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실세들이 대거 한국을
방문하면서 그들의 방문 목적을 둘러싸고 온갖 억측이 나돌고 있다. 북한에서 내려온 핵심 3인방 중 황병서 당 정치국장과 최룡해
비서는 25년전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정세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통일의 꽃’ 임수경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북한에서는 임수경으로 부르지 않고 림수경이라고 부른다.
1989
년 7월 평양에서는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라는 세계적인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는 각 나라의 청년대표단과
대표들이 많이 참가하였는데 가장 인기가 많은 대표가 남조선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임수경이었다.
당시 독일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온 임수경에 대하여 북한에서는 남조선대학생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남조선을 통자로 북한에 가져다 바치는 남조선 정부의 대표라고 인지할 정도로 특별히 대환영을 하여 주었다.
김일성이 당시 중앙당 조직비서이었던 김정일과 참가하였던 각국 대표단 축하 만찬회에서 특별히 임수경을 포옹해주는 등 그에 대한 북한의 환영은 사상 최대 규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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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8월 20일 전대협대표로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양이 밀입북 혐의로 서울 중부경찰서에 수감되고 있다.
축전 개막식에는 김일성이 직접 참가하여 다른 나라 대표단이 들어올 때에는 앉아서 박수만 치다가 ‘전대협’이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임수경이 들어오자 김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주고 임수경은 깍듯이 김일성에게 큰 절을 올리었다.
하
기는 자기를 만난 자리에서 임수경을 민족의 장한 딸로 ‘통일의 꽃’이라고 불러주며 자기 딸이라고까지 하였고 임수경은 아버지라고
하였으니 대단히 감개무량하였을 것이다. 당시 북한에서는 사로청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축전준비위원장을 하였던 최룡해(지금의 중앙당
근로단체 담당비서)가 임수경이 김일성·김정일을 만날 때에는 같이 동행해주고 여러 번 만났었다.
임수경이 북한을 방문하는 전 기간은 당시 북한 사로청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고 학생위원장이었던 김창룡이 직접 안내를 맡았을 정도이며, 김일성·김정일의 특별지시로 임수경이라는 존재를 그만큼 크게 해준 것이다.
축
전 기간은 물론 끝난 다음 다른 나라 대표단은 다 돌아갔어도 임수경은 북한의 금강산·묘향산 등 사적지와 명승지들을 관광시키며
최대의 특별보장을 다 해주고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김형직사범대학 등 북한의 주요대학들과 기관들을 방문하여 연설을
하도록 하고 환영 집회를 조직해주는 등 온갖 활동상 우대를 도모해주었다.
그때 김정일은 임수경이 북한주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하면서 돌아갈 때에는 시집갈 때 쓰라고 당에서 조직하여 갖가지 천들과 옷들 및 가전제품들과 심지어
이부자리까지 지원해주면서 그것을 통일의 꽃 임수경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선전선동사업을 하도록 하였으며, 갈 때 가지고 가지 못하니
보관하였다가 통일이 되면 임수경에게 주라고 말하였다.
임수경이 돌아갈 때에도 부디 판문점을 거쳐 가겠다고 하면서
단식농성을 진행하자 북한 당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동참하게 해주고 전국의 정권기관들과 상업봉사기관들, 심지어 개인들까지
임수경이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단식을 하면서 몸이 많이 축갔다고 하면서 산삼·꿀·녹용을 비롯한 보약재들을 선물로 보내는 다양한
사업을 조직하여 TV와 신문들에 소개하면서 임수경에 대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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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6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탈북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탈북자비하발언을 한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과 최재성 의원을 규탄하며 임수경 의원이 지난 1989년 무단 방북한 뒤 김일성을 만나 포옹하는 사진에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고 있다.
임수경이 돌아가서 남조선당국이 체포하였다고 하면서, 통일을 가로막는 독재정권이라고 하면서, 평양시 군중대회와 각종 집회를 하면서 모든 언론들에서 남조선정권에 대한 규탄을 하도록 하였다.
이
렇게 임수경이 와서 당시까지만 하여도 북한주민들 속에서 구세주로 떠받들리고 있던 김일성·김정일의 절대적인 찬양을 받으면서
임수경뿐만 아니라 그를 축전에 파견하였던 전대협이라는 조직에 대하여 북한의 거의 모든 주민들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전대협은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에서 막후 조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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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3월 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임종석 전 의원이 사무총장과 공천권을 포기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특히 임수경을 파견하고 수배령을 받고 대피 중이었던 당시 전대협 의장 임종석의 뒤를 직접 조종하던 공작원이 1989년 말에
북한에 들어와서 그간의 임무수행을 총화하고 공작자금을 받고 남조선으로 돌아가기 전에 평안북도 묘향산군에 있는 자기 집에서 진행하는
아버지의 진갑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가다가 군인들에게 매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정일은 인민군대 한 개 사단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하면서 구타를 해서 그를 죽인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던 한 개 중대를 몰살시키었다는 사실이 북한 내의
간부들 속에서 이구동성으로 말이 돌았다. 결국 전대협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조직되고 공작의 일환으로 임수경이 파견되어 왔었다고
말들을 하였다.
임종석 의장이 북한공작원에 의해 조종되면서 남조선에서는 그를 현대판 홍길동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수배를 피하였는데, 그를 조종하던 공작원이 북한에 와서 죽는 통에 임종석 의장이 남조선당국에 검거되었다는 말이 돌았었다.
그런데 북한의 당국자들과 주민들에게 뜨거운 열기를 주었던 임수경에 대해 5년 후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뜻밖의 소문이 돌게 되었다.
그
것은 임수경이 감옥에 들어가서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통일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서를 쓰고 나와서 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임종석 의장도 전향하였다는 소문이 돌며 북한주민들이 분노하면서 임수경에게 주었던 선물들을 다 몰수하고 통일의 꽃이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강연회를 통하여 여론비언이라고 포치하였지만 그 때부터 임수경이라는 이름과 통일의
꽃이라는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 남조선 국회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할 때에 임종석이 국회의원으로 오고
임수경이 기자로 북한에 왔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들과 이전 전대협 조직이 남조선에서 맹활약을 하여 남조선에서 민주정부가 정권을
잡고 이제 곧 통일도 될 것이라는 소문이 평양주민들 속에서 말이 돌기도 하였었다.
이렇게 임수경과 임종석이라는 이름은 북한주민들 속에서 통일의 꽃 또는 영웅으로 불리우기도 하고 배신자라는 대명사로도 쓰이면서 북잡한 인상을 남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