻게 할 수가 있었담 하고 순이는 탄식한다.
연놈의 그림자가 눈밖에 막 사라지는 것을 보고, 순이는 내려섰던 모래 비탈을 다시 올라와 초당으로 통하는 사립문을 되들어섰다. 들어서며 순이는 본능적으로 여선생과 자기네 방과를 한 번씩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돌이키어 젊은 주인 방에는 분명히 불이 켜 있는 것을 또 한번 다지고 나서 그는 늙은 오동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곳으로 발을 옮기었다. 그 오동나무에 기대어서 그는 십 분 이십 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선생 방에 불이 당기었다.
불이 당기는 순간 순이는 바른 곳에서 오래 곪던 고름이 툭 터지는 아프고도 시원한 심사를 불현듯이 느끼면서 살살 기어 자기네 초당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얼만큼이나 있으려니 철이도 돌아오고 방에는 불이 켜졌는데 순이는 누웠다가,
“인제 오세요.”
하고 그제야 우두머니 일어나며 힘들여 점잖게,
“바로 오시는 길이시오.”
하면서 예사로이 남편의 안색을 훑어보았다.
“무슨 기쁜 일이나 있습디까, 싱글벙글하게.”
“웅 싱글벙글이 아니라 저 채숙이네 말이야.”
“채숙이네가 어쨌어요.”
“채숙이 아버지가 그 애 학교 구만 보내겠다고 하기 말이야. 그리고 자기네도 인젠 이놈의 땅에 아니 있는 게 옳겠다고까지 하던데.”
“그래 그까짓 것들 아니 있는 게 당신에게 그다지 기쁜 일이란 말이오.”
하고 순이는 눈이 도드라져라 하고 철의 얼굴을 치뗘서 보았다. 철은 그 말에 흠칫하였다. 과연 처가 그래 놓고 보니 자기가 숙이 집에서 그 말을 듣고 즐겁게 돌아왔다는 심사는 자기로서도 분명히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껏 그것을 숙이 아버지에게 권한 것이 자기임엔 틀림 없었다. 그리고 자기 말이 그대로 실현이 되었다는 단지 그 사실만이 기쁜 일이 아니었다 하면 숙이네가 떠난다고 하는 것과 자기와 자기 처가 그 가운데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이냐. 그런 것을 생각하고 그는 하하 웃었다.
“웃어요, 웃으면 누가 모를까 봐서 웃어요. 치 해야 마음을 놓으라고 하는 뱃속이겠구려. 벌써 그만한 뱃속은 알 대로 알았다고 하시우.”
순이는 그 웃는 것도 보기 싫다는 듯이 그에게서 눈을 떼어 먹다 남은 담배 꽁초를 한 끄트머리 주워 물었다. 그러고는 물었던 것을 다시 입에서 떼어,
“안 나오는 웃음을 갖다 붙이기는 잘 갖다 붙여 웃소마는, 그래봬도 젖꼭지 떨어지자부터 화류계에서 뻣손이 굵은 내요.”
하면서 어이없이 이쪽을 쳐다보는 철의 눈을 마주 보고 흘기는 것이다.
철은 철이대로 아까부터 자기의 그 알지 못할 심사를 연상하고 있는 것이었으나, 기실 멍멍히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이 앉았다가 문득 순이의 이 말끝을 채어 들고,
“굵었으니 어쩌란 말인가.”
하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치켜서 썼다.
“굵었으니 보잘것없는 년이란 말이지요. 팔을 끼고 산보 다닐 처지도 못 되고 학식이 누구만큼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 그게 누구란 말이야.”
“누구는 누구야요. 내한테 물어야 알 일이오, 그게.”
하고 순이는 일단 말을 늦추기는 늦추면서 쇠꼬챙이같이 단 그 눈들은 철이 면 위에 있었다.
철은 더 물으려고도 하지 않고 또 대답할 것도 없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순이도 잠잠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얼마 동안 계속되다가 이윽고 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바른말을 안 해요. 그래 그 미련하고 고집 세고 둔한 갖바치의 딸을 가지고 산보를 간다느니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느니 어쩌니저쩌니 한 것도 다 뭣 때문에 그랬던 거요. 당신의 수단껏 한 짓인지 여태 누가 모르는 줄 아우. 그 수단을 써서 여기 이사를 시켜 놓고 단 꿀은 딴 항아리에 담아 두고 당신 혼자 다니며 떠먹잔 뱃심이지―그러지 말고 싫으면 싫다고 왜 진작 못 하느냔 말이오.”
