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올람토라 온라인 성도방에 초대합니다.
카카오 오픈채팅방에 "레올람토라"를 검색하시거나, 아래의 링크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픈채팅방 링크 주소
https://open.kakao.com/o/gvbFarQf
1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용납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사람 가운데서 대제사장을 세우셨다. 왜냐하면 무식하고 미혹된 사람들을 받아주고 불쌍히 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무식하다'의 헬라어 뜻은 (정보와 지능의 부족으로) 알지 못하고 무식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 자신도 사람으로서 연약하여 미혹되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므로 무식하고 미혹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백성뿐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게 하신 것은 대제사장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랑많으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제사장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중보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예슈아께서는 완전한 사람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신)이시고 죄를 범한 적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승리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하늘 성전에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실 수 있는 재물이 되실 수 있었고 시험당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승리하도록 도우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고 하나님이신 예슈아께서 하늘 성전에서 영원한 중보자가 되실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톨릭은 '교황 무오설'과 '마리아 무오설'을 주장해 왔다. 그들은 교황이 기독교의 우두머리로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령이 특별한 은혜로 그를 보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황의 결정으로 세워진 신앙과 도덕의 교리에는 결단코 오류가 있을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마리아는 흠없이 잉태되어 완전무오성 즉 죄없는 인간이라고 공표했다. 죄없는 사람이 예슈아신데 그뿐만이 아니라 마리아도 죄가 없고 교황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하나님이 자리에 교황을 두는 신성모독 교리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대제사장을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세우신 이유가 사람을 불쌍히 여기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은 교황 무오설을 내세우고 그가 세운 교리조차 오류가 없다고(진리) 주장한다면(교리문답집이 성경이라는 말인가?) 그가 하나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을 모르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거나 그 자리에 사람을 세우는 우상 숭배 교리임을 알 수 있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레9:7)
2 하나님를 멸시하여 스올에 빠졌다여호와께서는 아론의 후손만이 제사장의 존귀, 대제사장의 존귀를 취하도록 정하셨다. 그러나 고라가 보기에는 모세가 스스로 회중위에 자신을 높여 왕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자로 보였고 오히려 회중이 거룩해 보였다. 아니, 모세보다 더 의롭고 경건한 자들이 회중이었다. 고라는 누가 더 하나님의 택하신 자인지, 모세와 경건함을 대결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회중은 고라가 더 경건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였고 그를 따랐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린 충분히 미혹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건에 대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하여 죽을 때까지 미혹될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미혹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경건의 척도가 무엇인가? 분명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경건함과 사람이 생각하는 경건함은 다를 것이다. 고라는 율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제사장을 아론의 후손으로 세운 하나님을 신뢰할수 없었고 광야로 데리고 나와 고생하게 하는 분이라는 사실은 더 납득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대제사장처럼 리더가 되어서 다시 애굽이라는 큰 나라로 돌아가길 원했다.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도 그를 도우시는 분이 그가 바라는 하나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과연 우린 어떤 하나님을 따르길 원하는가? 거룩함을 위해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여호와의 법도가 없는 애굽에서 그냥 살게 하시는 하나님인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지니라 (민16:30,31)
여호와를 멸시한 죄악은 심히 커서 산채로 지옥에 들어가게 한다. 저번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는가에 대해 나누었다. 예슈아께서 그 방법을 보이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옥에 들어가는지는 고라와 그 무리들이 보여준다. 그들은 여호와를 멸시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모세가 경건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교만해 보였으며 출애굽한 일도 기적이 아니라 재앙처럼 여겨졌다. 차라리 자신과 회중이 더욱 경건해 보이고 하나님과 친밀해 보였다. 아니 자신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라고 그렇게 확신했다. 이렇게 여호와와 친밀하다고 생각한 고라에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자신을 멸시했다고 말씀하셨다. ‘멸시하다’의 히브리어 뜻은 ‘경멸하다, 혐오하다, 신성모독을 유발하다, 격동시키다'등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하다고 느낄 수는 있다. 하나님 앞에 스스로가 경건한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완전한 착각일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산채로 지옥에 떨어질 자가 그렇게 느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반대로 보이고 반대로 들리고 반대로 깨달아지는 것은 저주이다. 우리의 마음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인가’에 대해서도 어떻게 분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고라의 자손들은 여호와를 멸시한 죄악으로, 자신만만하게 들고 여호와께 나아갔던 향로에서 불이 나와 죽고 말았다. 그리고 이 향로들로 제단을 싸는 철판으로 만들었다.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아론 자손이 아닌 사람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죽지 않게 하는 표증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민16:38-40).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의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여호와께서 모세를 시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민16:40)
3 대제사장의 존귀는 스스로 얻지 못한다
