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두쫀쿠·돈마호크... 군대 '짬밥'이 달라졌어요
이성현 주간조선 기자
입력 2026.03.29. 05:30업데이트 2026.03.29. 05:32
[주간조선] 민간위탁 급식 호응
장병들 "사회 밥 생각 안 납니다"
지난 3월 25일 39사단 신병교육대대 중식 메뉴로 나온 제육볶음(위)과 명란크림스파게티.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진짜 사회에서 먹고 싶은 게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급식을 먹다 보니 입맛이 높아졌습니다. 오히려 수료 이후 타 부대로 전출되고 나서가 걱정됩니다.”
지난 3월 25일 경남 함안군 제39보병사단(39사단)을 찾은 취재진에 장병들은 하나같이 ‘급식이 맛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똥국(된장국의 멸칭)·조기튀김·코다리조림 등 그간 군 급식이 ‘부실급식’의 대명사로 불려왔던 것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는 현재 민간 사기업에서 전국 군 부대에 급식을 위탁 납품하면서 전문 영양·조리사가 투입됐기에 가능한 변화다. 메뉴는 한식 말고도 양식·일식·분식 등 종류가 다양해졌고, 특식으로는 돈마호크 스테이크와 최근 인기 디저트인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까지 등장했다.
39사단 특식 메뉴로 제공됐던 돈마호크 스테이크(위)와 두바이쫀득쿠키. photo 풀무원
39사단 신병교육대대 훈련병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민간 급식 도입 후 달라진 식탁
군 급식의 민간 위탁은 국방부가 장병 급식 만족도 개선과 조리병 부족, 부대 운영 부담 완화를 이유로 2020년 6월 전북 익산 육군부사관학교에 풀무원푸드앤컬처(풀무원)를 급식업체로 선정하며 시작됐다. 이후 2022년부터 시범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2023년 13개, 2024년 26개로 급식 위탁 부대를 늘렸다. 2025년 말 기준으로는 풀무원·동원홈푸드·삼성웰스토리 등 9개 업체가 육군사관학교·공군교육사령부 등 42개 부대에서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측은 “대상 부대는 주로 규모가 크거나, 매주 고강도의 훈련이 진행되는 교육·훈련부대를 우선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39사단 신병교육대대는 육군부사관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민간위탁 급식을 운용하고 있다.
“먹고 싶은 건 없어?”
이제 막 입대한 훈련병과의 통화에서 가족이 가장 먼저 건네는 질문이다. 이는 휴가를 나올 아들을 챙기려는 부모의 마음이지만, 동시에 군 급식이 장병들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1월 39사단 신병교육대대에 입대한 기자의 친동생은 이 질문에 “딱히 없다. 여기 밥이 너무 맛있다”고 답했다. 39사단 급식을 관리하는 풀무원 측 이영림(46) 팀장은 “요즘은 장병들이 먹고 싶은 메뉴를 먼저 요구할 정도다”라며 음식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취재진이 이날 오전 9시경 병영식당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정수기 옆 냉장고 한편에 마련된 샐러드와 닭가슴살 등 간편식이었다. 이 팀장은 “간편식은 조식 3가지 선택지 중 하나로, 최근 가장 선호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민간위탁 시행 이후 각 부대는 끼니마다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39사단의 경우 조식은 한식·샐러드·간편식 중 선택할 수 있고, 중식과 석식 역시 각각 주 3회·2회 한식과 일품식(비한식)을 고를 수 있다. 이날 중식 메뉴는 제육볶음과 명란크림스파게티였다.
병영식당 내부에 마련된 간편식 코너. 닭가슴살·도넛·샐러드 등이 비치되어 있다. 조식 메뉴로 선택 가능하다.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마치 호텔 주방을 방불케 하는 부엌은 이미 중식을 준비하는 손놀림과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기자가 부대를 찾은 날은 대대 내 4개 중대에 간부 포함 1000여명을 배식해야 하는 바쁜 시기였다.
