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출입은 밤에만 가능한 생활,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하루를 거꾸로 사는 겁니다. 밤과 낮을 반대로 사는 거지요. 하기는 요즘 밤일도 많이들 합니다. 특히 새벽배송을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익숙해져야 합니다. 낮에 쉬고 밤에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야 업무의 특징이 그러하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도 아니고 원하는 것도 아닌데 신체적 특징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면 마음 아픈 일입니다. 햇빛을 보아서는 안 되는 병을 지니고 있기에 살기 위해서 낮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낮에는 집에만 있어야 하고 창문은 차일로 가려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여 햇빛에 닿으면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XP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가지고 있는 ‘미솔’은 햇빛에 닿으면 피부에 암이 발생합니다. 햇빛을 피해야 합니다. 혹 활동하다가 해 뜨는 아침을 맞으면 바로 피해야 합니다. 집에서도 동 트는 시간을 알람시계에 맞추어둡니다. 시계가 울리면 바로 일어나 창문의 차일을 내립니다. 차일 뒤에서의 삶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하는 일이 없지 않습니다. 음악 작곡과 노래를 부릅니다. 소위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나요? 그런데 들어줄 사람이 있나요?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데. 가끔 부모 앞에서 부릅니다. 미솔을 대하는 부모 마음 또한 얼마나 안타깝고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티를 내지 않고 함께 즐겁게 살아갑니다. 운명처럼 지워진 상황을 탓해 무엇하겠습니까.
어느 날 커튼 넘어 길가에 과일가게가 들어섭니다. 그런데 주인이 매우 젊은 총각입니다. 게다가 꽤 괜찮게 생겼습니다.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생활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본 이 남자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하필 우리 집 앞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낮 동안 일하고 저녁에는 챙겨서 돌아갑니다. 가끔 친구가 찾아와서 놀아주지만 친구도 동성과 이성은 다릅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싱숭생숭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젊은이가 마무리하고 떠날 무렵 쫓아나갑니다. 그리고 사과를 구입하며 말을 건넵니다. 그렇게 시작했지요. 어느 날은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곱상한 처녀가 고객이 되어준 것도 고마운데 이제는 다르게 접근합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근처 작은 공원으로 가서 가지고 온 기타를 켜며 노래합니다. 미솔은 자기가 직접 만든 곡이라고 말합니다. 와 - 대단하네요. 그러면 싱어송라이터군요.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발전(?)해 갑니다. 그러나 아직 두 사람은 상대방을 잘 모릅니다.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미 서로가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어느 날 밤새도록 함께 지내다 미솔의 알람시계가 울립니다. 급하게 일어나 도망치듯 달려갑니다. 미솔의 아빠가 놀라 맞습니다. 상황을 알지 못하는 ‘민준’에게 역정을 냅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숨겨진 꿈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과연 싱어송라이터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던 미솔은 민준의 도움을 받아 우선 거리의 악사에 껴듭니다. 또한 SNS에 올려줍니다. 그렇게 천천히 알려집니다. 잔잔한 노래가 멀리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민준도 미솔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리고 언젠가 단역으로 출현했던 영화의 한 장면도 보여줍니다.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격려해줍니다. 가수와 배우, 둘 다 연예계에 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아직 젊으니까 갈 길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꿈은 가능성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지.
또 한 가지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미솔이 희귀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렇다고 사랑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함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제한된 시간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할 것입니다. 더구나 밤에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그래도 사랑은 모든 여건을 뛰어넘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부모도 알게 됩니다. 미솔의 삶에 햇빛이 들어왔으니 오히려 고맙기도 합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딸이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도 좋은 일입니다. 사랑은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리고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도 합니다. 여태와는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그만큼 감정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지요. 그런 속에서 노래도 연기도 살아있게 만듭니다.
어느 날 갑자기 미솔의 피부에 반응이 나타납니다.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이제 때가 가까워옵니다. 더 버틸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조용히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자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뭐라 표현하겠습니까? 그리고 짧은 시간 사랑을 경험하고 더불어 아픔을 경험한 민준의 삶도 앞으로 더 풍요로워지리라 생각합니다. 민준은 자신의 오디션 합격 소식을 하늘로 간 미솔에게 전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 이제는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미완의 사랑이 더 완전한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니까요. 영화 ‘태양의 노래’(Midnight Sun)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