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 동산 철거 잡음 때문에 일부 미국 국민 및 정치인들의 심기가 편치 않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 에드 로이스, 대너 호르라바처, 애니 팔리오마베가, 조셀 크라우리 등의 국회의원들.) 이들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에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없었으면 지금쯤 공산치하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 상황인데 배부른 타령 한다는 생각을 해서인 것 같다.
사실 많은 미국인은 한국의 경제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력으로 감싸주었던 보호막이 있었기 가능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배은망덕한 국민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증표로 미국의 전쟁 영웅 맥아더 장군에 대한 격하 운동과 그의 동상에 대한 철거운동에서 찾는다.
틀린 말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민은 미국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미국은 알아줘야 한다. 일부 극소수 반미파들의 소란을 한국민의 대다수 의견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우선 한국에 대한 말을 하기 전 1950년대 초 미국에서 미국정부가 맥아더 장군을 어떻게 대하였던가를 짚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미국 정치상황 아이로니컬한 면이 있어서다.
美민주당 행정부가 맥아더를 먼저 죽인 전력(前歷)
사실 맥아더 장군을 제일 먼저 참소한 자들은 다름 아닌 바로 1950년 당시의 미국 민주당 트루먼 행정부 관료들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유명한 장군이었고 트루먼 행정부 때 국방장관이었던 제너럴 조지 마샬, 딘 애치슨 국무장관 등등 트루먼 대통령 보좌관들이 맥아더 장군 죽이기에 나섰던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맥아더를 해직하고 트루먼에 예스만 말할 수 있는 “예스맨“을 원했다. 적어도 한국전쟁에서는 그랬다. 그리하여 맥아더 해임을 적극 권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그러나 이들의 어드바이스를 묵살했다. 전쟁 중 장수를 바꾸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1950년 말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고, 맥아더 장군 휘하의 병력이 최악의 패배를 당하며 1.4 후퇴를 단행하고, 또 이에 대한 대응으로 맥아더 장군은 미국의 세계 최강 군사력(핵무기)으로 북한은 물론 중국의 모택동 공산 정권까지도 뽑을 수 있다는 계산 하에 만주에 50개의 원자탄 투하 강경론을 편다.
트루먼은 맥아더의 그런 강경론에 맥아더에 대한 생각에 회의를 나타낸다. 트루먼은 군사적 해결보다 정치적 해결을 원해서다. 그런데도 맥아더 장군은 중공과 소련을 자극하는 돌출적 정치적 발언을 의도적으로 흘린다. 트루먼 심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불편해진다. 또 북진을 하건 안하건은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인데 군사령관이 정치적 관건에 일일이 참견하니 트루먼은 맥아더 장군을 서서히 눈엣가시로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 상황이 이렇게 험악해져가는 상황인데도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의 뜻을 더 거스린다. 맥아더에게 행정부가 계속 입단속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맥아더는 계속 이런 요청을 무시한다. 막무가내로만 나간다. 당대 역사를 선악(善惡)을 근거로 한 “동서 대결장”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눠 “서방민주국가=선(善), ”동부공산국가=약(惡‘)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공산당의 본 뿌리에 대한 징벌만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최상의 길이라며 군사작전이만이 최고라는 방법론을 설교하며 대통령의 말을 계속 무시한다.
맥아더의 평화협상 지렛대는 “군사력”
맥아더가 이런 신념을 계속 토로할 수 있었던 것은 맥아더의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어서였다. 맥아더는 트루먼 태통령을 악을 퇴치할 수 있는 기본적 상식도 모르는 무능한 통수권자로 단정을 내렸었다. 때문에 이런 이유로 맥아더는 독단적인 군사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맥아더는 결국 대통령 명령을 거역하기에 이른다.
대단한 배짱이요 모험이다. 어디서 그런 뱃심이 나왔는지 군 최고통수권자 대통령의 말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생각 하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장군은 미국 역사상 맥아더 외의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맥아더의 트루먼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정치행보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이에 트루먼은 강경하게 맥아더에게 입단속을 하라는 강력한 명령을 내린다. 이에 맥아더는 그런 명령을 비웃 듯 나름대로의 행동을 취한다. 중공 모택동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발언을 한다. 핵폭탄 만주 투하 협박이 그것이다. 언론을 통한 협박이었다. 이에 트루먼의 맥아더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다. 대통령에 대한 월권행위며 도전이라 간주한다.
