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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승리자.(1)
왕상18:41-46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1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하라
갈6 :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2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도하라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기도하라
믿음의 눈으로 응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라
이루어 질줄 믿고 기도하면 그대로 된다.
3 낙심치 않고 끝까지 기도하라.
응답율100 %
불응답. 지연, 다른것.
응답의 지연은 거절이 아니라
일곱번까지 기도하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겠다는 싸인이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사지 말라
손바닥만한 구름 -작은 것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심
하늘의 문을 닫는자
ㅡ아 합 :우상숭배로
하늘의 문을 여는자
ㅡ엘리야 :기도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라ㅡ
비를 맞으며 엘리야가 아합 왕앞에 달려감으로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응답되는 기도
시145 : 18 - 19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기도에 회의를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기도 응답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는데도 당사자는 정작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성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다양한 방법을 성도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기도 응답에 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즉각적인 응답(행9:40)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즉각적인 응답이란 성도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기도 응답의 형태입니다. 사실 성도들이 기도하는 즉시 응답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믿음 있는 것을 보시면 예수께서 기뻐하시며 즉시 병을 고쳐 주셨다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축적된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즉각적으로 기도의 능력을 발휘하신 사실은 알고 있지만 평소에 많은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은 모르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즉각적인 기도 응답은 '기도의 사람'만이 받을 수 있음을 성도들은 알아야 합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뜻과 기도 내용이 일치할 때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도외시할 때는 기도 응답이 오지 않음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참조; 마26:39).
2. 점차적인 응답(갈6:9)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점차적인 응답이란 시기가 늦추어지는 기도 응답을 말합니다. 이 경우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이렇게 조급한 성도들의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늦추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키우기 위해 기도 응답을 늦추시는 것입니다. 이 경우 성도들은 조급해 해서는 결코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이 정해 놓으신 때가 있습니다. 이 '때'란, 우리가 아무 때나 잠자는 것이 아니고 아무 때나 밥 먹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기를 정해 놓고 잠을 자고 밥을 먹듯이, 거역할 수 없는 때입니다. 이 '때'를 거역하고서는 생활이 제대로 될 수 없고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고야 말 듯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 못하고 늘 조급해 해서 그렇지,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사실입니다(참조; 합2:3). 성도들이 인내의 덕만을 조금 기른다면 좀더 많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3. 간접적인 응답(고후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간접적인 응답이란 기도의 내용과 응답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기도 응답의 형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 응답을 주실 때도 많은데 성도들이 기도와 응답의 관계성을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기도 응답으로 생각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형태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써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해주시지 않는 이유를 영감으로 깨닫게 될 때 그것도 기도 응답의 한 형태인 것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음으로써 은혜를 받을 때 그것을 기도 응답의 한 형태로 간주해도 좋은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육성으로써 응답을 들으려는 자들이 미련한 자임을 성도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다음은 시련을 통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다와 마리아가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의 내방을 청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오라비가 죽고 나흘이 지나서야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냉담한 반응이 이 여인들에게는 큰 시련이 되었지만 이 시련을 잘 극복함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오라비 나사로를 돌려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이 경우 원망은 금물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슬기롭게 감내해야 합니다. 시험에서 합격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즉각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4. 침묵의 응답(합1:2)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 형태에는 침묵의 응답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가타부타 아무런 응답이 없는 기도의 응답인데
첫째 잘못된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이러한 응답을 하십니다.
우리가 어이없는 질문을 받았을 때 혹은 가치 없는 질문을 받았을 때 침묵하게 되는 경우를 상상하면 쉽게 납득이 갈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빌라도가 전혀 가치 없는 질문을 던졌을 때,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마27:42)셨습니다. 이러한 경우 성도들은 자기가 드리는 기도 내용을 다시 한번 바른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릇된 것으로 판명날 때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성도들에 대한 책망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고난의 사명이 있을 때 침묵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피맺힌 절규를 하셨을 때 하나님을 끝내 침묵하셨습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에게는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도 이러한 고난의 사명을 짊어진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끝내 침묵하실 때 성도들은 자기의 사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주님을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명을 지닌 자들에게 퍽이나 고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약4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②그러면 어떤 기도가 응답되어지는가?
