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 숲
이순화
거기서 뭐하세요
덩굴 숲에 들어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퍼렇게 물든 손으로
또 알겠니, 새벽이 오면 내 몸에
물 흐르는 소리 들릴지
가시덩굴 칭칭 감고 그렇게
꽃피우기 원하세요?
얘야 발바닥이 가렵구나
젖가슴이 저릿저릿 하는구나
들리지 않니?
물길 드는 소리
꽃망울 벙글어
피톨 미쳐날뛰는 소리
새벽이 오면
내 몸에 퍼런 물 흐르겠지
덩굴 숲 우거지겠지
울컥, 헛구역질
시퍼런 달빛 쏟아내겠지
---이순화 시집 {우리는 저마다 기타줄}에서
이순화 시인의 [덩굴 숲]은 생명의 숲이자 우리 인간들의 삶에의 의지의 비옥한 텃밭이라고 할 수가 있다. 덩굴은 삶에의 의지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이고, 꽃은 모든 생명체의 목적이자 그 결정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화급한 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순화 시인의 [덩굴 숲]은 원시림이고, 성적 욕망이 자기 자신의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꽃을 피우는 곳이다. 모든 생명체는 평등하지만, 그 꽃을 피우는 일에는 “얘야 발바닥이 가렵구나/ 젖가슴이 저릿저릿 하는구나/ 들리지 않니?/ 물길 드는 소리”라는 시구에서처럼,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양보를 하지 않는다. 성욕은 물길이고, 물길은 흘러 넘치며, 물은 흐르고, 또 흐른다.
최종심급은 성욕이고, 이 성욕은 어느 누구도 감추거나 회피할 수가 없다. 토마토와 사과도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열매를 맺고, 은행나무와 대추나무도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열매를 맺는다. 새우와 멸치도 그들의 배가 터지도록 산란을 하고, 꽃게와 오징어도 그들의 배가 터지도록 산란을 한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가시덩굴 칭칭 감고 그렇게/ 꽃피우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꽃을 피운다는 것은 “꽃망울 벙글어/ 피톨 미쳐 날”뛴다는 것이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유아론唯我論적이고 절대적이며, 그것은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의 구체적인 증거인 가시덩굴로 나타난다. 가시덩굴은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들에 대한 결사항전의 표시이며, 이 ‘사즉생의 각오’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성욕은 꽃이고, 꽃은 아름다움이고, 이 아름다움에는 수치심이 없다.
남자는 씨 뿌리고, 또 뿌리는 존재이고, 여자는 낳고, 또 낳는 존재이다. 이 남자의 바람기와 여자의 바람기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며, 모든 생명체의 기원이 된다.
“새벽이 오면/ 내 몸에 퍼런 물 흐르겠지/ 덩굴 숲 우거지겠지”라는 덩굴 숲의 생명력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고, 또한, “울컥, 헛구역질/ 시퍼런 달빛 쏟아내겠지”라는 덩굴 숲의 생산력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은 자연의 소리이고, 이 자연의 소리는 덩굴 숲의 소리이다. 모든 꽃은 우연히 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고 피는 것이다.
이순화 시인의 [덩굴 숲] 앞에서는 모두가 다같이 천하무적의 역전의 용사가 된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그들은 어느 새 산란을 마친 연어들처럼 죽어간다.
산다는 것은 순교이고, 거룩하고 장엄하게 꽃을 피우고 죽는 것이다.
이순화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