백악관에서는 백악관 참모의 긴급회동을 소집한다. 모든 어드바이져들이 맥아더 장군의 해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민들이 전쟁 영웅으로 생각하는 맥아더 장군을 대통령이 해임하면 그 부정적 여파는 굉장할 것으로 생각하고 결단을 못 내린다. 정치 도박판의 액수가 너무 커서다. 이에 후버 FBI 국장이 나선다. 법무부 장관이 그동안 맥아더에게 흠집이 될 만한 정보를 수집한 게 있으면 대통령에게 제출하라고 부탁해서 나선 것이다. 후버 국장은 정치적으로 맥아더가 타격받을 수 있는 만 한 사실들을 트루먼에게 제출한다.
트루먼은 후버 국장의 그런 제의에 비굴한 정치는 안한다고 난색을 보인다. “난 그런 것 보고 싶지 않다. 모르는 것으로 하겠다.”라는 말로 후버 국장의 제의를 물리친다. 이에 후버 국장은 대통령 각하가 그런 것을 직접 문제 삼으라는 뜻이 아니라 삼자를 통하여 언론에 흘림으로써 맥아더가 언론으로부터 몰매 맞아 숨통을 끊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트루먼은 이에 확고한 뜻을 밝힌다. 그런 옹졸한 통치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더 이상의 맥아더 약점에 대한 언급에 쐐기를 박는다.
이런 배려가 있었음에도 맥아더는 계속 공산당 정벌 론을 펼친다. 더 강경한 군사행동을 통한 적국의 기세를 잡겠다 한다. 그리하여 중공과 소련을 실제 자극하는 군사적 행동도 보인다. 압록강 접근이 그것이다. 트루먼은 중공군 한반도 진입 차단을 막기 위해서 압록강 다리를 폭파한다면 남쪽 반(半)의 다리만 폭파하지 절대 북쪽 반의 다리를 폭파해서 안 된다는 희한한 명령을 내린 바가 있던 상황이다.
맥아더는 그런 명령을 비웃는다.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다리 폭파를 하면 다리 전체를 폭파하는 것이지 어떻게 적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 적국의 반 토막 다리만 건들지 말고 폭격하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 하에 대통령을 더 무시한다. 그래서 그런지 맥아더는 더 무모한 말을 내쏟고 군사를 북진할 태세로 준비시킨다.
트루먼은 맥아더에 대하여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 더 이상 맥아더를 한국전 최고사령관 직에 있게 했다간 핵무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을 한다. 이미 일본 항복을 원자폭탄으로 받아냈고, 또 그 ‘대학살’ 했다는 딱지가 붙여진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또 만주에 핵폭탄을 떨어트리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대통령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에 1951년4월11일 맥아더를 한국전 총사령관 직책에서 해임하는 결정을 내린다.
미국민은 뜻밖의 트루먼 결정에 놀라 분노가 극으로 치닫는다. 오성(五星)을 떨어트리고 미국에 돌아온 맥아더 장군은 반대효과로 영웅대접을 받는다. 뉴욕에서 퍼레이드가 있었고 국회에서는 “노병은 죽지 않고 서서히 사라진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는 유명한 연설로 50년의 군 경력을 마감한다.
이 때 트루먼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트루먼 대통령 장모까지도 사위 대통령을 비판할 정도였으니 맥아더 장군의 인기도가 어느 정도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맥아더 해임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트루먼"
야당 공화당은 맥아더 장군 해임에 대해서 트루먼 대통령이 내린 결정 중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라 비난하며 트루먼에 대한 호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 기회에 민주당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서인지 그 비판은 날이 갈수록 수위를 높인다. 비판의 씨알은 먹혀들었다. 트루먼을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세우는데 성공하여 그를 낙마시킨다.