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응답 받은 기도는 내 뜻을 앞세우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앞세우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라고 했으며,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우리에게도, 수태 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한 신앙적 자세만 있다면 우리의 간구하는 바 모든 기도에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
2. 회개의 기도
예수께서 기도에 관해 베푸신 교훈 가운데 눅18장에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의를 힘입어 기도했고 세리는 아무 간구도 못한 채 자기의 죄인됨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반면 세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에서 회개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은 죄의 회개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말씀을 하면서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미쁘신'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참조; 요일1:9). 미쁘신 하나님이란 거짓이 없는 하나님,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이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를 용서하시며 회개의 바탕 위에서 드리는 모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3. 감사의 기도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기도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감사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감사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뿐만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감사해야 하며(참조; 살전5:18), 고난에 직면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욥(참조; 요1:21), 다니엘(참조; 단6:10), 바울과 실라(참조; 행16:25) 등은 모두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와 찬미를 드렸으며 그 기도를 통해 문제의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우리에게 권면한 바 있습니다.
4. 믿음의 기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믿음이란 하나님의 인격과 능력에 대한 신뢰를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을 매우 기쁘시게 합니다(참조; 히11:6).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응답 받는 것은 얼마만큼 많이 기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믿고 기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참조; 롬4:18-21).
5. 합심의 기도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합심 기도란 완전한 성도의 교제가 바탕이 될 때만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웃과 나 사이에 너나 구분이 없어지고 이웃의 문제를 내 문제로 생각하고 내 문제를 이웃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할 때만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이웃의 문제를 내 문제로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합심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또한 합심 기도란 공통의 문제를 도출해 낼 때만 가능한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이 운명의 공동체라는 강한 결속력이 있을 때만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나보다는 전체를 생각하고 나와 이웃의 구분을 두지 않는 이러한 기도를 주님은 매우 기뻐하시며 그러한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6. 중보의 기도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중보 기도란 강한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약한 자를 위해서,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중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이지만(참조; 눅23:34), 이외에도 모세와(참조; 출32:32) 바울(참조; 롬9:3)의 기도가 있고 아브라함(참조; 창18:22-33)과 스데반(참조; 행7:60)의 기도가 있습니다.
7. 간청의 기도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간청의 기도란 철저히 하나님 의존적으로 살겠다는, 즉 하나님의 도와주시는 능력으로만 살겠다는 신앙 고백적인 기도요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기도로 야곱의 얍복강 기도를 들 수 있는데(참조; 창32:26) 예수께서도 눅18장에서 이러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교훈하였습니다.
매일매일 드려지는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려서 하늘보좌를 감동시키고 움직여서 반드시 응답 받는, 그래서 기쁨이 넘치는 신앙 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응답받는 기도
느1:6-11
인애하신 구세주여 🎶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오늘의 본문에 신흥제국 페르샤의 아닥사스다 왕 1세는 무엇보다 이스라엘 재건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왕이었습니다.
(에스라서 4장에는 이미 한차례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 성곽의 건축을 자신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하여 공사 중단을 명령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에스라4:11-22)
그러나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 재건에 가장 부정적인 왕을 기도응답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유머라고나 할까요? 하나님은 이 유머스런 사건을 통해 기도 응답의 비밀을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직도 최선의 기도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응답받는 기도-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1. 기도의 장애가 옮겨져야 합니다.
기도응답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장애는 기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죄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기도 대상자의 삶속에 있는 죄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사야59:1-2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올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 응답의 장애를 옮기는 일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죄의 장애를 옮길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복 혹은 신약적으로 말하면 자백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일서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처럼 성도의 신실한 죄의 자백은 죄에서 우리를 께끗케하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힘없는 기도의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기도를 시작하며 먼저 자신과 자기의 조상들의 범죄함을 자복합니다. 본문의 6-7절입니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자기의 조상들의 범죄함을 자복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또한 포함시키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나와 나의 아비집이 범죄하여---" 그는 또한 자신들의 죄와 악을 합리화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축소하지도 않습니다. "--심히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교인들이 주차 금지된 곳에 차를 주차하며 양심에 꺼렸던지 한분의 아이디어로 창문에 메모를 남겼다고 합니다."15분간 이 근처를 돌았습니다. 주차안하면 직업을 잃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여기에 주차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했더니 나와 보니까 위반 티켓이 붙어 있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근처를 15년간 돌고 있습니다. 티켓을 드리지 않는다면 직업을 잃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위반 벌금을 드립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이것을 우리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볼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찰 수사에서 자백을 받는다 하지요?