“…….”
“당신은 나를 더는 건질 수 없는 더러운 년으로 알지요. 아닌게아니라 오고 가는 어중이며중이가 내 몸에 쉬(파리의 알)를 슬 대로 슬고 가서, 이제는 담배 꽁초만큼도 쓸데없이 된 년인 줄 나도 모르지는 않아요.”
“…….”
“이년은 몸이 더러운 년이야요. 믿을 것도 없고, 못 믿을 나위도 없는 아무 쓸데없는 년이야요. 하지만 당신같이 깨끗한 것은 또 이런 년에게 죄가 아니 된단 말이오.”
순이 어조에는 벌써 아무런 비웃음도 없는 진실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까닭에 몹시 애연한 것이었다.
“왜 아무 말도 없어요. 깨끗한 것은 이런 년에게 죄가 아니란 말이야요. 당신은 보기도 처음이요, 만나기도 처음인 자리에서 백 원짜리 돈뭉치를 어쩔지 모르고 쳐다보구 앉었는 이년에게 내던지며, 나는 모르겠다고 하였지요. 그리고 흩어지는 돈뭉치를 어쩔지 모르고 쳐다보고 앉었는 이년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도 없이 그대로 섬쩍 뛰어나가 버리었지요. 왜 그랬어요. 무엇 때문에 그랬어요. 그것이 취중이라서 한 일이었어요. 그랬다면 당신에게 달려간 이년을 그때 왜 소용 없다고 못 하였어요. 깨끗한 것은 이년에겐 죄가 아니란 말인가요. 그리구 그때부터 이년 가슴속엔 벌써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 생긴 건지도 몰랐던 거라면 당신은 지금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은 이년더러 채숙이년께나 그 선생년께 괜히 샘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또 그랬다면 그게 내 잘못인가요.”
“선생! 그럴 줄 알았다.”
철은 한마디 이랬을 뿐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래도 왜 그런 결 감추고 계시오. 이년은 인제는 그 철없는 복수가 되었건 아니 되었건 물러설 차례니깐, 물러서게 마련된 게 내 직분이니깐 그러는 건가요.”
순이는 탄식도 아니요 원망도 아닌 한숨을 내쉬며 이러하였다.
그러나 철은 그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채숙이와 여선생, 응 그렇다. 내가 그들에게 구원받을 길이 있다 하면 구원도 받을 것이다. 그리구 너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만도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네게 모든 것을 바치려 하던 것이 아무런 의지도 없이 한 일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너를 동정한 탓도 아니었던 것이다. 너는 지금도 너를 동정한 줄로만 안다. 그러나 내가 누구를 동정한다는 말이냐. 누구를 건져 낸다고 하는 말이냐. 건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건지지 못해서 하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어떠한 결심이었을 따름이 아니냐.’
철은 고개를 들어 아까부터 자기에게서 대답을 기다리는 순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왜 아무 말도 없느냐고. 무슨 말을 하라는 말이냐. 그전 나는 너더러 잘나 보이겠다고 한 말이 있었다. 너는 내가 잘나고 있는 것인 줄로 알 것이다. 그러나 그 잘난 것이 너는 구하고 나를 구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할 터이냐. 그리고 누구보다 잘나겠다는 내 말이었느냐. 지금 나는 아무런 위인(爲人)에게도 내 구원을 청할 수 없는 완전히 질투 없는 괴롬에 시달릴 뿐인데―
너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지금 애결한다. 그것이 내가 잘나지 못한 탓이라면 그것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까닭에 더욱 나는 너를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에게나 사랑을 구할 수 있는 사내요, 또 아무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내로 아는 것이 네게 괴롬이 된다면, 그것은 아무의 죄도 아니요 네 죄일 것이다. 그것이 내 거짓된 연고라고 하는 말이냐.’
하였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입가에 내어서 한 말들은 아니었다.
저녁을 가져올 생각도 없이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까지나 시달릴지 몰라 철은 순이의 고양이같이 노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그 눈치에서 눈을 떼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를 일어섰다.
물론 순이도 이때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화닥닥 쫓아 일어나며 철이가 한 팔 꿴 양복 저고리 소매를 낚아채었다.
