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 고두현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민음사, 2017) ---------------------
* 고두현 시인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시선집 『남해, 바다를 걷다』 등. 현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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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30행짜리였는데 줄이고 줄였더니 3행이 됐습니다. 제목도 한 단어로 줄였지요. 이 시에서 ‘안 계시지……’의 주인공은 어머니입니다. 외환위기 때 먼 길 떠나고 난 이듬해 여름, 남부 지방에 큰비 오고 장마가 진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지역 번호 055를 누르고, 다음 번호를 누르다가 생각이 났지요. 아 참, 이젠 안 계시지…….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빈자리가 커 보일수록 애틋함도 커지지요. 어머니의 삶이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리 가족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의 작은 절집에서 살았습니다. 어쩌다 절집으로 들어가게 됐을까요.
아버지가 북간도부터 시작해서 객지로 떠돌다가 병을 얻은 뒤 식구를 이끌고 귀향했기에 궁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몸도 편한 날이 없었지요. 온 가족이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우연히 금산 절에 갔던 어머니가 생기를 회복한 것을 계기로 아예 삶터를 옮기게 됐지요.
어머니는 한동안 허드렛일을 겸하는 공양주 보살로 살았습니다. 비승비속()의 어중간한 삶이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에 입학한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대처의 고등학교로 진학하자 어머니는 “이제 됐다.”하며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셨습니다. 이후 남해 물건리에 있는 미륵암에 자리를 잡았지요. 물건리는 지금의 ‘독일마을’입니다.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어머니 스님’이 보내주는 쌀로 자취생활을 했지요. 신문사에 취직해 햇병아리 기자 때 받은 ‘늦게 온 소포’도 이곳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것이었습니다. 속세를 떠난 사람이 속가의 아들에게 사사로이 보낸 소포와 편지, 사회 초년병으로 아등바등하던 그때, 남해산 유자 아홉 개를 싸고 또 싸서 서울로 보낸 속 깊은 마음이라니!
그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제 곁에 현재형으로 살아 계시며 자주 등을 다독거려 주십니다. 한 편 한 편 살아있는 시를 쓰리고, 향기 깊고 여운이 긴 글을 쓰라고…….
— 계간 《문예바다》 2024년 여름호 -------------------------
* 고두현 시인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시선집 『남해, 바다를 걷다』 등. 김만중문학상 유배문학특별상, 2023년 유심작품상, 2024년 김달진문학상 수상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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