본래 자백이란 말은 죄를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 동의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지한 기도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기도의 장애가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기도의 통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2. 기도의 근거를 주장해야 합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한 가지 현저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응답받는 기도에는 기도의 성경적 근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3)고 말합니다. 즉 야고보는 응답하지 못하는 기도에는 잘못된 근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기심이라는 비 성경적 근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의 성경적 근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약속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 자신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이든 기도할 수 있으나 그 기도가 응답 받을 수 없는 기복적인 기도인지 아니면 응답받기에 합당한 기도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의 근거인 것입니다. 기도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믿고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는 맹목적이 아니고 기복적이 아닌 성경적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8-9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지금 느헤미야는 주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고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성경적 기도의 가장 분명한 정의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방편 혹은 통로라고 할수 있습니다. 에스겔36:36-37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 주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내가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루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37절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주께서 약속하셨지만 그래도 주의 백성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놓고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렸다가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는 백성들이 되기 위해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기도한다는 사실이상으로 무엇을 기도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도 대표기도를 길게 하는 성도..기도가 끝나자 성도들이 다 나갔더랍니다.
목사님께 물었어요....목사님 성도들이 언제 다 나갔나요? 목사님- 노아홍수때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구약부터 신약까지 다 낭독할 필요는 없지만....주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의 기도의 근거가 되게 하십시다. 그것이 바로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입니다.
3. 기도의 대상을 신뢰해야 합니다.
누가 기도의 대상입니까?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서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얼마나 자주 세상을 보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요? 마치 하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제 아내가 저와 대화중에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 아내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아내의 공통된 특성입니다. 대화하다가 다른 사람 쳐다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전적인 관심을 달라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나누어지지 않은 관심과 신뢰의 표시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느 면에서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마음을 다, 목숨을 다, 힘을 다, 뜻을 다하여 사랑을 요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기도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만이 소망임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께만 소망을 걸어야 합니다.
지금 느헤미야의 경우 현실적으로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은 자기가 모시고 있는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날마다 그를 만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자기의 문제를 왕에게 아뢰이지 않은 것을 주목하십시오.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물론 그는 현실적으로 아닥사스다 왕의 행정적인 결재가 없이는 예루살렘성의 중건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결재에 앞서서 하나님의 결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응답의 싸인을 받고 싶어한 것입니다. 사람이 허락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움직이셔서 허락하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 ‘만사는 인사’ 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사는 천사’입니다. 사람의 일은 궁극적으로 하늘의 일인 것입니다. 사람을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이 허락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1절의 기도를 읽어보십시오. 지금 그는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이셔서 그의 신임과 허락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쉽게 이 문제를 왕에게 말하지 않고 기도만 계속했다는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한 것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자주 아니 더 많이 이 세상이나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아닌지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산을 타다가 미끄러져 벼랑끝 나무위에 걸렸습니다. 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데 점점 힘이 빠져 갑니다. 마침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와 주셔요,하나님.”했더니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손놔, 내가 받아줄께”그러자 그는 다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누구 다른 분 없어요?”
시편기자처럼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편62:1-2) 기도의 응답을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기도의 대상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그의 자녀들을 자상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전능하시고 전지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을 보여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죽으신지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그의 능력을 신뢰하시고 기도할 수 있으시다면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문제를 갖고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분을 슬프게 했던 당신의 모든 죄를 자백하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이제 오직 그분만을 하나님만을 신뢰하겠다고 고백하여 보십시오. 당신의 황폐한 삶의 마당에 견고한 은혜의 성곽이 건설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당신은 날마다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는 신기한 삶을 살아가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여서 기도할 때
(마1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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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우리 함께 은혜 나눌 말씀은 “모여서 기도할 때”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큰일을 앞에 두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혹은 절기 때마다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혼자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응답을 위해서 모여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1970년대에서 80년대 90년대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 150만 명씩 여러 번 모여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때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크신 도우심을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우리 한국교회에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가정과 교회, 나아가 사회와 나라와 민족과 세계 평화와 복음화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모여서 기도할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 결박이 풀리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행12:5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때 일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여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온 교회는 모여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셨습니까? 베드로가 밤에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자고 파수꾼들이 문 밖을 지키는데 천사가 나타나 잠자는 베드로를 깨워 탈옥시켜 줍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쇠사슬도 풀려 버리고 첫째 파수 둘째 파수 그리고 성문까지도 자동으로 열리는데 군사들이 지키지만 베드로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했더니 모든 사실과 결박에서 풀리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결박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흉악한 살인범들의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죄악에 결박되어 있고 악한 영에 결박되어 자신들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잘못된 무신론과 이방종교의 사상 그리고 자기 인생을 망치는 부정적인 생각 등에 묶여있습니다. 혹은 질고나 결핍이나 사회적 국제적 선교적 환경 등 여러 가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결박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 나라 이념문제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지금 백성들이 얼마나 좌-우경화되었든지 국회의원들도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바른말한 마디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론을 만들어가는 상황을 보면 내편 아니면 원수처럼 날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난과, 불신앙, 가문에 흐르고 있는 저주
여러분을 옭죄고 있는 결박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풀어달라고, 끊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모여서 기도할 때 능력이 임합니다.