“어떻게든지 하고 가요. 나두 부덕부덕 당신을 잡아 두려는 건 아니오. 무슨 말이든지 끝을 내고 가란 말이야요. 당신같이 까닭 모를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나도 모른다.”
철은 갑자기 얼굴이 팔하니 질리면서 반사적으로 이러하였다. 그리고 낚아채는 저고리 소매를 꽉 두 손으로 붙잡고 순이의 팔을 휘둘러 빼었다.
순이는 철이가 휘두르는 대로 몇 걸음 모로 비틀비틀 비틀거리더니 부엌문 기둥에 머리를 박고 거기 주저앉았다.
그 서슬에 방문을 나서는 철의 뒷모양이 번개같이 머리에 빛났을 때 그는 다시 일어나려고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엎어져 있었다.
하루하루 거리의 풍경 소리가 짙어 가면서 가을 기분도 소슬한 밤이었다.
인제는 무거운 것을 다 떨어 놓은 포도넝쿨에 저녁 바람 소리가 잦아들려고 하는 땐데 순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시를 부시고 나서 오늘은 끝말을 내어야겠다 하고 부엌문을 나섰다.
축축이 누기받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 조심스러이 젊은 주인 방 뒷문에 다가섰을 때 안에서는 바깥 주인의 코고는 소리밖에 아무것도 들려 나오는 것이 없었다. 벌써 저녁이 끝나고 한잠 들었나 보다 하면서 순이는 선생 방으로 발머리를 돌리었다.
선생 있는 방은 이 집 안방으로 지어진 네 칸이 넘는 길쭉하게 터진 방이었는데, 선생이 오자 거기 장지를 들여 세 칸으로 막고 그 맨 아랫방에는 이 집 노주인, 그 다음 칸엔 진실한 예수 신자인 주인 할머니, 그리고 선생 방이었다.
선생 방과 젊은 주인 있는 방은 마루 하나를 가운데 놓고 있는데, 그러므로 자연 이 마루는 선생 방과 건넌방이 공동으로 쓰는 출입처로도 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방문이 열리는 틈에 선생은 털것 짜던 손을 멈추고 황겁히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분명히 낭패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순이는 본 것 같았다.
“무슨 일을 이리 쫌쫌히들 하세요. 벌써 겨우살이가 아니라구요.”
순이는 선생 옆에 가 바짝 다가앉으면서 선생 짜던 털것을 한 끄트머리 잡아 눈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이거 바깥 어른 게로구먼요.”
하면서 보아라 이년 하듯이 선생의 눈치를 노리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옆에 비스듬히 앉아서 바지에 솜을 고르고 있던 젊은 안주인에게도 새삼스러이 인사를 한다.
“선생 오라버님 거랍니다.”
선생이 아무 대답도 없는 것을 보고 젊은 안주인은 순이의 그 실름실름 일부러 웃음을 짓는 눈에 이렇게 대꾸를 하였다.
“아이구 어쩌면 오라버니가 다 계셨어요. 난 또 어느 어른 거라고요 호호호.”
“선생님께서는 아직 좋은 분은 없으시답니다.”
“아이구 어쩌면 저렇게 좋으신 나이에 여태 그런 분이 없으실까. 하지만 남이 한창 우러러보시겠으니 얼마나 좋으실꾸.”
순이는 이러며 마디마다 감탄사를 넣는 것이나 얼만큼 입 끝을 비쭉 내어민 그의 아랫입술에는 처음부터 서슬 푸른 비웃음이 감추어 있었다.
“그렇지 않으려면 숙자 어머니처럼 바깥 어른을 잘 만나시거나.”
“아니, 갑작스럽게 별말씀을 다 하세요. 집이 그렇게 잘 해주시는 줄 아세요. 하루 종일 면소에가 계시다가 돌아오셔선 저녁 잡수시고 곧 또 나가시는 어른인데 하루도 빼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낚시질이니 뱃놀이니 뭐니 하고―”
“하지만 오늘도 댁에 계신가 보던데요.”
“네에, 오늘은 늦게 무슨 이 골 관청 어른들의 뱃놀이가 있다더니 그래서 한잠 주부시고 가신다더군요. 바로 그렇게 날마다 계시는 어른인가요.”
