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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극장가로 몰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개봉 13일 만에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기록했다 (KBS 뉴스). 흥행 기록 및 성과국내 관객 수: 지난 5일 개봉 이후 입소문을 타며 개봉 13일 만에(8월 17일 기준) 500만 관객을 넘었다 (뉴시스).
글로벌 성적: 전 세계에서 11억 달러의 수익을 올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역대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습니다 (SBS 뉴스). 1달러당 1,417.34원을 적용할 경우, 정확히 1조 5,590억 7,400만 원이 된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오디세이에 진심일까?
오디세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미리 공부를 하고 보라고, 이런 것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들 알려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들도 많다. 그곳에서 인생을 배우고, 철학과 사상을 배우고 싶어한다.
마치 중국사람들이 삼국지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듯, 세상이 오디세이를 통해 인생을 배우려고 몰입한다.
오디세이 역시 인생을 통찰하는 하나의 눈이 되어 주고 있다. 결국 인간은 자기를 알고 싶고, 자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오디세이의 시작은 이렇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이웃 국가를 순방하던 중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눈이 맞아 그녀를 트로이(현재의 튀르키예)로 데려가 버린 것입니다.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메넬라오스)은 극도로 분노하여 복수와 아내 탈환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힘만으로는 부족했기에, 당시 그리스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케네 왕국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을 찾아갑니다. 아가멤논은 제수씨를 되찾고 트로이를 정벌하기 위해 그리스 내 여러 소왕국의 왕들을 규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참전하게 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이타카 섬의 왕인 오디세우스입니다. 수많은 그리스 연합군이 배를 이끌고 트로이로 진격하며 트로이 전쟁의 서막이 오릅니다. 하지만 트로이의 성벽은 철옹성이어서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 이어집니다.
10년간 성을 함락하지 못해 고심하던 중, 오디세우스가 결정적인 계책을 냅니다. "우리가 후퇴하는 척하면서 거대한 목마를 남겨두자. 그리고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치는 제물인 것처럼 위장하자."
트로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목마를 불태울지 고민하다가, 신에게 바친 제물이니 전리품으로 두기로 결정하고 승리의 술 파티를 벌인 뒤 잠에 빠져듭니다. 그날 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전사들이 줄을 타고 내려와 수문장들을 처치하고 성문을 활짝 엽니다. 매복해 있던 그리스 본대가 들이닥치면서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와 트로이의 함락으로 끝납니다.
승리의 전리품인줄 알았던 트로이 목마가 오히려 그들을 패배시키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흔히 많은 종교학자들은 중세시대를 이교를 정복한 기독교의 승리처럼 생각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결정적인 실수있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300년 동안 교회를 박해했지만 교회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작전을 바꾸어 목마를 만들어 교회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과 6절, 7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불법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이 비밀이 어떻게 교회를 점령해 갔는지, 그리고 그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의 감람산 설교에서 기독교 초기의 박해와 중세 암흑시대의 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초기 교회 시절 사탄은 로마 제국을 통해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박해는 오해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은 식인 풍습으로 오해받았고, 형제자매라 부르면서 사랑의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관습은 근친상간을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자 무신론자로 몰았고 제국에 대한 반역이자 중범죄로 간주하였습니다.
이러한 증오는 곧 끔찍한 대학살로 이어졌습니다. 기원후 64년 로마시에 대화재가 나자 네로 황제는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씌웠습니다. 어떤 이는 짐승의 가죽을 쓴 채 개에게 물려 죽었고, 어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어떤 이는 밤을 밝히는 횃불로 불태워졌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울과 베드로도 이때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 뒤를 이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주와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하면서 이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처형하거나 유배를 보냈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를 간 것도 이때입니다. 이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데키우스, 발레리아누스 황제 때에도 박해가 이어져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하고 감독과 장로들이 처형되었습니다.
