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Ending Story 1 _ 渽絪
#1
“46번 이진하 씨, 47번 김주영 씨, 48번 엄지훈 씨, 49번 장지혜 씨, 50번 황준식 씨. 들어오세요.”
언제가 되었든 신입사원 면접은 체력소모가 심하다. 앞에 놓인 민트티를 한 모금 머금고 새로 들어온 면접 생들의 프로필을 주욱 훑는다. 남자 둘, 여자 셋.
“자, 1분씩 드릴게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보죠. 뒷 번호부터 할게요.”
“네, 저는 황준식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루하고 식상한 얘기들. 마흔 여섯 번째 듣는 소개니, 좀 더 참신한 맛이 있으면 좋으련만. 저는, 저는, 저는. 누가 자기 얘기 하는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란 말이지.
“He is lifeless that is faultless. 결점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어찌 완벽한 사람만 있겠습니까. 누구에게든 단점은 있기 마련이고 그러한 단점을 감추기보다 드러내어 고치는 사람이 더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영어 좌우명? 이라는 생각에 눈을 든 곳에는 46번 이진하. 민트티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켜 본다. 올곧고 단단한 시선이 다른 심사위원들과 눈을 맞추며 제게로 향해온다. 눈이 닿는 순간 다시 한 모금.
#2
“수고했어요, 재인씨.”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정리에 저녁 회식까지 마치고 나니 정말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삐삑-달칵-탁. 담배, 담배가 급하군. 후우우- 여름밤의 눅눅한 공기를 타고 허옇게 내뱉어 본다. 묘한 인연이지 않나. 습기를 머금어 더 탁하게 느껴지는 연기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뱉는다.
- 여보세요.
- 여-. 뭐하나?
- 야근 끝나고 집 들어간다. 뭔 일 있냐?
- 아, 뭔 일이라고 할 만 하던가. 야. 나 봤어.
- 뭘?
- 진하.
- 누구? 헐. 어디냐.
- 회사 주차장.
- 데리러 와 오늘 니네 집 가서 잘란다.
- 시르다. 데리러는 갈게.
“야. 여기, 여기. 읏차. 너 왜 이렇게 멀쩡해?”
한껏 초췌해진 얼굴의 녀석이 차 조수석에 털썩하니 주저앉는다.
“내가 뭐 죽을상이라도 하고 있어야 겠누?”
“그 말투는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네.”
“뭘 새삼스레.”
“근데 걔를 어디서 만나?”
“면접장.”
“와, 진심? 이제 신입사원 시작하는 거래 뭐래?”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와-만 몇 번 씩 남발한다. 괜히 말했나. 어째 더 피곤해지는 기분.
“내가 어떻게 아누. 그냥 면접 본 게 다인 것을. 처음엔 있는지도 몰랐어. 자기소개 때나 봤지....내 눈에만 그런가, 어째 변한 게 많지도 않더라.”
“허이구, 잘 나셨어. 진짜. 야, 근데 왜 이리로 가? 여기 우리 집 방향이잖아.”
“안 재워 줄 거야. 몽드가 너 싫어해.”
순간 말문이 막혀서 날 째릿 하니 노려본다. 노려봐 봤자 김현민이지.
“진짜 괜찮겠어?”
“뭐가?”
“너 우울 탈거 잖냐.”
“무얼 이깟 걸로. 그럴 땐 이미 지나지 않았을까.”
“멍청이. 이진하만 관계되면 아직도 속이 뒤집히는 주제에.”
역시 날 너무 잘 아는 친구는 때때로 피하고 싶다. 늘 어리광만 부리는 주제에 나를 참 지긋이도 내려다본다.
“집에, 안 들어가면 돼.”
“아 멍청이. 멍청이. 이걸 확 때릴 수도 없고.”
“잘 들어가.”
기어이 내 팔을 꼬집고는 내려버린다.
“너어 내일 속 뒤집힌다 어쩐다 하기만 해봐.”
#3
늘씬하게 빠진 언니들을 흘끗 거리며 블랙 러시안을 주문한다.
“언니-. 그동안 와 그리 안 왔나?”
“너야말로 그새 사투리 원상복귀구나.”
“에이 이제 언니 왔으니 안 쓰지. 근데 왜 평소에 안 먹던 거 먹고 그래?”
“오늘 이 언니가 좀 많이 취해야 한단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알겠어. 이 몸이, 세게세게세게 만들어주지!”
핑글핑글 도는 시야 속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긴 머리통들. 아아 콩나물시루 같구나, 꼭. 온전히 잊었다. 그리 말하지는 못해도. 잊고 살았노라. 너 없이도 괜찮았노라. 그리 말할 수는 있을 줄 알았다.
너 떠난 뒤부터 마시기 시작한 민트티도. 너가 있음에도 끊지 못했던, 떠난 뒤로 두 배는 늘어버린 담배도. 너와 잠깐 마주친 그 몇십분에 죄- 덧씌워 질 줄은 몰랐다.
* 오랜만입니다. only one for me의 운유 입니다
첫댓글 우와..기대되요!!!!
반갑습니다! 운유님도. 운유님의 글도!!
정말 오랜만입니다...반가워요~~
재밌게 읽었어요!
기대되는 작품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잘봤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