하고 멋도 모르고 안주인은 대꾸를 하기 시작하였다.
“사내 양반이 집에 붙어 계시면 뭘 합니까. 구더기같이 덩실덩실 집안에서 구르기나 하면 징그럽기나 하지.”
“아이 현주사댁도 별말씀을 다 하시네, 그런 점잖은 어른을 모시고서…… 요새 댁 어르신께서도 낚시질을 시작하셨다지요. 가끔 숙자 아버지도 만나 뵙는다던데요.”
“네에, 요즈음 뭐 한답시고 저녁마다 나가나 봅디다만, 나가서 누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압니까.”
하고 그는 힐끗 선생의 얼굴빛을 살펐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왜 그런 말이 뭡니까, 어떤 사람이라고요. 그러기 한집에 살면서도 한길 사람의 속을 모른다는 게 옳아, 남의 색시란 색시, 남의 계집이란 계집은 한번 거들떠보지 않는 법이 없고 아무렇게나 해서라도 수작을 붙여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인데.”
하고 그는 또 한번 선생을 홀기어보았다.
“현주사댁도 어쩌면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정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봐.”
하는 것은 숙자 어머니의 말이었다.
“할 말이 없는 게 뭡니까. 있으면 자그만치나 있게요. 이 집 오기 바로 전에도 저 장터 갖바치네 집 나이도 안 찬 바보 같은 년을 한바탕 추념질을 하고 왔답니다. 그리구 여기 와서는 또.”
“네에? 장터 갖바치 딸이라니, 저어.”
선생이 대바늘을 반이나 털 끝에 꿰다 만 채 이렇게 갑자기 순이의 얼굴을 쳐다보는 바람에,
“네, 갖바치 딸이오. 그런데 왜 그리 놀라세요. 그 말에 선생이 그리 놀라실 줄은 참 천만뜻밖인데요, 호호호. 설마 무슨 인제 알아서 너무 늦어진 일이 있으신 건 아니겠는데.”
순이는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어 이러면서 비웃고는 머뭇머믓 무슨 말을 계속하려다가 말았다.
그는 이 기회에, 하고 속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다시 생각하고 뒤끝을 아껴 끊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선생이,
“아니, 일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애가 우리 학교 다니는 아이가 되어서요.”
하니까, 순이에게는 맥이 풀리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선생은 순간적이나마 자기가 놀랐던 것을 스스로 어리석게 생각하였던지 다시 머리를 소곳하더니 몇 겹 남지 않은 자켓에 실을 주기 시작하였다.
순이는 도드라진 눈초리로 선생을 노리었다. 다만 그는 오늘도 자기 말이 서지 않기 시작하는 것을 직각하고 낙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이 집 노할머니조차 선생에게는 늘 전도를 하면서 자기에게만은 예수의 예자도 천당의 천자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오늘따라 안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순이 자기도 물이 되든 불이 되든 자기의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돌아갈 여자는 더욱 아니었다. 이 좋은 기회에 최후의 말을 선생에게 따지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분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은덕이 망덕이란 말도 없지 않아 있다듯이.”
하고 순이는 다시 숙자 어머니에게 총머리를 돌리며,
“그것도 내가 공부를 시켜서 그만큼이라고 되었답니다. 인젠 다 드러난 말이니 말이지, 그전 향란이라면 그래도 참 이름 있는 기생이었거든요. 총독부 누구누구 경찰서 누구누구 변호사 의사 무슨 사장패들 할 것 없이 다 참 쳐줬지요. 그 시절에 뭐가 못 미쳐 말라붙은 무말랭이 같은 그까짓 녀석하고 산답니까. 지금 이렇게 되어서 곧이들을 사람도 없겠지마는 한 수 없이 내한테 와서 무릎을 꿇고 빌던 작잔데요, 뭘. 그렇던 허수아비가 오늘날은 꼴불견이 되어서 꼬리를 젓고 다니는 걸 보니.”
기가 막히는 소리를 다 못 하지 않느냐는 듯이 순이는 이러면서 숙자 어머니의 대꾸를 재치었으나 숙자 어머니는 인제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수굿하고 바지에 솜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러매 자기 말을 계속하자면 그는 언성을 낮추지 아니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소리는 애연하게 울려 나왔다.
