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억새꽃 흔들리면 / 천용순
속을 비워낸
가느란 퉁소
시나위 소리
서걱서걱
마음을 벤다
모든 죄 떠안아
연신 고개 조아리다 늙은
어머니
하얀 치마폭
스적이며
교회 가시던 산모롱이
자맥질하는
하얀 꽃상여
얘야,
얘야,
너는 세상에서
원 없이 놀다 오거라
하얗게 손 흔드는
어머니
눈부셔
하늘은
티 없이 맑은
바람의 숨결로 쓰다듬는다
2. 민들레는 바람을 기다린다 / 천용순
고택 정원에
연녹색 꽃대 홀씨들
무리지어 하늘거린다
가슴깊이 품어온 자식들
곁에 두고싶은 마음에
하얀 면사포를 두른 채
기도하는 어머니 어머니들
바람에 산들산들
멀리 멀리 떠날까봐
보내려는 마음들이
정원에 가득 웅성거린다
홀씨들은 어미 마음을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바람아!
곱게곱게 불어만다오
부디 자식들 가까운 곳에
들며날며 자주볼수있게....
3. 햇살은 식물에 옷을 입힌다 / 천용순
담장밑
때도 모르고
돋아난 접시곷 새싹들
아파트 시멘트 사이에 끼어
나란히 얼굴 내밀고 있다
한겨울 소한 대한 까지
한파 몰아 치면 어쩌나?
지날때마다 눈여겨 보던 새싹은
푸석푸석 말라 비틀리며
고스라지고 있는데
어느새 입춘이 왔어
금빛 햇살은 엄마처럼
기진맥진한 어린 잎을안고
따뜻한 빛의 옷을 입히며
뿌리 깊숙이 생기를 불어넣는데...
4. 바람은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 천용순
시월의 마지막 날
우수수 흩날리는 나뭇잎 스산한 울음이
거리를 쓸어갈 때
잊혀진 계절이 쟁쟁 귓가에 머문다
자맥질하듯
낙엽은 구르고
이름 모를 슬픔에 젖어
흐느끼는 오후
망망한 하늘
바다에 돛단배 두 척 떠있다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을 싣고 간다
바람아 돛단배 밀어다오
어느새 하늘가에
뭉게뭉게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뭉게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돛단배
이룰 수없는 꿈은 슬퍼요
잊혀진 계절이 쟁쟁 귓가에 머문다
5. 봄비 / 천용순
봄비 내린 촉촉한 아침
들길에 서면
어제의
메마르고 까칠하던 풀들이
함뿍 젖어 수런거리고 있아요
젖는다는 것은
감동한다는 것
다시 일어서게 해주는
고마움에
이슬같은
구슬같은
진주알같은
보석을 만들어
온몸을 치장합니다
고마워
보석같은 친구야
6. 봄 나들이 / 천용순
1
고즈넉한 그곳에는
은하수가 펼쳐진 곳
백의 천사들이 모여
조잘조잘 속삭여요
만개한 미선나무 꽃들 속에서
잡다한 세상염려 다 잊고
나도 하얀 꽃되어 조잘조잘
은하수가 펼쳐진 하늘이 되었어요
그윽한 꽃향기 자연에서
따뜻한 햇살과
물속에 반영된 꽃 그리매가
내마음
하얗게 하얗게 물들었어요
2
산에는 나무들이
그림을 그려놓고
연둣빛 색칠을 하고 있구요
진달래도 설레설레
설레임으로 피고
목련도 아름아름
밝게 등을 달아놓았어요
들에는
냉이 쑥도 파릇파릇
기지개를 켜고
민들레도 노란 단추가
다닥다닥 붙어 발길을 붙잡았어요
나는 그만 노랑빛이 좋아
땅에 주저앉아 조잘거렸어요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소통을 하고있어요
7. 가족 / 천용순
오랫만에
가족이 둘러앉았다
사근사근 예쁜 내 막내 손녀
아삭아삭한 콩나물을 밥위에 올린다
새파란 홑잎나물이 좋다고
호들갑인 큰 손녀
갖은양념 사각사각 씹힌 김치처럼
잘 갖추어진 성숙된 손자
바글바글 끓고 있는 찌게는 식탁의 중심에 있다
방안 가득 퍼지는
구수한 냄새 속 청량고추처럼
카랑카랑한 할아버지가 수저를 든다
상큼한 오이무침처럼 싱그러운 며느리와
어디서도 돋보이는 고추장 색갈의 아들
건너에
참기름 내가 앉아 있다
모두에게 스며들어
어우렁 더우렁 맛있는 비빕밥이 되는
우리가족
8. 물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천용순
갈은동 계곡
철철 흘러내리며 요동치는
물은
오장육부
뼈 마디 하나 없어서일까
속도 겉도
다를 게 없는
저 마알간 몸짓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종일 노래하고 춤을 추는
네가 좋다
명품인 옷도 장신구도
거추장스러운 것임을
네 앞에 고백하겠다
너처럼 살고 싶다
9. 청산도 몽돌들
바다는
몽돌의 아버지 같아
한사코 끝없이 줄곧
파도란 회초리를 들고 산 거야
본디 까칠하고 이해성 없이
누구 말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에
한결같이 파도란 매를 든 거였어
환골탈태시킨 거지
그래서
청산 해변 몽돌들
하나같이 동글동글 따뜻해
- 누워 보세요
자근자근 시원하게 지압해 드릴게요 -
베푸는 생을 사고 있는 거야
10. 각설이 / 천용순
구걸로 연명 하면서도
한 숟갈도 나누었던 그 옛날
어쩜 이시대 백성에게 베풀며
살라고 예언하는 타령이였을까?
시대의 변천 물질은 풍요롭지만
정신적 빈곤인 세인들 용기 주며
독특한 의상과 풍자 해학 위트로
자신을 낮추면서
타령 아닌 현대품바 예술인
베푼 삶은 자신의 곳간이 풍요롭다며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
시대 앞지른 각설이는 깨우침의 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