행1:13-14에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 기도해도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 더 많은 능력을 나타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에 전무했습니다. 그 수효가 120명이었는데 10일을 기도했을 때 하늘문이 열렸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한 바람소리와 함께 약속한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각인의 머리 위에 불같은 것이 임하여 있더니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큰 일을 말했습니다. 이 성령의 불길은 놀라웠습니다. 예루살렘을 복음화시키고 나아가 사마리아 그리고 수많은 이방 지역을 복음화시켰습니다.
이처럼 함께 모여 능력을 받으면 그 지역 혹은 그 나라와 민족 나아가서는 세계까지도 복음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하십니다. 혼자 능력 받아도 귀한데 단체가 능력을 받으면 상상치 못할 만큼 크게 쓰십니다. 미국의 해안도시 펜사콜라에서 일어난 부흥운동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매일 같이 모여서 회개하고 지역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기도할 때 기도한지 3-4년이 되었을 때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교인들은 물론 그곳에 오는 사람마다 다 성령충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운동도 그렇습니다. 모여서 기도한 결과가 집회를 통하여 터져서 온나라 온민족이 복음화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새 나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헌법 제정 회의가 필라델피아에서 소집되었을 때 그들은 한 가지도 의견일치를 못보고 서로 분열하여 퇴장하려고 할 때에 벤자민 프랭크린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이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탄생한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무릎을 꿇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 어려운 궁지와 문제에 해답을 주시기를 기다립시다.” 그 제안에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고 드디어 불후의 문서인 미합중국 헌법을 제정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주시고 큰일을 하게 하십니다.
3. 모여서 기도할 때 귀한 사명이 주어집니다.
행13:2-3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이 말씀은 안디옥 교회가 모여서 기도하다가 교회적인 사명을 받는 내용입니다. 한 개인도 기도할 때 사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여서 기도하면 교회적 사명 국가적 사명이 주어집니다.
전 교인이 하나 된 사명을 갖는다는 것 얼마나 보배롭습니까? 그 때는 엄청난 큰일을 이루어냅니다. 전 교인이 하나 되어 어떤 일을 위해서 아무도 불평도 불만도 없이 시간 드리고 몸 드리고 물질 드리고 자녀 드려서 충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렇게만 되면 그 교회는 어느 지역에 위치해 있든지 크든지 작든지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세계선교에, 어떤 교회는 군선교에, 어떤 교회는 노인복지에, 어떤 교회는 장애복지에, 어떤 교회는 담임목사 부흥운동을 기도로 돕습니다. 일년 52주 부흥회를 나가도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고 매일 같이 모여서 기도로 돕는 것을 교회적 사명으로 압니다. 그런 부흥사는 가는 곳마다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외롭게 홀로 나가는 사람과 전 교회가 밀어주는 사람과는 결과에 있어서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런 교회 치고 부흥 안 된 교회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고 또 부흥사에게 능력을 주셔서 본교회로 은혜 받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한 달에 한 번도 많다고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각 교회에 주실 사명이 무엇인지 모여서 기도하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허락해 주십니다.
4. 모여서 기도하면 무엇을 기도하든지 이루어 주십니다.
마18:18-19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초대의 기독교 교부 크리소스톰은 “기도는 노여워하는 사자에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난세를 정복시켜 고요하게 하고, 전쟁을 종결시키며, 폭풍우를 달래고, 마귀를 내어 쫓으며, 사망의 결박을 풀고, 질병을 완쾌시키고, 협잡꾼을 내쫓고, 도시들을 파멸에서 구출하며, 태양을 멈추게 하고, 천둥의 진행을 막는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도의 능력 선언입니까?
에이브러햄 링컨도 기도하는 대통령이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1863년 4월30일 목요일을 ‘금식 기도일’로 선포하고 온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한번은 인기 배우 제임스 머독이 링컨의 초청으로 백악관에 머물다 새벽에 링컨의 기도 소리에 잠을 깬 적도 있었습니다. 링컨은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종종 전쟁터를 찾았는데 그때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시간이면 사령부 막사 입구에 ‘하얀 손수건’이 내걸리곤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링컨은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같은 명장이 없었음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혼자 하는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으시지만 합심하여 하는 기도는 더 잘 들어주십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이십니까? 이 모든 것이 모여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덤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4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성경은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쓰십시다. 모여서 기도하면 결박이 풀립니다. 능력이 임합니다. 사명이 주어집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이루어집니다. 우리 모두 느슨해진 우리의 기도를 강화시켜 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