이 핍박의 광기는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303년부터 모든 교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고 예배를 금지하며 수많은 성도들을 감옥과 광산과 처형장으로 보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대박해'라고 부를 만큼 로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 땅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때의 참상을 역사적기록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핍박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소유를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피로써 그들의 증언을 인쳤다. 귀족과 노예, 부자와 가난한 자, 학식 있는 자와 무지한 자가 똑같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로마시 외곽에는 카타콤이라고 하는 지하 묘지들이 있습니다. 로마시 주변에 60개가 넘고 전체 굴의 길이는 수백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에 가족들과 순교자들을 매장했고 박해가 심해지면 이곳에 숨기도 했습니다. 지하 깊은 곳에 모여든 성도들은 횃불 하나에 의지한 채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과 소망을 카타콤 벽면에 그렸는데, 물고기 그림은 예수님의 신분과 구원 사역을 압축한 짧은 신앙고백이었고, 선한 목자와 양 떼와 비둘기 등은 구원과 내세, 하늘의 안식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어둠과 불편 속에서 그들이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온갖 안락함을 다 빼앗기고 햇빛조차 볼 수 없는 어두운 땅속에서 지내는 동안 한마디의 불평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과 인내와 소망이 가득한 말로 서로 격려하며 궁핍과 괴로움을 견디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형대의 불길 속에서도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와 천사들이 자기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폭력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멸하려던 사탄의 노력은 헛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명을 바친 대쟁투는 그 충실한 기수들이 자기의 담당 구역에서 싸우다 쓰러졌을 때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패배함으로써 이겼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죽임을 당했지만 그분의 사업은 꾸준히 발전되었다. 복음은 끊임없이 전파되었고 믿는 자의 수효는 더욱더 증가되었다.“
패배함으로써 이겼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설입니까? 박해는 교회를 더욱 순결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선자가 발붙일 자리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남아 있다면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패배함으로써 이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박해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 시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그의 책 《호교론》에서 "그리스도인의 피는 씨앗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마가 그리스도인들을 공개 처형한 것은 그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과 죽기 전 그들이 남긴 증언은 구경꾼들에게 기독교에 생명을 바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사탄은 300년의 경험을 통해 어떤 박해로도 교회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연합군처럼 작전을 바꿉니다. 사탄은 자기의 깃발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꽂음으로써 하나님의 정부를 대적하여 더 성공적으로 싸우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탄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이용했습니다. 주후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경쟁자 막센티우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십자가 문양과 "이것으로 승리하라"는 글귀를 보았고, 그날 밤 꿈에 그 문양을 깃발과 병사들의 방패에 그려 넣고 싸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음 날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좁은 밀비우스 다리 위에 몰려든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강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듬해인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리키니우스 황제가 밀라노에서 만나서 종교 정책에 합의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밀라노 칙령입니다. 이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종교를 선택하고 예배할 자유가 주어졌고, 박해 기간에 빼앗겼던 교회 건물과 재산도 반환되었습니다.
얼핏 보면 교회가 세상 권력을 이기고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큰 대적은 무력으로 얻지 못한 것을 계략을 통해 얻고자 애썼다. 박해는 그치고 그 대신에 현세적 번영과 세속적 명예라는 위험한 유혹이 들어섰다.“
300년이나 계속된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교회는 오히려 위험해졌습니다. 현세적 번영과 세속적 명예라는 치명적인 독을 품은 트로이 목마가 교회 한가운데로 밀려 들어온 것입니다. 성 밖의 칼이 성 안의 목마로 바뀐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핍박은 교회를 베려던 칼이었으나, 타협은 교회를 잠들게 한 자장가였다."
