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 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양국 입장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은 각각 중국·유럽 관계 개선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최대한 조기에 평화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핵무기 사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중국과 유럽의 관계는 제3자(미국)를 겨냥하지도, 의지하지도, 제3자의 제한을 받지도 않고 유럽이 독자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는다"며 유럽의 대미국 자주성을 강조했다. 미·중 대립 구도에서 유럽의 독자적 노선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폴리티코:마크롱 대통령,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자세 변화 설득에 실패/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관심을 모은 것은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위한 중국의 역할론.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이성을 되찾게 하고, 모두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 당신(시 주석)의 역할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이용해 중립적인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시 주석의 행보에 큰 관심을 가진 우크라이나는 시 주석-마크롱 대통령 정상회담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6일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수 있도록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고, 그걸 논의하러 왔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면서 "시 주석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기 위해 적절한 시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동행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시 주석이 '적절한 조건이 만들어지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스트라나.ua는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서방 측은 중국의 우크라이나 평화안을 사실상 거부했다"며 "중국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이 문제(전쟁 종식및 평화 정착 방안)를 논의하기 위한 아무런 동기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중국이 유럽 지도자들로부터 자체 평화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접점이 만들어지면, 그 것이 키예프(키이우)와의 협상에서 기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스트라나.ua는 "만약 시 주석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키예프를 방문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 중국과 EU 사이에 일부 합의가 이뤄졌고, 타협안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이에 대해 극히 비관적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시 주석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며 "시 주석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기존 입장을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모든 당사국이 합당한 안보 우려를 갖고 있다"며 러시아 압박에 대한 암시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오히려 "시진핑 측근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호스트(시 주석)보다 두 배나 더 많은 말을 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며 "이는 마크롱 측의 외교적 실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썼다.
◇ 여운을 남긴 우크라이나의 대러 대화 조건
안드리 시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부실장은 5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전선에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고,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 행정구역 경계까지 도달한다면, 그 다음에 크림반도의 미래에 대한 외교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를 직접 해방하는 대안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이날 유럽 라디오 매체에 출연해 “5~7개월이면 크림반도 문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 팀이 러시아군이 1991년 국경을 떠날 때까지 협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에 비춰보면, 시비가 부실장의 발언은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면서 "나중에 예르마크 실장이 '가능한 옵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정정했다"고 전했다. 또 시비가의 외교적 논의는 러시아군의 자발적인 크림반도 철수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도 했다.
다닐로프 서기/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러-우크라 협상에서 악수를 나누는 양국 대표들/현지 매체 영상 캡처
강경한 반응은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국방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격)에게서 나왔다. 그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키예프와 모스크바 간의 평화 회담을 제안하면 '정치적 자살'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격렬한 전투 와중에 외교적 해결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누군가가 대통령의 '정치적 암살'을 원한다면, 그것을 제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라나.ua는 그러나 "시비가는 대통령실의 보통 직원이 아니라, 국제문제를 담당하는 부실장"이라며 "크림반도 협상에 대한 발언은 '번역 오류'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우선 키예프측에 '협상 준비 자세를 보여 달라'는 서방 측에 대한 제스처. 또 하나는 적(러시아군)의 방어태세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역정보라는 것.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러시아 측에 심어준 뒤 러시아로부터 '선의의 양보'를 얻어내고 전격적으로 크림반도를 해방한다는 시나리오다. 유사한 일이 지난해 11월 러시아군의 드네프로강 서안(헤르손) 철수 시에도 일어났다고 스트라나.ua는 상기시켰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크림반도의 지위에 관해서는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과 같은 일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뉘앙스를 스트라나.ua는 풍겼다. 그렇다면 서방측에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다.
◇ 오늘(5, 6일) 주요 뉴스 요약
- 러시아는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그간 논란이 된 우크라이나 어린이 납치설을 부인하는 일련의 행동으로 나서자 서방 측이 강력히 반발했다. 미국과 영국 등은 러시아가 안보리 의장국이라는 지위를 악용하는 처사라며 회의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과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러시아 어린이 인권담당 대통령 전권대표(옴부즈맨)인 마리야 리보바-벨로바가 화상으로 참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납치설을 부인하면서 이들 중 강제로 입양된 어린이는 한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서방 참석자들은 그녀가 발언하는 동안 회의장을 떠났다.
- 이웃나라 폴란드를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사이에 국경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가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사이에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더욱 중요한 역사적 국경도 없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조금 더 나란히 가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라나.ua는 소식통을 인용해 "대통령실과 가까운 전문가 집단에서는 전쟁 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연합을 만드는 아이디어가 한동안 논의됐다"면서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러-벨라루스 연합국가 최고 국무회의를 공동주재하는 푸틴, 루카셴코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 푸틴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5, 6일 모스크바에서 만나 양국의 공동 안보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6일 루카셴코 대통령과 함께 양국간의 '연합국가'(Union State) 최고 국무회의 회의(Заседание Высше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Совета)를 열고, 양국 공동 안보 전략 개발과 2021~2023년 연합국가 창설 조약의 주요 조항 이행 등을 논의했다. 양국은 1990년대 말부터 '연합국가' 창설을 추진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은 국방 및 안보 분야 교류를 강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며 "이는 두 나라와 두나라 국민의 근본적 이익에 부합하고 오늘날 국제 정세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루카셴코 대통령은 "양국 통합(국가연합)을 위한 28개 프로그램이 거의 80% 달성됐다"고 밝혔다.
- 러시아 모스크바 도심의 국방부 소유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일부를 태웠다고 타스 통신이 5일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후 7시30분 모스크바의 국방부 관리 건물 중 한 곳에서 근무자들이 구내에서 연기를 감지했다"며 "소방대와 비상 대응 부서가 출동했다"고 밝혔다. 화재는 건물 60㎡가량을 태운 뒤 진화됐으며, 사상자는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