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 김성신
처음 들여다본 얼굴 앞에서
보이지 않는 나를 보려고 수십 개의 눈을 줄였지
입술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아주 천천히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었어
거울 위에 아무도 없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 건지
화장대 장미송이에는 마른 울음이 내려앉고
부재가 향기를 감쌌어
바라는 것을 찾을 때 더듬게 되는 좁고 패인 이마
이리저리 쓸리는 머리카락
두 눈 감았다 뜰 때 이곳은 미로의 천국
시절이 알맞게 출렁이지
사방에서 주목하는 나를 빠져 나가려면
구원이 필요한 것일까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선언
어떤 물질성도 없는 그늘을 품고
너머의 그림자를 위해 타협하듯 흔들리는 전등 빛
아무데나 들러붙는 왼 손
깊은 밤은 가벼워 사물을 뛰어오른다
끌어안는다
적어도 관찰하는 동안은 자유로우니까
부풀어진 이야기는 끊임이 없어
광대뼈 위엄처럼 나오고 속눈썹 긴 음영이
말 키우기에 좋은 곳
막다른 골목에서 탈주를 꿈꾸는 당신은
내 거짓의 완성이죠
ㅡ 계간 《포시션》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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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신 시인
1964년 전남 장흥 출생. 원광대 한문교육과 졸업.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2016년 원주 생명문학상, 2022년 한국해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