“하지만 지금에야 속절없이 먹는 나이를 어찌할 수 있어야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구 간에 살아 주련만 지금은 도리어 저편에서 그러는 걸 보면 이러다가 나중엔 헐을 벗을 길조차 없으려니 하는 생각까지 나는군요.”
“사내 어른은 다 그러신 줄 알고 그저 그럭저럭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요. 어느 집이나 씻고 보면 어디 그리 알뜰한 곳이 흔합니까.”
숙자 어머니는 머리를 들려고도 하지 않고 으레껏으로 이렇게 한 마디하였다. 너무 순이가 민망할까 보아서 한 대꾸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그럴 테면 분풀이로 몇천 원 위자료나 청구해서 한번 혼이나 단단히 내어 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지요. 그래 이선생과 의논했더니.”
하고 순이는 다시 선생에게 갑작스럽게 손을 엎어 돌리며,
“이선생은 그래서는 밤낮 마찬가지라고 하십니다그려. 그리고 아주 아무것도 청구하지 말고 딱 갈라서는 게 지금이라도 낫다구 하신답니다. 그렇지요, 선생 어르신.”
하며 그는 선생 얼굴에 나타나는 반응을 살피었다.
“그렇지만 그 어른이 그만한 것을 내실 수가 없으시다고 하시니까 아주 갈라서시려면 일찍 그렇게라도 하시는 게 좋을 상싶어서 그런 말씀 한 거지요, 숙자 어머니.”
선생은 짜 나가던 틸것에서 머리를 들어 숙자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하였다. 그리고,
“그리구 저는 저밖에 의논할 데가 없으신 줄 알고 그랬어요. 제가 뭘 그런 걸 알아야지요.”
하며 이런 일은 자기에겐 조금도 알 도리가 없는 것인데 공연히 시빗거리를 만들었다는 듯이 일감을 놓고 그 자리를 일어섰다.
“아이, 이것 끝을 마치려단 밤이 가겠는데요. 내일 운동회에 쓸 당목 몇 자 끊으러 갔다가 어쩌면 경성여관에 들러서 그것 박아 가지고 오겠어요. 미안하지만 앉아서 이야기들 하세요.”
그리고 기지개를 하듯이 서서 약간 몸을 위로 뽑으며,
“가을이 되면 뭐니뭐니 해서 몸이 곤해 죽겠어요.”
하고 변명하듯이 생긋 웃으며 선생은 방을 나가 버리었다.
숙자 어머니도 일어서려 하였다.
“나도 방에 가봐야지요. 숙자년이 혼자 잘걸.”
하고 그제야 자기도 생각난 듯이 하던 일을 차근차근 개어 손에 얹어들었다.
이러하거늘 순이는 오늘은 끝말을 내려고 하던 것이 이렇게 될 줄을 뜻밖으로 생각하며 그렇지만 하는 수 없이 자기도 따라 마루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초당으로 갈 생각은 없이 숙자 어머니를 쫓아서 건넌방으로 대선 것이다.
그리고 숙자 어머니가 자기 방문을 열어 젖히고 혼자말로 나가셨군 하면서 순이를 맞아들이려 할 때 그는 이 숙자 어머니의 혼자말에 직감적으로 혼자 속에 잡히는 것이 있는 듯이 주춤 발끝을 멈추고 어둠을 가리어 초당 쪽을 건너다보았다.
과연 아니면 무엇이냐. 거기 서 있는 것이 현가가 아니면 무엇이냐. 그때 현은 구두 끈을 매고 나서 막 허리를 펴는 모양이었으나 순이는 그 다음 순간 이 자기 남편과 앞을 서서 나가는 선생 사이에 어떠한 눈짓이 벌써 오고 가는 것을 또 분명히 본 듯하였다.
순이는 일단 숙자 어머니를 따라 방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들어선 채 앉지도 않고 몇 분간 이상히 주몃주몃하다가,
“나도 집이 비어서 가보아야겠어요.”
하고 다시 마루로 나와 버리었다.
생각이 있어 한 노릇이니까 물론 순이는 초당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가 대문을 나와서 경성여관 있는 윗거리를 바라보았을 때에는 선생과 남편의 두 사람 그림자가 희미한 가로등 밑에 희뜩희뜩 앞서거니 뒤서거니 멀리 사라질 때이었다.
