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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지 게시판 스크랩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유홍준 외
권영혜 추천 0 조회 27 10.05.19 15: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완당선생이 추사체를 완성하기까지 이토록 ‘전심전력’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완당 선생의 길을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정신을 배워나갈 수는 있겠지요. 우리시대의 장인들을 초청해 한 수 배워봅니다.

 
 
 
 
장인의 조건 1. 노력
 미술사가 유홍준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장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인의 정신은 가질 수 있겠다. 무엇이든 끝까지 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 그 가운데 장인은 탄생한다. 하지만 방해꾼이 있다. 바로 시행의 착오다. 하지만 그것이 약이 된다. 미술사가 유홍준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시행착오다. 인간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지식을 축적해 나간다.”라고 했다. 즉 한 사람이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까지에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대가가 될 수 없다. 시행착오는 단순히 그것이 반복된다고 해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글과 그림’의 장인은 적어도 그렇다.

 완당도 이렇게 말했다. “가장 주의할 것은 마음이 거칠어도 안 되며, 빨리 하려해도 안 되며, 맨손으로 용을 잡으려는 식은 절대로 안 된다. 하품을 하던 사자는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만 토끼를 잡을 때에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장인 정신은 결국 노력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무조건 노력이 아니라 전심전력을 다하는 노력이다. 노력을 하는 데에는 나름 훈련을 통한 방법, 수단을 갖추고 자신의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완당이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끊이지 않는 노력이 빛을 발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혼자 고고하게 존재할 때 프로정신이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과 끊임없이 맞닿아 소통을 위해 ‘노력’ 할 때 프로정신 즉 장인정신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유홍준은 진정한 전문가는 자신의 학문과 지식을 혼자만의 방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이른바 학문과 지식의 대중화를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인 산수화에 갇히지 않은 김홍도는 대중과 소통을 끊임없이 시도한 장인이다.
 
장인의 조건 2. 객관적인 시선, 그리고 대중화

 

 장인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 만들어낸 것을 혼자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내놓는 데 ‘음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음악인 김영일은 “남의 눈으로 자신을 살펴보는 사람이 장인”이라고 했다. 장인이 자신의 영역을 자신의 마음 보듯이 하려면 결국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장인들의 공통점이 모두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데 있기 때문이다.

 장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되, 객관의 시선으로 결과물을 만들고 그 결과물이 사랑받도록 하는 이다. 김영일의 말대로 음악도 장인의 손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고 이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다. 진정한 음악은 듣는 이와 음원이 만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특히나 우리의 음악은 관객과 군중이 참여할 수 있는 특징이 도드라진다. 이럴 때 듣는 사람도 장인을 만들어 낸다. 우리 음악을 찾는 것은 음악의 깊이를 나누는 것이다. 결국 음악은 나누는 것이고 그 책임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접하는 이들에게 모두 있다.

 필자가 가능한 한 많은 음악을 들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국악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도 국악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장인들만이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사람의 소양에 따라 장인의 가치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장인의 조건 3. 창조적인 마무리
 이는 ‘음식’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리가 조희숙은 “음식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음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보다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음식을 바라본 사람과 바라볼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다. 요리사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이 그 음식을 보고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는 직업이라면 음식 장인은 그러한 경지에 달통한 사람이다. 특히 우리 음식에 대해서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즉 외국인의 시선으로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우리의 음식에 대한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 가운데 우리 음식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고 접목하고 해오던 규칙을 깨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는 노력은 음식 장인에게 역시 필요한 일인지라 지나치게 전통의 늪에서 창조성을 억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랜 동안 숙련된 음식 기법을 통해 마지막 완성도를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음식 장인의 경지이다.
 
장인의 조건 4. 해석의 시간
 
 사람이 한 가지 작업을 오래하다 보면 숙련공이 된다. 하지만 예술가가 단순히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들이면 장인이 되는 것은 아니겠다. 사진가 배병우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는 아이디어와 정신”이라고 했다. ‘사진’의 장인은 자기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테크닉을 통해 제대로 투영시킨다. 사진을 배운다고 하면 대개 카메라의 작동법의 학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배병우의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을 사진으로 표현하는데 7-8년이 걸렸다고 했다. 배병우에게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표현의 도구이다. 사진은 사물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골라내야 한다. 그 뒤에 찍는 것이다. 그저 찍기만 하면 장인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면 벤야민의 말대로 사진의 전 과정을 직접 해야 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그저 찍기만 하는 현대인들은 사진의 장인이 될 가능성이 낮아진 것일까.