칼 앞에서 깨어 있던 교회가 자장가 앞에서는 잠들고 말았습니다. 핍박의 폭풍 속에서 지켜졌던 교회의 순수성이 권력자가 내민 달콤한 평화와 타협하면서 서서히, 그러나 철저하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바울이 이 편지를 쓰던 1세기 당시에 이미 교회 안에 불법의 비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왜 불법의 비밀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이 기독교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300년 동안 불법의 비밀을 막은 자는 로마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원후 330년 바울의 예언대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476년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서로마가 분열되면서 서유럽에 거대한 권력의 공백이 생깁니다. 막는 자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치고 올라온 것이 바로 로마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이 불법의 비밀은 무슨 일을 벌입니까? 본문 4절입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여기서 '대적하는 자'는 헬라어 원어로 '안티케이메노스'입니다. 단순히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싸우거나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위해 대항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접두어 '안티'는 '반대'라는 뜻도 있지만 '대신하여'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세력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여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진리의 율법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정체가 바로 교황권입니다.
이 불법의 비밀이 어떤 일들을 벌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4년에 발표한 회칙 《공동의 기쁨에 대하여》에서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18세기 교회법 학자 루키우스 페라리스가 저술한 《프롬프타 비블리오테카》에서는 교황의 권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황에 관하여 말하자면 교황은 이를테면 땅 위의 하나님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의 유일한 주권자요 왕 중의 으뜸가는 왕이며 온전한 권세를 지닌 자로서 전능하신 하느님으로부터 땅과 하늘나라를 다스리도록 위임받았다."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입니까? 이런 주장은 교황권이 바울이 경고한 대적하는 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둘째, 교인들에게서 성경을 빼앗았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인 1229년 툴루즈 공의회, 1234년 타라고나 공의회 등에서 성경 소유를 금지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1559년 트렌토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교황 바오로 4세는 교황청 최초의 공식 금서 목록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성경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교황청의 허가 없이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인쇄, 소유 또는 읽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또한 허가 없이 자국어 성경을 판매하거나 공급하는 서적상은 그 판매 대금을 몰수당하고 죄질에 따라 추가적인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교황권이 왜 성경을 빼앗았을까요? 성경은 오류를 찾아내는 탐지기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전등을 끕니다.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의 오류를 탐지하지 못하도록 성경을 금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1965년부터 성경을 전면 허용하여 현재는 가톨릭 신자들도 성경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께 속한 죄 사함의 권한을 가로챘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461항에서는 "참으로 주교들과 사제들은 성품성사의 권능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게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고해성사하는 신자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트렌토 공의회 제14회기 참회성사에 관한 교령 중 카논에서는 "누구든지 사제의 성사적 사죄가 재판관으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고백하는 자에게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하고 선언하는 단순한 직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라고 선언합니다. 사제가 단지 하나님의 용서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죄를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요한복음 20장 23절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이 말씀을 근거로 가톨릭 사제에게 신자의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신자는 반드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가 죄 용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한 서기관이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말한 것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만일 사제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또 다른 중보자를 두는 셈이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할 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그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죄가 그대로 남아 있음을 엄숙히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사람에게 가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그'는 하나님입니다. 죄의 자백도 죄의 용서도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인을 유일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십계명을 변경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십계명 중 두 가지를 변경했는데, 첫째는 우상 숭배를 금지한 둘째 계명을 삭제한 것이고, 둘째는 안식일 계명을 주일로 변경한 것입니다. 364년 라오디게아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는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 쉼으로써 유대화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날에 일해야 한다. 그러나 주의 날을 존중해야 하며 가능한 한 그날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쉬어야 한다. 만약 누구든지 유대인처럼 행하는 것이 발견되면 그리스도로부터 파문될지어다.“
교회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서 직접 돌비에 새겨 주신 계명을 변경할 수 있을까요? 《프롬프타 비블리오테카》 제6권 교황 항목 제2부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지극히 큰 권위와 권세를 지니고 있어서 하나님의 법까지도 수정하고 선포하며 해석할 수 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율법도 수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권력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며 그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양 떼를 맬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는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율법을 수정할 수 있다면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사실 하나님보다 높은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명백히 바울이 경고한 '모든 신 위에 자기를 높이는 대적하는 자'의 행위입니다.
