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글밭] 04월 03일(화) '제주 4.3 참사'
월요일인 어제에는 글밭을 일구지 못하였읍니다.
토요일, ‘함께하는 시민’에서 치른 ‘달빛밟기 및 달빛음악회’ 행사 후 기운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정작 참여해야 할 회원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아 실망하여 맥이 빠진 것일 테지요.
오늘은 제주 4.3 참사일인 4월 3일입니다.
따라서 이 제주 4.3 참사와 관련된 글밭을 일굴 생각으로 자리를 잡았읍니다.
지난 해에는 ‘가짜와 진짜’라는 제목의 글밭을,
지지난 해에는 하루 늦게 '제주 4.3사건의 아픔'이라는 제목의 글밭을 일구었더군요.
그래서 오늘의 글밭은 ‘사건’을 ‘참사’로 고쳐 지지난 해에 일구었던 글밭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마음이 그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제가 4월 3일이었읍니다.
4월 3일이면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제주 4.3 참사입니다.
이 제주 4.3 참사는 오랜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냥 묻혔던 가슴 아픈 우리의 현대사입니다.
다행히 1998년, 김대중 정권의 탄생으로 새롭게 그 아픔을 보듬기 시작했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은 공산폭동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읍니다.
이를 계기로 1999년 12월 26일, 국회에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 집니다.
이어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왔지요.
이에 따라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 도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읍니다.
이런 제주 4.3 참사의 바른 이해를 위하여 ‘제주 4.3연구소’의 자료를 살펴 봅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읍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을 당한 참사’입니다.
이 참사는 지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얽히고 섥혀 있어
꼭 찝어 어느 하나의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느 제주도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님은 일제시대 순사가 독립 후 경찰이 된 것에서부터 그 잘못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공산폭동으로 인하여 이념적인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주민들의 수많은 죽음을 슬퍼하십니다.
공산폭동에 참여한 이들을 많이 잡아 500명으로 쳐도
주민 사망자는 30만의 도민 중 3만이면 엄청난 희생을 불어온 것으로 봅니다.
이 제주 4.3 참사는 우리의 가슴 아픈 현대사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명박그네 정권의 등장으로 일부 수구 꼴통들은 이 제주 4.3 참사를
온통 폭도들의 짓거리로만 몰아가려는 듯이 희생자 재심사를 요구하고 나섭니다.
2014년,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은 박그네의 행태도 한몫을 거든 셈이지요.
어제, 이곳엔 아픔을 어루만지듯 봄비가 내렸읍니다.
그곳, 제주도에도 봄비가 내려 아픔을 어루만졌을 테지요.
제주 4.3 참사를 되새기며 월요일 새벽을 이렇게 조용히 열어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