 하지만 장인이란 있는 그대로를 찍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장소를 찍어도 사진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 해석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도록 할 때 장인은 대중 속에 있게 된다.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가치를 얻었다. 소나무의 한국적 미학은 이러한 과정에서 완성되었다. 해석은 주관성이다. 그러나 그 해석을 무작위로 전달하는 것은 역효과를 낸다. 기초적인 표현 방식에 대한 소양은 필요하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조형성이다. 그는 사진이 아니어도 조형성은 문화적 감수성의 기초이기 때문에 반드시 습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장인의 경지 이전에 수용자나 창작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자격 요건이겠다. 무엇보다 장인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을 많이 보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그것을 앞에 두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필요하다. 결국 장인에게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의 철학이 필요하다. 또한 단순히 시간적인 양이 아니라 순간적인 시간도 중요하다. 특히 그것이 사진에 필요한 ‘타이밍’이다. 빛의 순간은 바로 사진의 생명을 결정짓는 것이며, 이는 사진의 생명이자 장인의 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장인의 조건 5. 반복적인 설득과 인내
 장인이 만들어낸 물건은 전해진 기술을 본인이 응용하고 그것을 현대인의 요구와 감수성에 맞게 만들어 낼 때 높은 대중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물론 가장 완성도가 높을수록 가치는 올라갈 것이다. 무엇인가 많이 만들어내는 것은 전통에서 내려온 기술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면에서 디자이너 정구호는 “전통을 응용하여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중간 계층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통적인 테크닉을 철저하게 배워야 하지만, 매 시대마다 새롭게 만들어져 한다.
 물론 그것은 대중적 접점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장인의 노력이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디자인’의 영역은 어느 분야보다 대중화 시키는 작업이 필수적이겠다. 현대에서 디자인은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산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장인 정신과 기업적인 생산과 유통 나아가 기업정신은 서로 배척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다.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디자인에서는 현대적 의미에서 장인은 기업을 배제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물에서 정구호는 장인에게 덧붙이는 과정을 실천하기 보다는 불필요하고 기본정신에 맞지 않는 것들을 정리하는 사람을 장인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중화시키는 것이 장인의 역할은 아니다. 이를 정구호는 한복을 통해서 설명한다. 한복을 많이 입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입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대중적인 한복을 만드는 것보다 기본원칙에 충실한 한복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이 기본적인 원칙과 맥락에 맞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역할도 따로 구분되어 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첨단 IT제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이팟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폭발적으로 판매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팟의 진가를 알아본 이들에게 점차 수용되고, 이후에 점차 판매가 크게 확산되었다. 결국 장인의 작품도 그것이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내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창의적인 작업은 반복적인 설득이고, 반복적인 설득에는 시간과 함께 인내심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공한 모델은 이후의 장인들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장인의 조건 6. 지식과 기술
 
 요컨대 장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적인 능력과 지식 그리고 기술이다. 그것이 튼실하게 있을 때 창의성은 더욱 진가를 발휘하며 좋은 물건으로 빚어진다. 이는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문성과 창의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건축가 김봉렬은 여기에 다른 원칙을 하나 더 강조한다. 이는 가우디의 사례를 통해 드러난다. 가우디가 다른 아르누보 스타일의 작가들을 제치고 유독 건축의 장인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의 작품에 바로 개인의 체험이 곧 사회적인 표현이 되었던 점이다.

 건축은 사적 건축과 공적 건축이 있는데, 공공건축에는 작가주의가 들어가도 되지만 사적 건축에 작가주의가 강조되면 거주자는 피곤해진다. 공공건축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작가주의는 곤란하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간 환경을 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의 말대로 오늘날 사적 공간의 디자인은 과잉되고 공적인 공간의 디자인은 과소평가 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 건축행위는 장인이 전과정을 아울러야 한다는 점에서 사진과 같다. 건축은 전과정을 디자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사람이 전과정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의 미학은 협업의 과정에서 도출된다. 이 때문에 장인은 한 분야에 집중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많은 창조행위들의 핵심을 통찰하고 그것들을 선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장인 정신은 개인의 독창적인 정신은 물론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총체적인 정신을 구현하고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서 나온다.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살피고 성찰하고 궁리하고 도전 개척하는 가운데 장인이 된다.

글 : 김헌식 (사회문화평론가)

유홍준 외

유홍준 (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김영일(국악전문 음반사 악당이반(주)를 설립, 현재 20여 명의 개인 연주자와 4개 단체가 회사에 소속되어 음악 작업 진행중), 배병우(현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정구호 (제일모직㈜ 상무),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조희숙(세종호텔 한식과장,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한식과장,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한식과장, 경남 남해전문대학 전임강사, 신라호텔 조리부 차장, 주미 대사관저, 우송대학교 외식조리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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