1952년 대선 전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국민신임도는 40%대 아래 선으로 떨어져 트루먼은 정치적 불구자가 되었다. 좀 더 시일이 지나니 국민 지지도가 32%까지 떨어진다. 이에 트루먼은 재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재선의 꿈을 접는다. 그리고 고향 미조리 주 인디펜덴스로 귀향한다. 그렇지만 트루먼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북 영토를 김일성의 공산정권에게 양보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공산의 이데올로기 전쟁은 세계 곳곳에 터져 나와 더 많은 생명을 잃는 결과를 보게 된다. 월남전이 대표적인 예다. 수많은 미군이 월남에서 죽어가던 와중 트루먼은 1972년 세상을 뜬다.
전쟁 수습은 인정이 아닌 “냉정”
한때 최고 50만의 미군을 월남에 투입하고도 거의 6만 명의 미군이 전사하고, 또 수십만 명이 부상당한 사실을 저승에서 접했을 때 트루먼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 한국전의 1950년대 초 당시 미국이 가졌던 최고의 우월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실 한국전 당시 미국 군사력은 중공이 수억의 오합지졸 군대를 한국전에 투입한다 해도 그를 제압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핵무기”가 바로 그것이다. 중공은 그런 무기개발은 꿈에도 꿀 수 없이 상황이었다. 소련이 첩자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 기술을 훔쳐내 핵폭탄을 개발한지 몇 년 후다. 때문에 트루먼이 맥아더의 말대로 중공을 군사력으로 만주에 대한 폭격을 강행했다면 그 만주 영토를 협상의 지렛대(leverage)로 삼아 김일성을 축출하고 남북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트루먼은 휴머니즘에 빠져 이북을 김일성 정권에 넘긴다.
맥아더 장군은 당시 훗날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본 사람이었고, 그런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비록 욕을 먹더라도 원자폭탄을 일본에 떨어트려 일본을 항복시켜 더 많은 미군병사의 생명을 살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많은 생명과 한국전에 투입되었던 미군 병사를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판단 실수로 트루먼은 훗날 결과적으로 훨씬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군복 벗고 영웅으로 부활한 맥아더"
맥아더는 트루먼의 명령으로 군복을 벗었지만 고국에서 금의환향의 환영을 받는다. 그는 그 때 “There is no substitute for victory.(전쟁에서는 승리 외의 대안은 없다.)"는 유명한 말로 미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훗날 맥아더를 쫓아낸 “트루먼 민주당 행정부” 결정은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한반도를 남북한이라는 두 개의 주권 국가로 토막 내어 그 후유증으로 미국은 한국에 미군주둔을 반영구화 시키게 되었고, 또 한반도의 전쟁재발을 막는데 막대한 돈과 인력을 소비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또 남북이 갈라짐으로써 김정일 폭도 정권을 추종하는 자들이 배후조종을 하게 하여 맥아더 장군의 동상까지도 철거시키려는 후유증을 겪는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만일 트루먼이 한 번 더 욕 먹는 셈 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트린 핵폭탄을 만주에 투하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남북은 통일은 그때 이미 되었을 것이고, 훗날 울진, 삼척의 무장공비 사건, 1.21 청와대 습격사건 같은 일이 없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수퍼파워 미국의 자존심을 구겼던 1968년도의 프에블로호 납치 사건과 1976년 8월 “돌아올 수 없는 다리”에서의 미군에 대한 도끼로의 살인사건 만행도 애초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트루먼이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떨어트릴 수 있었던 것은 만약 원폭 투하 없이 육군의 보병과 공군의 폭격으로만 일본을 항복하게 만들려면 최소 1-2만여 명의 미군 희생자가 더 있어야만 가능하여 그런 엄청난 수의 미군 희생자 없이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하여 원폭을 투하했다. 즉 어떤 식의 전쟁을 치러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지만 보병의 미군 병사를 많이 투입하여 그들을 죽인 다음 전쟁에 승리하면 트루먼은 역사의 역적으로 몰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단시일 안에 전쟁을 끝냈으니 선(善)을 위해서 싸운 더 많은 병사가 살 수 있었고, 나중에 우리나라까지도 일제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다.