배식 준비를 마치고 오전 11시30분이 되자 훈련병들이 줄지어 식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대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터라 훈련병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남아있었다. 다만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니 경직된 얼굴이 한결 풀리고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훈련병들은 공통적으로 군 급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장현빈(28) 훈련병은 “원래 군 급식이 맛없기로 유명해 ‘입대하면 이참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밥이 너무 맛있어 몸무게가 유지되고 있다. 조교에 지원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서 밥을 계속 먹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조교와 간부들은 급식 질 개선이 군 사기 진작으로도 이어진다고 평가한다. 김은수(25) 상병은 “남자들은 밥만 잘 주면 뭐든 다 열심히 하지 않냐”면서 “고된 훈련을 마치고 점심 메뉴를 확인했는데 고기반찬이 나오면 훈련병들 기분이 좋아져 금세 다시 힘을 낸다”고 했다.
훈련병들이 병영식당에서 점심식사 배식을 받고 있다. 일품식(왼쪽)과 한식으로 나뉜 배식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장병들이 뽑은 ‘최애’ 메뉴도 마늘보쌈부터 피자, 바질페스토 봄나물, 등갈비찜 등 다양했다. 식당 출구 옆에 마련된 소통 게시판은 급식에 대한 피드백 대신 먹고 싶은 메뉴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김태영(22) 상병은 “솔직히 급식에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아예 없다”며 “대신 게시판에 먹고 싶은 메뉴를 적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면 대부분 실제 메뉴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진도 이날 제육볶음과 명란크림스파게티를 모두 맛봤다. 두 메뉴 모두 군 급식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장병들의 ‘사회 밥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정규 식단 외에도 다양한 특식과 이벤트 메뉴가 부대별로 운영되고 있다. 39사단은 매주 토요일 ‘브런치데이’와 연 8회 ‘지역상생특식’을 통해 군에서는 접하기 힘든 도삭면·봉골레파스타·장어덮밥 등을 선보인다. 야간 훈련 직전에는 계절에 따라 아이스커피와 어묵 등을 간식으로, 훈련 종료 후에는 큐브스테이크 등을 특식으로 제공한다. 이벤트는 주기적으로 장병 부모님을 식당에 초청하는 행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는 ‘스타셰프데이’를 열어 유명 셰프 오세득씨가 사단을 방문하기도 했다.
39사단 병영식당 운영 관계자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부담 속에서도 개선된 만족도
질 좋은 급식을 위해 바빠진 건 조리인력들. 장수영(33) 영양사는 “조식 준비조는 오전 6시에 출근해 석식 준비까지 마친 후 오후 5시에 퇴근한다”고 말했다. 식사 시간 1시간을 제외해도 업무량이 10시간에 달하는 셈이다. 야간 훈련으로 간식을 제공하는 날에는 자정이 다 돼서야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낮은 단가 속에서 맛과 영양을 동시에 맞추는 것도 영양사들의 고민이다. 2026년 기준 장병당 1일 기본급식비는 1만4000원으로 끼니당 5000원 남짓한 비용 안에서 식단을 구성해야 한다. 장수영 영양사는 “같은 메뉴라도 수제로 가공하거나 불을 활용한 조리로 변주를 주며 단가를 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성도 높지 않은 편이다. 이영림 팀장은 “솔직히 이윤을 먼저 생각했다면 이 사업에 참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식수 보급이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식사하면서 기분 좋아하는 장병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39사단 신병교육대대 훈련병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다행히 현장 인력들의 노력에 힘입어 긍정적인 변화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박재군(50·원사) 39사단 급양관리관은 “훈련 막바지에 훈련병들이 훈련소 만족도 조사를 진행한다. 그중 급식 평가 점수는 (10점 만점에) 9.5점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며 “이는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대”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도입 이전과 비교했을 때 잔반이 30% 이상 감소했고, 결식률도 0에 수렴한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지난해 조사한 2024년 급식 만족도에서도 민간 위탁 급식 부대는 5점 만점에 4.22점으로, 직영 급식 부대(3.53점)보다 약 20% 높았다. 국방부 측은 “민간 급식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라 당분간은 납품 대상 부대를 확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