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으로부터 촉발한 한국의 의료현장 붕괴현상은 이제 6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초기에 언론을 도배한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상황은 이제는 잊혀진 옛 노래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간혹 응급환자들이 응급실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뿐입니다.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행여 급한 병으로 병원을 찾을 경우 사뭇 달라진 의료현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6개월전에 비해 병원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표정은 어두워보이고 옆에서 일하는 간호사들과 의료기사들도 대부분 멍한 상태에서 그냥 하루 하루를 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 역대급 폭염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 모 원로 정치인이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자 그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집에 다쳐서 급히 응급실 22군데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자주 다니던 병원에 가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의사가 아무도 없었다는 당시 다급한 상황을 방송에서 설명했습니다. 원로 정치인은 의료체계가 붕괴되면 정권 자체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나름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가 그럴진데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느냐는 탄식의 소리가 높습니다.
원로 의사들은 의료 공백이 거의 반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응급실을 담당하는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모든 임상과 전문의들의 체력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바닥에 처한 의사들을 비롯한 의료진이 제대로 의술행위를 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라는 말입니다. 병원의 외상외과 교수는 응급실에서 연락이 와도 현실적으로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답답한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의료 공백이 시작되자 군의관과 공보의 그리고 간호사를 더 투입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공백을 결코 메울 수가 없는 상황이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의료공백 그리고 의료붕괴가 회복 불능상태로 접어들었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정치인들도 입을 열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출신인 국민의 힘 모 의원은 의대생과 전공의가 돌아와 더 이상 파국을 막으려면 우선 정부가 의대 증원 과정에서 잘못한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반성과 결단이 없으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세계적 수준의 한국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그동안 의사들의 공백을 메웠던 간호사들도 기진맥진상태입니다.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이 주축이 된 보건의료노조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91%의 찬성으로 총파업이 가결됐습니다. 노조측은 6개월 이상 지속된 의료공백 사태에 인력을 총투입해 버티어온 조합원들의 절실한 요구와 의료현장 분위기가 담긴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의료공백 사태 유발의 한 축이기도 한 의사협회 회장은 의료대란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행동에 나섰습니다. 의협회장은 정부와 국회의 결단을 촉구하며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의협회장은 일부 공무원과 폴리페서들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벌인 의사 악마화와 국민을 기만한 거짓 선동으로 전공의들과 학생들이 진료현장과 교육현장에서 떠난 지 벌써 6개월이 넘어섰다면서 한국의 의료는 사망 직전까지 도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협회장은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있을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의료개혁을 내세운 의대정원 확대는 결과적으로 의료현장의 붕괴를 유발하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이면 돌아오겠지 하던 의료진들의 복귀는 이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의료현장의 붕괴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뿐 아니라 한국 의료계의 앞날을 저해하고 회복불능상태를 만들 강력한 상황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정부와 의사들간의 힘겨루기 차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그동안 너무도 힘들게 쌓아온 공든 탑을 정부와 의사의 힘겨루기로 무너뜨리는 말도 안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정부와 의사대표들 그리고 정치와 사회지도자들이 나서야 합니다. 남의 나라일로 취급하고 강건너 불구경하다 의료계를 완전히 소각시키고 말 것이라는 심각한 경고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2024년 8월 2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