순이는 따라 나와 네거리까지 와서 이발소 모퉁이에 몸을 세우고 경성여관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양을 살피었다. 그리고 선생이 경성여관을 지나쳐 어느 포목전까지 갔다가 다시 돌이켜서 역시 그 여관에 돌아오는 것을 틀림없이 볼 수가 있었다.
철은 밤이 퍽 들어서야 배에서 돌아왔다.
얼큰히 술이 몸에 퍼졌던 김이라 그는 쓸쓸하니 스며드는 밤바람에 맡기어 가는 줄 모르게 낭암대까지 거닐어 가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어느덧 자정 가까운 시각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때껏 처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이상히는 생각하였으나, 어디 마을을 가서 늦는 게지 하고 그대로 자리를 보고 드러누웠다.
그러자 안마당에서 날아오는 여편네의 찢어지는 높은 갈랫소리를 귀에 담고 번쩍 머리를 들었는데, 이미 이때는 바깥을 엇볼 틈도 없이 그 소리가 어느덧 중마당까지 달려온 때였다.
“저기 저 문에서 나와 이리 달아 나오는 걸 누구는 못 봤을까 봐서.”
하고 그 소리는 초당 댓돌 앞까지 다가와서,
“자 들어가 봐, 지금 와 있나 안 있나.”
하면서 쾅하니 마루를 밟고 올라섰다.
찧은 어느 불길한 예감에 갑자기 부닥치며 그 히스테리컬한 소리에 소스라쳐 일어섰다.
그것은 분명히 순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문고리를 철그닥 낚아채는 소리에 딸려서 거기에 나타난 것은 입에 거품을 물고 얼굴이 팔하니 질린 순이였다. 보니 몸에는 철의 낡은 파나마 모자와 양복 저고리가 걸치어 있었고, 아랫동은 그대로 흐트러진 치마가 발끝에 친친 감기어 있었다.
순이는 문을 열어 젖히고 철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리둥절하여 섰는 그의 앙가슴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다짜고짜로 문 밖으로 끌어내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끌려 나간 철을 마루 끝에 세워 놓고 그는 자기도 거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자,˙ 여기 있는 이놈이 아니구 뭐냐 말이야. 응, 뭐냐 말이야.”
하면서 여누다리를 시작하였다.
“이 년놈들, 응 이 년놈들. 남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너희들은 얼마나 정하고 깨끗해서 남의 서방마저 이년 저년에게 빼돌리느냔 말이다. 응, 그리군 그 더러운 욕을 그래 내한테다 씌우려고 해. 내가 못 본 걸 이렇게 봤다 했어. 이 년놈들, 이 년놈들아, 분통이 터져 죽겠구나. 분통이 터져 죽어.”
발악을 하고 나선 갑자기 비칠비칠 일어서며,
“이 선생년인가 뭔가 한 년 이년 나오너라, 나와.”
하며 안마당으로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순이를 붙들어서 다시 철이에게 맡기었다.
철은 이렇게 들썩들썩하는 동안에야 겨우 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볼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다른 데서 사는 사람은 없었고 이 집에 사는 사람들뿐이었다. 다만 그 틈에서도 선생의 얼굴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비틀비틀 쓰러지려는 순이를 꽉 두 팔에 휘어감고 방에 들어와 자리 위에 그 계집의 몸을 눕히었다.
이때 철은 무엇이 어떻다 할 것도 없이 종내 이날이 오고야 만 것을 전부 이해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눕히고 나서 그는 무엇을 하는가 하였더니 새삼스러워 정색을 하면서 계집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 되었다. 이렇게 될 줄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하지 못한 것이 내가 잘못이다.”
하고 빌었다.
순이는 이때 갑자기 온 전신에 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철의 얼굴을 쳐다보는 일도 없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반듯이 누워서 머엉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그 눈매는 실성한 사람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추측하는 힘이 빠른 여자에게 흔히 있는 것처럼 어느 한편 몹시 단순한 그는 역시 얼마 있지 않아 잠이 들고 말았다.
철은 순이가 잠든 것을 확실히 인정하였다. 그러고는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어 숙자 아버지를 만나러 그 자리를 일어서 나왔다.
