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뉴욕시 잭슨 하이츠
거실은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한쪽 벽에는 큼지막한 남보라색 소파가 들어갈 만큼 넓은 공간이 있었고,, 다른 쪽 벽에는 트윈 사이즈 소파 태트리스가 얹혀 있는 L자모양의 수납 벤치가 내장돠어 있었다. 거실은 주방과 연결되어 있었고, 주방엔 9개월 전 오빠가 엄마 집을 팔면서 치워두어야 했던 6인용 식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식탁과 내가 어렸을 때 치던 피아노를 여유 공간이 생길 때까지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드디어 퀸스에 있는 우리 코압 co- op 아파트 탁트인 넓은 공간에 가져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위쪽 한번 보세요." 주방 천장에 그려진 구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주인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대요," 나는 엄마를 주방으로 안내하면서 장을 봐 온 먹거리를 내려놓았다. "주방은 좀 오래된 것 같아요. 수리를 좀 할지도 몰라." 내가 말했다.
"오래됐다니, 어디가?" 엄마는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엄마는 부엌이 그만큼 괜찮아 보인다는 사실에 나는안도감을 느꼈다. 그럴 법도 했다.
1980년대식 부엌이 엄마 취향에 딱 맞았던 까닭은 그 때 엄마의 신간 멈췄기 때문이다 엄마가 부엌에서 상당한 신간을 보낸 건 1980년대가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현대적인 건 아니지만, 엄마 말이 맞아, 하자는 젼혀 없어요, " 나는 식료품을 장바구니에서 꺼내며 말했다, 거기서 녹색 채소를 꺼냈다. "봐봐, 엄마, 이거 쑥이죠?"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 쑥갓, 쑥갓이야,쑥이아니라" 나는 풀이 죽었다.
한국어 실력은 쑥과 쑥갓을 구분할 정도로 출중하지 못했다. 언어 실력 때문에 또다시 부끄러워졌다. 딱 한 번 장 본걸로 두 번이나.
"쑥갓도 좋아."엄마가 밝은 목소리고 말했다. "저녁으로 쑥갓 무쳐 먹으면 되겠네." 엄마는 실망했는지 몰라도 금방 회복하는 듯했다. 쑥갓도 엄마가 수십 년 동안 맛보지 못했던 음식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생선과 채소를 냉장고에 넣었다.
"부엌에 있는거 마음대로 드세요,내가 아침이랑 저녁 준비할 때는 집에 있을 텐데, 점심에 외출하면 혼자 점심 만들어 드셔야 해요, 어려워하지 말고, 알겠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따라 아파트 뒤쪽으로 향했다. 세사르는 우리 침실에 있다가 엄마와 내가 지나갈 때 고개를 내밀었는데, 엄마는 세사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여기에 지내게 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이 순간을 돌이켜보며 엄마가 내가 아닌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았다. 세사를는 생판 모르는 남이지만 나는 딸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뿐이라 따로 고맙다는 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우리는 내 서재를 지나 간소한 가구가 비치된 아파트 안쪽 엄마 침실로 향했다. 바닥에 깔린 순면 요를 보자,한국에 갔을 때 할머니 댁에서 얇은 이불을 깔고 잤던 기억이 났다.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지 이야기 하고요." 엄마가 소파에 앉는 것을 보며 말했다.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날 밤, 나는 엄마가 가르쳐주는 대로 고등어를 찬물에 행구고, 간장, 다시마, 마늘,물을 조금 넣어 졸이고, 식초와 참기름을, 고춧가루, 소금을 넣어 쑥갓을 무쳤다.
파를 듬뿍 넣고 콩나물 무친도 반찬으로 만들어서, 김치와 함께 쑥갓 나물에 곁들였다. 한식 밥상치고는 소박한 반찬이었지만, 엄마가 평소에 먹는 것에 비하면 잘 차린 잔칫상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엄마 잡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밤을 푸고, 그 옆에 고등어 졸임을 떠놓고, 엄마 취향에 맞게 밥 위에 메콤한 조림 간장 국물을 끼얹었다.
"우와, 너무 많아!" 앞에 접시를 놓아주자 엄마는 항의하는 시늉을 했지만, 미소를 지으며 생선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고는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사르도 우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날을 포함해 엄마가 방에서 나와 우리와 식탁에서 저녁을 함께 먹은 것은 겨우 두번 뿐이었다. 두 번째는 엄마의 환갑 생일날이었다.함께 살았던 7개월 동안 엄마가 세사르와 대면한 것은 단 세 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