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20-30대 청춘들에게 린킨 파크는 지울 수 없는 사춘기 시기의 추억 한 트랙이다. 그 전에도 뉴 메탈, 하드코어 밴드는 있었다. 그러나 살인, 트라우마를 노래하던 콘이나 좌파 게릴라 교수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뒷골목 불량배들처럼 무례했던 림프 비즈킷과 달리, 영혼의 상처와 무기력에서 오는 고뇌를 노래했던 이들에겐 '꿈틀대는 감정과, 치유되지 못할 상처'(crawling)' 가 있었다. 바로 이 섬세함으로 린킨 파크는 'Faint'의 파괴, 'Numb'의 처연, 'Papercut'의 혼란 모두를 끌어안아 방황하는 사춘기 감정에 선명한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욱 팝이 메마른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도 지금의 마룬 파이브, 에드 시런처럼 린킨 파크는 대다수가 아는,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영화 <트랜스포머 >삽입곡 'What I've done'과 'New Divide'로 인기의 절정에 오른 모습, <Hybrid Theory >부터 <Meteora >까지 속 열광적인 청춘의 대변자로서의 모습 둘 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로 이 감정선을 만들고 밴드의 캐릭터를 확립한 장본인이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다. 그는 가난한 가정환경 탓에 어린 시절을 떠돌며 자랐고 7세 때는 주위 남성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였다. 11세 때 부모가 이혼하고 나서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이기지 못해 망가지기 시작했다. 암페타민, LSD, 마리화나, 코카인 등 각종 마약에 찌들었고 학교에선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그에게 희망은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끝없는 방황을 거치고 비로소 정신을 차린 18세의 체스터는 버거킹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체스터에게 음악은 지옥 같은 삶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자기 자신과의 지독한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었다. 한없이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하다가도 내면의 한을 다 끓여내려는 듯한 포효는 그에게 '스크리밍의 신'이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기타리스트이자 멀티 퍼포머 마이크 시노다가 사운드 다렉터였다면 체스터는 '이론(theory)'만 있던 린킨 파크에 자전적 경험으로부터 끌어낸 감정을 입혔다. 격렬한 분노와 섬세한 감정을 한데 아우르는 그의 목소리와 메시지는 그대로 린킨 파크의 상징이 되었다.
불우한 유년기와 잃어버린 사춘기의 울분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린킨 파크는 2001년 한 해만 324회 투어를 돌았고 체스터는 사이드 밴드 데드 바이 선라이즈(Dead By Sunrise) 활동까지 병행하며 밴드는 21세기 최고의 성공 신화를 써내려 나갔다. 하드코어 / 뉴 메탈의 최전성기를 이끈 2000년부터 2007년까지에도, 그리고 그 후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멜로딕 한 변신을 담은 <Minutes To Midnight >이후의 커리어까지 체스터 베닝턴은 결코 정체되지 않았다. 마이크 시노다가 1,2집에서 보여줬던 하드코어를 고수한데 반해 체스터의 취향은 새로운 메시지와 새로운 음악을 향했다. 그러나 애매했던 결과물에 반응은 차가웠고, 뉴 메탈 씬은 쭉 내리막길을 걷다 힙합과 일렉트로닉에 밀려 메이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추억의 밴드'가 되어갔다.
체스터 베닝턴의 죽음은 언제까지나 그리 멀지 않아 보였던 '어제'의 2000년대 초를 이제 과거로 인정해야 한다는 슬픈 상징이다. 린킨 파크와 인큐버스, 시스템 오브 어 다운, 파파 로치, 크레이지 타운의 뉴 메탈 세력들은 새 밀레니엄을 열었고 다이아몬드 판매고까지 기록하며 명실상부 한 시대를 대표했다. 그러나 록이 사멸해버린 2017년에 그들의 음악은 너무도 옛것처럼 들리고, 밴드들은 소규모 클럽 또는 작은 페스티벌을 전전하며 나이 든 사춘기 X 세대들의 추억을 되새기는 역할에 그치고 만다. 사운드가든 크리스 코넬의 죽음이 그의 우울증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소식은 이 비극의 연결고리를 더욱 선명히 보여준다. 크리스 코넬이 그런지의 끝을 만천하에 통보한 것처럼, 체스터가 세상을 등짐으로 뉴 메탈도 끝이 났다. 21세기를 열었던 밴드가 한 세대의 종언마저도 고한 것이다.
그러나 타 밴드나 멤버가 아닌 체스터 베닝턴의 부고는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급변하는 음악 시장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성실히 음악에 임했고, 비록 평가는 박하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유년기의 방황으로 평생 건강이 좋지 못했고 이혼과 재혼을 거쳤으며 고질적인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팬들이 있기에 음악을 계속할 것이다.'라며 자신의 아픈 과거를 통한 공감을 꿈꿨다. 이것이 린킨 파크와 다른 뉴 메탈 밴드들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다. 비록 부진할지언정 그들은 '추억팔이 밴드'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중심을 굳건히 지켰던 체스터였건만 시대의 종언 앞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원하는 걸 위해 싸우거나.
내 선택은 마지막이었다.
좋은 관계를 원했고,
내 삶 속 사람들을 사랑하고,
내 일을 즐기고,
아버지로 또 친구로 매일 아침을 즐겁게 맞이하고 싶었다.
바로 그 일상이 내겐 투쟁이었다.”
음악 팬들은 점점 음악에 빠져갈수록 자꾸만 우리 시대의 영웅들을 도외시하게 된다. 역사 속 거대하게 자리 잡은 레전드들의 자취를 따라가기도 벅차고, 속속들이 새로 등장하는 새로운 유행에 발맞추기도 바쁘다. 그러다 보면 내가 제일 처음 들었던, 나를 음악에 빠지게 했던 인물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만 깨닫게 된다. 진짜 레전드는 내가 듣고 즐겼던 사춘기 속 영웅들이라는 것을. 시간은 흐르고 유행은 변하지만 감정을 표출하고, 또 공감하고 위로해주었던 그런 '팝 아티스트'들은 영원히 모두의 기억 속에 남는다. 린킨 파크와 체스터 베닝턴은 젊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다.
(1976 - 2017)
첫댓글 많이 그리울거에요.. 마음이 아픕니다
잘가요 체스터형 ㅠㅠ 즐거웠어요
왜 체스터를 추모하면서 다른 뉴메탈 밴드들을 추억팔이 밴드로 후려쳐야했을까요 ㅜㅜ 암튼 명복을 빕니다
ㅜㅜㅠㅠㅠㅠ올해는 진짜 볼수있을꺼라 믿었는데 ㅠㅜㅜㅜㅜ
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