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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숙명의 과제 '보릿고개' 통일벼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 (KBS 2013.10.05. 방송)
숙명의 고개, 보릿고개 ‘초근목피의 과학’ - 쌀은 아니어도 영양은 따져가면서 먹도록 권장한 61년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흰 쌀밥은 그 정도로 귀했다. 너무 먹고 살기가 힘들어 쥐가 축내는 식량이 많다고 정부에서 쥐를 잡는 운동을 하는가 하면, 쌀밥을 못 먹는 날을 지정하고, 한 숟가락씩 쌀을 덜어 절미하자는 등 무수한 노력들이 있었다. 지금은 조금 낯설지만 너무 절박했던 당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희농 1호의 실패 농민들에게도 생소한 그 이름, 희농 1호. 한 정부요원이 수확량이 좋은 품종이라고 한국에 들여온 볍씨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농가 보급을 위한 시험재배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이유는 하나,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품종이 아니었다. 농업 기술 쪽 지식이 부족한 그에게 열대기후에 적합한 인디카와 온대기후에 맞는 자포니카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희농 1호의 실패는 교훈을 남겼다.
통일벼가 개발 되기까지 우리나라 기후에 맞고 생산성이 좋은 품종을 찾는 것이 한국의 국가적인 과제가 되고 있었을 무렵, 허문회 박사가 우리나라에 맞는 다수확 벼 개발에 착수했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인디카 품종으로 생산성이 뛰어난 필리핀 벼 IR8과 자포니카 품종인 우리나라 재래종, 그리고 온대와 열대의 중간에 위치한 대만 벼를 삼원교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1966년 3월, 세계 최초 삼원교배로 만들어진 새로운 종자, 통일벼가 탄생하게 된다. 통일벼 탄생 과정의 무수한 시행착오, 그 속에 숨겨진 희망과 절망의 이야기를 듣는다.
쌀 자급자족 달성의 길 성공적인 실험재배 후 1972년부터 정부는 전국 농가에 본격적으로 통일벼 보급을 시작했지만, 통일벼는 농민들에게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통일벼에 대한 농가의 냉대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단당 600kg 이상을 생산하는 농가에 대해 10만원의 상금을 지원했는가 하면, ‘다수확농민선발대회’, ‘식량증산대회’ 등을 개최하고, 추곡수매와 고미가정책을 통한 경제적 혜택도 제공하게 된다. 통일벼 보급과정에서 벌어졌던 현장의 눈물과 열정 속으로 들어가 본다.
통일벼가 가져온 것들 통일벼를 보급한지 6년째인 1977년, 쌀 생산량은 유사 이래 최고인 660만 톤을 돌파한다. 헥타르 당 수확량은 4.94톤으로 당시 세계 최고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쌀 자급자족을 하게 됨으로써, 녹색혁명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쌀이 남게 되면서 14년 만에 쌀 막걸리 제조가 다시 허용되기도 했다. 통일벼 품종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은 그대로 이어져, 이후 맛도 품질도 우수한 다양한 벼 품종이 개발됐고, 최근에는 외국과의 경쟁에 맞서기 위해 미네랄이 함유된 쌀 등 다양한 기능성 쌀까지 개발하고 있다. 또 개도국의 빈곤퇴치를 위한 다수확품종으로 우리나라의 통일벼가 해외에서 연구·보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릿고개가 사라지게 했고, 요즘은 세계의 빈곤퇴치에도 기여하고 있는 한국의 통일벼, 그 녹색혁명의 과정과 함께했던 눈물과 성취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 이 영상은 2013년 10월 5일 방영된 [다큐극장 - 녹색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다. 기적의 볍씨, 통일벼]입니다. 중수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 1호 기아의 선상에 있는 민족 구출
옮겨온 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