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좌렴 宋佐濂(1879 ~ 미상)】 「大韓民國臨時政府 陸軍駐滿參議府, 참의부 중대장」
1879년 11월 3일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위원면(渭原面) 고성동(古城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송중선(宋仲善)·송세복(宋世福)·송자렴(宋子濂)·김광해(金光海)를 사용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중국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주 후에는 중국 펑톈성(奉天省) 퉁화현(通化縣) 강산이도구(崗山二道溝)에서 거주하였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통의부) 대의원 및 검무감,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大韓民國臨時政府陸軍駐滿參議府, 참의부) 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8월 만주에서 항일독립군 연합단체로 통의부가 조직되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독립에 관한 방향성과 이념 문제로 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리되었다.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 중대 500여 명은 통의부와 관계를 끊고 새로운 항일운동을 모색하였다. 그들은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결하여 새로운 군 정부를 조직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1924년 6월 26일 군사와 민정을 관할하는 새로운 조직인 참의부가 결성되었다. 관할구역은 지안현(輯安縣)을 중심으로 푸쑹(撫松)·창바이·안투(安圖)·퉁화(通化)·류허(柳化) 등 압록강 연안 지역이었다.
통의부와 참의부는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고, 국내와 가까운 곳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국내 진격작전을 수행하였다. 참의부의 경우, 4월 24일부터 7월 16일까지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약 3개월간 대략 20회에 걸쳐 국내진격작전을 수행하였다. 의연금과 군자금 모집, 자위단(自衛團)원 사살, 친일파 납치와 처단, 일본군과 교전, 주재소 공격 등의 활동을 하였다.
통의부 부원으로서 활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1922년 12월 29일 통의부 총장대리 부총장 채상덕(蔡相德)의 명의로 제1회 중앙의회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는 1923년 1월 8일까지 지속되었는데, 고석복(高碩福)과 함께 지린성(吉林省) 지안현 청산면(靑山面) 대의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때 청산면 통의부 검무관(檢務監)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1월 검무관직을 유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는데, 1923년 1월 10일 『독립신문』은 “사무업무를 열심히 하고 행정 업무를 공정하게 함과 동시에 지방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1923년 1월 이주한 한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와 함께 같은 달에는 평북 위원군 구읍(舊邑)에 있는 주재소를 습격하고 한인 순사 1명을 처단하였다.
1924년 (음)2월부터 (음)12월까지 집산지방 총관이 되어 활동하였다. 참의부가 통의부에서 분리되었을 때 참의부 부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26년 참의부 제1중대 참모직을 담당했으며, 11월부터 제1중대 중대장이 되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