*
“바른 대로 말씀 드리면 오늘밤 일어난 일은 어떻게 된 자초지종을 새삼스러이 여쭙잘 것도 없이 미리부터 제게 짐작된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애초부터 제 처의 잘못이라고만도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쭙는다고 하여서 물론 이것은 제 변명도 아니요, 제 처의 허물 된 것을 감추려고 하는 뜻만도 아닙니다. 또 그 사정이라고 하는 것도 처와 저 사이의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 따라서 제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은 물론 당자 되시는 그 선생 어른도 뵙고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그의 무고한 것을 변명해 드리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네에, 물론 저도 이 일에 대해서는 그 선생에게도 적지 않이 미안한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난 일을 지금 시야비야 했대야 별일 없는 일이요, 선생도 별말씀 없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 하며 새삼스러이 이 일을 밝히고 싶은 생각도 자기는 없노라고 하셨다 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자기 동무 어른 댁에서 주무시고 오신다고 하셨는데 계시어도 뵈이실 어른도 아닐 겁니다.”
“네에, 그렇겠습니다. 그럼 저도 선생을 만나 뵙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선생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그건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대단히 공교롭게 일어난 것같이도 생각되는 데가 많습니다. 아까 집안 식구들끼리도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제가 배에서 선생들과 헤어지고 나서 잠깐 장터 이서방네 가게에 들렀다가 돌아온 것은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지금 제 처의 말을 종합해 보면 내일 아침이 학교 운동회이어서 그 선생이 운동회에 입을 적삼을 경성여관 주인 방에서 박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뒤 끝을 이어 제가 또 막 왔다는군요. 오늘도 저는 노 다니던 길로 온 것이지마는, 그 길이 선생 방 뒷문 곁을 스치어 오는 길이고 보매 선생이 돌아오셔, 제가 돌아와, 또 돌아오자 선생 방에 불이 켜져 하니까, 그 방에 두 사람이 다 들어간 걸로만 보였겠지요. 그런데 현형 부인이 보시기에는 저를 잘못 보시고 현형이 들어가신 줄로만 알으시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되는 겁니다. 그래서 한참 있다가 들어와 누워 잘 만한 때 부인이 그 복색을 하고 선생 방옐 들어가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들편들편 들어가 살피자 선생이 깨서 소리를 쳐 집안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리구, 모두들 자기를 시야비야하기 시작하니까, 초당 쪽으로 쫓아가면서 이 길로 도망을 갔다, 와 있나 안 있나 보자 하며 서둘렀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때
우리가 그러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헌형이 또 그렇게 공교로이 와 계시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하, 정녕 그렇게 된 일이겠습니다. 그 선생도 이렇게 알아주시겠는가요.”
“그야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뿐 아니라 벌써 선생이나 우리집에서 나는 자기네를 변명할 것조차 없으리만큼 부인에게 대해서…….”
하고 주인은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그대로 뚝 소리를 끊어 넘기었다. 그것은 남의 남편 되는 사람을 맞대어 놓고 차마 하지 못할 말인가 싶었다. 그랬다고 철의 그때 얼굴이 아니 붉어질 수는 없었다.
철은 돌아왔다.
돌아와서 다시 그 방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니 그때에선 별로이 부끄러운 생각도 없고 번민도 분노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로지 몸이 몸덩어리만이 천근만큼이나 피곤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피곤도 그것에 따라서 일어나는 그의 나태의 정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나태는 모든 것을 응시하고, 또 따라서 모든 것을 거부하는 정신이었다.
그는 순이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푸른 입, 요염한 미간에 뭉킨 독기 있는 의혹과 증오와 표정은 순간적으로 철에게 이 계집과 자기와의 관계를 가장 짧은 정의(定義)로 해서 회상시켜 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회상은 이 한 점에 와서 이상히도 서리는 것이었다.
철은 가끔 이러한 때 먼저 잠든 이 계집의 얼굴을 언제까지나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노리던 끝에는 그만 이 계집의 목을 그대로 눌러 버리고 싶은 짐승과 같은 욕심에 부대끼는 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런 충동이 격하여 올 때마다 또 신묘하게도 그 계집의 눈이 뜨여서 철의 살기 스민 눈을 마주 쳐다보는 때가 많은 것이며, 또 그렇지 않고 눈이 언제까지나 뜨이지 않고 잠을 계속하여 나아가는 때에는 철은 곧,
“그래서 내가 살아날 길이 있다는 말인가. 내가 누구를 멸시할 수가 있을 것이며 누구를 미워할 수가 있어.”