대제사장은 사람으로서 연약하므로 속죄제를 드리면서 역할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직분이 얼마나 존귀한지 아무나 취할 수 없으며 오직 여호와께 부르심을 받은 선택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레위지파이고 그 중에서도 아론지파이고 그중에서도 영원한 평화의 언약이 있는 사독지파들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열심과 상관없이, 우리의 원함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진행된다. 오직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세우신 법도에 순종함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원한다고 아무나 제사장을 세우면 여로보암의 죄가 될 것이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은 일반 사람 중에서 원하는 자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그것이 죄가 되어 그 집이 끊어졌고 멸망했다. 그러므로 자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기쁨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법도대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분과 상관없이 불순종은 죄악이기 때문이다(왕상13:33,34).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왕상13:33,34)
우리는 모두 왕같은 제사장이다. 그러나 아론의 후손은 아니다. 다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하늘 제사장들이다. 그러나 육체로는 여전히 일반 백성이다. 이처럼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들도 육체로는 일반 백성이다. 다만 성령을 통해 교사(랍비)로서, 선지자로서, 사도로서 또는 복음 전하는 자로서 직분을 가지고 섬기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나 자원하는 자들을 세워도 될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육체를 따라 섬기는 제사장도 아무나 원한다고 세울 수 없고 율법이 정하는 대로 세워야 한다면, 영을 따라 제사장을 세울 때도 분명 하늘의 법도를 따라야 할 것이다. 진정한 믿음과 순종으로 온전히 헌신된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을 세워야 한다. 예슈아와 함께 통치하는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은 대표적으로 계시록에 남은 자손으로서 용과 싸우는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명령들)을 지키고 예슈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계12:17). 그러므로 그들의 입에 율법이 있어야 하며 자유롭게 하는 율법을 믿음으로 실천하는 자들이 진정한 영의 제사장들이고 예슈아의 제자들로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자들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나 원한다고 직분자로 세운다면 땅의 제사장도 마음대로 세운 여로보암의 집이 망했는데, 하늘 제사장들을 마음대로 세운 자의 죄는 얼마나 크겠는가? 물론 땅의 제사장도 하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늘 제사장들이 되야 하는 것은 하늘 유업을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마땅한 것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4 언약의 온전한 거룩하심
여호와의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이방 땅에서 많은 이적을 보이시고 벧세메스로 돌아왔을 때, 이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호기심으로 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로 인해 5만70명이 죽었다. 이처럼 언약궤는 아무나 가까이하지 못하며 들여다 본 자들이 죽을만큼 심각한 죄였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언약궤는 하늘에 속한 것으로서 땅에서 심히 거룩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본 자는 죽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인이기에 그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 수가 없다. 이는 그분이 심히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세도 여호와께서 친히 그를 바위 틈에 두시고 손으로 덮고 지나가셔서 등만 보게 하신 것이다(출33:20,23). 이것은 그분의 거룩함 때문이다. 언약궤가 거룩해서 그것을 열었다가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사람들이 죽은 것은 궤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언약 때문이었다. 생명을 걸 만큼 거룩한 언약이기 때문에 그리고 언약의 말씀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즉 거룩한 언약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죄악으로인해 멸망하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죽을까봐 두려워하던 이스라엘을 생각해보라. 그들이 느꼈던 두려움은 실제였던 것이다. 언약궤를 들여다 보고 많은 사람이 죽은 후 "누가 여호와 앞에 감히 설 수 있겠느냐"며 한탄했지만, 그들이 할 일은 오직 율법대로 섬기면 되는 것이었다. 언약궤를 옮기다가 죽은 웃사도 율법대로 행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민4:15). 이들은 모두 거룩한 하나님을 몰랐다. 언약의 거룩함을 몰랐다. 거룩한 언약을 통하지 않으면 그분께 결코 가까이 갈 수 없음을 몰랐다. 순종으로만 갈 수 있음을 몰랐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함으로 불순종에도 담대했기에 죽은 것이다(삼상6:19,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삼상 6:19)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34:20,23)
5 하늘 성전에 속한 대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이 제사장 직분을 스스로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것처럼, 예슈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도 스스로 그 영광을 취하신 것이 아니다. 이 영광스러운 직분도 하나님의 부르심(택하심)으로 얻으실 수 있었다. 즉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노라"라는 부르심과 함께 맏아들을 삼으시고 왕으로 세우신 것이다. 유다지파이신 예슈아께서는 아론의 후손이 아니므로 이 땅에서는 제사장이 되실 수 없었고, 하늘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었다. 즉 땅의 제사장 제도가 아니라 하늘 제사장 제도를 따르신 것이다. 우린 하늘 성전과 땅의 성전을 동시에 바라봐야 한다. 예슈아께서 대제사장 되심이 땅의 대제사장 제도를 변하게 하거나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예슈아께서 아론의 후손으로 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유다지파로 오신 것은 하늘 성전에 속한 대제사장으로서 왕이 되려고 하신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땅에 속한 왕이 아니라고 증언하셨다. 그분의 나라는 하늘에 있으며 직분도 하늘에 속해있다(요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요18:36,37)예슈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해 죽기 전에 헤롯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고 진리가 무엇인지 증언하기 위해 왔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은 각자 믿는 진리가 다르다. 바울은 진짜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얼마나 사람들이 쉽게 따르는지에 대해 경고했다(고후11:4). 그만큼 진리(하나님)를 몰라 미혹되고 선동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안믿는 자가 아니라 잘못 믿는 자가 많다는 것이다. 진리는 변하지 않고 변할 수 없는 영원하고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언약은 율법이라고 다윗이 증언했다(시119:142). 즉 우리에게 언약하신 말씀 곧 언약궤에 들어있는 계명과 율법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얼마나 미혹된 백성이 많으면 오셔야 했겠는가? 그렇다면 예슈아로 인해 이제는 진리(율법)를 지키지 않아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얼마나 사악한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11:4)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제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