트루먼은 그러나 한국전쟁을 맞이해서는 같은 선택권인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반도는 통일 대신 분단되었다. 분단은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55년 동안 김일성/김정일 정권에서 미국의 옛날 노예보다 더 혹독한 고초를 겪으면 살게 한 결과를 낳게 만든 것은 트루먼의 오판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만일 당시 맥아더의 뜻대로 미국의 전능에 가까운 군사력을 올바르게 썼다면 이북 동포들은 그동안의 고초를 겪지 않았을 것이고, 또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국민의 잠재 재능을 십분 더 발휘하여 더 나은 국가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盧정권으로 인하여 흘려지는 맥아더의 피눈물"
그런데 한 통수권자의 오판, 즉 “트루먼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은 명장 맥아더 장군을 오지 한국전에서 미국 본토 정치인이 쏜 화살에 사살 당했고, 또 그가 죽은 41년 후 2005년도에 다시 한국의 좌파 무리들에 의해 부관참시(剖棺斬屍)와 같은 일을 당하고 있다. 다른 정부에서는 있을 수도 없었던 일이 노무현 정부에서 일어나는 것은 맥아더 동상 철거 주장자들이 노정부의 “색깔”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벌인 일이다. 철거를 주장해도 본래 좌파적 성격을 띠고 출범한 정권이기 때문에 비록 철거가 되지 않는다 해도 얻는 게 많다는 계산을 해서다.
좌파에게 돌아갈 그 실익은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이 어떻게 발발한지도 잘 모르는 10대, 20대, 30대 초반의 젊은 층 및 철부지 386세대들이 좌파 선동에 동조한다. 이들이 외치는 “양키 고홈”은 미국의 정가에 화두로 등장하여 한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을 조성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제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를 고려한다. 맥아도 동상의 미국 철수도 공공연히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좌파가 얻은 무형적 수확은 엄청 크다.
역사적 비극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노무현 정권에서는 아무렇지 않는 일로 일어나고 있고, 또 그런 일을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사실에 기만 막힐 따름이다. 아마 이런 일에 대한 방관적 자세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삐걱삐걱하면서 바람 앞의 등잔불과 같은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한미관계 정상화 기대는 더 이상 하기 않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들게 한다. 2년 반의 나머지 임기 세월이 빨리 흘러가길 학수고대한다.
한국전쟁 전체 희생자
한국/미국을 포함한 UN군 전체 희생자 (사망, 행방불명, 부상자)
995,601명.
북한/중공/소련의 전체 희생자 (사망, 행방불명, 부상자)
약 1,500,000명.
- 맺음말 -
"김일성" 이런 비극 전쟁의 전범자고, “김정일”이 폭정으로 약 2,800만 명 이북 동포들을 굶어죽이는 상황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다면 그 사람들은 이북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분명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인권”이라는 낱말의 뜻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동상 철거에 대해 盧 정권은 겨우 “한미동맹에 금갈 수 있는 일이니 자제해야 한다.”라는 말만 합니다. 누가 선(善)하고 누가 악(惡)한지 구분도 제대로 못하는 감을 풍기는 현 정부가 국정을 이끄니 국가의 기강 뿌리가 뽑힐 지경에까지 오게 된 것 같네요. 더 중요한 사실은 현 盧정부가 아직 이 문제의 심각성을 그리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데 있지요. 박정희는 독재자라며 끝없이 격하하고 과거청산의 미명하에 그의 공적에 대해선 폄하만 합니다. 세계의 경제 모범 국으로 일굴 수 있게 도와준 맥아더 장군도 같은 식으로 욕되게 하네요. 그런데 정작 민족상잔전쟁의 원흉이며 폭정의 본보기인 김일성/김정일 정권에 대해선 두둔의 일관으로 나갑니다. 그들의 눈치만 봅니다. 폭군의 폭정에 대해서는 한없는 아량을 베푸는 현 정권을 역사가 어떻게 평가하려는지 궁금한 생각을 금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라 생각되어 이 글을 썼습니다. - 펌 -
첫댓글 우리나라가 점점 빨갛게 변해가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의 사실적증언 보다 강정구같은 빨갱이들이 주절대는 소리에 더 현혹되는것 같아 답답합니다.빨갱이들이 활개치며 선동하도록 내 버려두는 놈현일당도 문제아 들이지만요....
강정구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정말 한집단 족속들이죠 강정구를 감싸는 김근태 정동영이나 그들을 감싸는 노무현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