하는 따위의 자기 질책의 소리를 가슴 깊이 듣지 않을 수 없어서 여지껏 무사히 지내 온 것이었고, 이것이 또한 자기가 처를 두고 가지는 전 노골적 감정이 아닐 수도 없었다.
그는 순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 책고 중 어느 것이 그를 괴롭히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괴롬도 이때 그에게는 있다고도 할 수 없었던 것인지, 그는 그 자리를 일어나서 책상 앞에 다가앉았다. 어느 결심의 빛이 싹 그의 질린 얼굴을 스치고 갔다.
그리하여 그는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그 위에 이렇게 썼다.
나는 너를 떠날 결심을 하였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탓도 아니요, 너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워서 하는 것도 아니다. 더럽기로 한다면 나는 너보다 몇 갑절 더한 놈인지 모르는 놈이다.
나도 너처럼 더럽고 하잘것없는 놈이니까, 진심으로 조금도 부끄러운 생각 없이 여태껏 너와 같이 살아온 것이 아니냐. 그것은 지금과 예전에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너는 어디까지 따라가서든지 네가 받는 남의 업신여김을 무엇으로든지 끝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인 줄은 오늘 지금에야 알았다. 그것이 나는 못 배기는 것이다. 지금 떠나면 나는 더 보잘것없는 짓을 하고 더 보잘것없는 계집을 얻고, 또 이보다 더 부끄러운 처지에 박혀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충에서 역시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내 해결성 없는 ‘지속의 버릇’일 것이다. 이런 것은 쓰지 않아도 알 일이지마는 내가 여태까지 너와 아무 결말이 없이 살아올 수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그 증거의 하나가 나니냐.
그러면 너는― 이 해결을 내게 맡기고 가느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나는 모른다. 여기 동봉하여 넣은 편지는 내 퇴직금을 네게 위임하는 위임장이다. 이 적은 돈까지도 벌써 네게는 소용되지 않을 것까지 나는 소방 모를 것 같지도 않다. 허지만 내, 이 무서운 예상이 맞지 아니하여 네가 이 돈을 쓰게 된다면 그날도 또한 좋은 날이 아니냐.
현 철
순이에게
철은 여기서 붓을 놓았다. 그리고 그는 서랍에서 종이 두 장을 더 내어 한 장에는 위임장을 써서 편지와 동봉을 하였다. 남은 한 장에는,
‘선생님.’
이라고만 먼저 썼다. 그러나 뒤에 다시 생각하고 이것은 찢어 버리고 말았다. 누구를 위해 변명을 해준다는 것도 이렇게 되면 벌써 사람의 손으로 될 바가 아니었다. 오직 이때 철의 머리에는 어느 날 저녁 숙이가 낭암대에서 ‘그때는 끝이 난다’고 한 한마디 말이 다시 번개같이 오싹하게 그의 머리 한 귀퉁이를 스치어 지나간 것이었다.
그는 치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는 그것도 일종의 통쾌한 미소가 되어 그 얼굴에 떠올랐다.
이윽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
내가 만일 나를 능란한 이야기꾼으로 자부할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넉넉히 끝이 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지 못하였고 또 끝낼 자신도 없는 나는 차라리 끝까지 본 것을 본 대로 다 털어놓고 일어서는 것이 제 직분일 성싶고 또 그뿐으로 겨우 역부족한 자의 덕을 삼으려 하지 아니할 수 없음을 느낀다.
아침 미명에 순이는 눈을 떴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무슨 미묘한 일종의 교감작용인지도 모르는데, 눈이 뜨이자 그는 방바닥에 한 장의 봉투를 발견하였다.
순간 순이는 순이대로 역시 모든 사정을 일시에 이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편지를 뜯었으나 물론 사연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방바닥에 엎어져서 눈물 없이 울었다. 그리고 그 힘조차 없어지자 그는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잠이 깨었을 때에는 어느덧 어슬어슬 날이 저무는 때였다. 그는 그제야 모든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가 있는 것처럼 화닥닥 일어나서 그 일어나는 힘으로 곧장 부엌에 달려갔다. 동시에 그는 깊은 마가을 저녁 도마 위에 싸늘히 빛을 감추고 있는 날카로운 것을 집어 들고 안마당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그 계집에게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잔등』, 을유문화사,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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