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최서부인 하동은 구례와 붙어 있어 익숙한 이름이다. 화개나 악양 하동읍은 가끔 들렀으나 진주 쪽의 동쪽은 잘 모른다. 라디오에서 하동 꽃양귀비 축제 이야기를 듣고 그 쪽을 돌고 텐트를 치기로 한다. 아이들과 득량을 돌고와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 3시 반쯤 짐을 챙겨 나선다. 북천면사무소를 목적지로 하고 운전하는데 차량의 네비는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한다. 광양IC 입구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직진하니 2번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는 구간이다. 경전선 철로도 따라온다. 하동포구 아래로 다리를 건넌다. 한 시간 남짓 북천면사무소로 향하니 강가에 너른 주차장이 보이고 져 가는 빨간 꽃양귀비밭이 나타난다. 셀카봉을 든 젊은 연인들이 길을 걷고 어른을 모신 가족들도 보인다. 우린 멈추지 않고 지나친다. 이병주문학관을 치니 가깝다. 레일바이크가 지나자 길을 막는다. 나림 이병주문학관은 조용하다. 강당 건물이 넓고 전시장은 왼쪽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한국의 발자크를 꿈꾸었던 작가의 작품 제목들을 읽어본다. 필화를 겪어 군사정부에 의해 감옥살이를 했던 그의 행보를 회색적이라 느낀 적이 있었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고 나의 단견도 보인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나는 그의 성실한 필력에 경의를 드려야 한다. 바보는 이사할 때도 챙겨다녔던 바람과 구름과 비 이야기를 한다. 신발을 신고 나오니 옆벽 서가에 가져가도 좋다는 책들이 꽂혀 있다. 두껍게 묶인 학술논문집 1,2를 무겁게 챙겨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