다섯째, 미사로 그리스도의 중보를 대체했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367항에서는 미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성체성사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희생 제사이다. 왜냐하면 희생 제물은 하나이며 동일하기 때문이다. 당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셨던 바로 그분이 이제 사제들의 직무를 통해 자신을 바치신다. 유일한 차이점은 바치는 방식뿐이다. 이 희생 제사는 참으로 속죄 제사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대제사장으로서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는 미사를 통해 매번 예수님을 제단의 희생 제물로 다시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단번의 온전한 희생과 하늘의 중보 사역을 가리고 사람들의 눈을 하늘 성소가 아니라 지상의 사제와 교황에게로 돌리는 대적 행위입니다.
여섯째, 이교 철학에서 거짓 교리를 들여왔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거짓 교리는 영혼불멸설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366항입니다. "교회는 각 사람의 영혼이 부모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직접 창조된다고 가르치며 또한 그 영혼은 불멸하여 죽음으로 인해 육신과 분리되어도 소멸되지 않으며 최후의 부활 때 육신과 다시 결합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영혼불멸설에서 성인 숭배도 나오고 마리아 숭배도 나오고 영원 지옥 교리도 나왔으며, 이러한 교리를 근거로 돈으로 죄를 사면받는 면죄부까지 판매한 것입니다.
오류는 홀로 오지 않습니다. 하나의 거짓 문이 열리면 그 문으로 거짓의 행렬이 줄줄이 따라옵니다.
여러분, 이런 거짓 교리들이 왜 나쁠까요? 사도 바울이 왜 이것을 경고했을까요? 그것은 신자들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하나님을 섬기고 참된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참된 계명을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불법의 비밀은 모두 가짜로 대체해 버린 것입니다. 평생 교황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섬기고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사람이 만든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가짜 중보 사역인 미사에 참여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가복음 7장 7절과 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사람의 전통에 따라 드린 모든 예배, 모든 고백, 모든 순종은 헛된 경배라는 것입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최후 심판의 날, 예수님은 헛된 경배를 드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 얼마나 충격적인 선언입니까? 속아서든 고의적이든 헛된 것에 경배하고 헛된 곳에 고백하고 헛된 날에 예배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사탄이 만든 트로이 목마, 즉 불법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교회 역사가이자 개신교 목사인 제임스 와일리는 중세 시대를 "교황권의 정오는 세상의 자정이었다"라고 요약했습니다. 교회의 권력이 가장 높이 치솟았던 그 정오에 세상은 가장 깊은 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일반 신자들은 물론 사제들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예언된 1260년의 암흑시대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트로이가 함락된 것은 성벽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성벽은 10년을 버텼습니다. 트로이가 무너진 것은 사람들이 제 손으로 성문을 열고 목마를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축제에 취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그 밤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박해가 아닙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는 오히려 순결했고 신앙은 뜨거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때가 목마가 들어오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타협의 정신, 이것이 우리 각자의 성문 앞에 서 있는 트로이 목마입니다. 안식일을 적당히 타협하고 건강 개혁의 원칙에서 후퇴하고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에서 멀어지는 것은 우리 안에 트로이 목마, 곧 불법의 비밀을 들여놓는 것입니다.
지금은 진리와 원칙의 성문을 굳게 지킬 때입니다.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더욱 표준을 높여야 합니다. 핑계와 합리화의 목마를 우리 교회와 우리 마음에서 제거합시다. 세상은 전쟁과 지진과 자연재해와 도덕성의 타락으로 종말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진리와 원칙에 굳게 서게 되길 바라면서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대를 바로보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되게 하여 주옵소서
거짓과 선을 바르게 분별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오직 말씀의 안내를 따르게 하옵소서
300년의 박해를 견딘 교회가 타협 앞에서 무너져 간 역사를 오늘 보았습니다. 우리의 성문을 굳게 지키게 하옵소서. 세속적인 것과 진리가 아닌 것을 단 한 치도 용납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주시고,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 삼고 삶의 표준을 높이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옵기를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https://youtu.be/KZyc6W9i8pM?list=RDKZyc6W9i8pM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