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물
김은숙
오랜만에 아버지의 억센 팔이 촘촘한 그물을 밤바다에 던져요. 그물이 펴지며 흐르는 소리가 상쾌한 바람을 일으키죠. 밤이 잠깐 환하게 밝아오는 순간이에요. 그러면 은빛 뱃가죽을 뒤집으며 팔딱팔딱 살아있는 바다의 별들이 이드거니 몰려와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후리!’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치곤 해요. 아버지 얼굴에 피어난 환한 파도는 찌든 걱정과 불안을 몰고 수평선으로 달아납니다. 한동안 바닷속에 별이 뜨지 않아 아버지는 한철 바다를 추슬러 변통해야 했거든요. 바닥은 가난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죠.
오늘은 남해에 사는 아버지로부터 묵직한 상자가 왔어요. 상자에서는 구수하고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와요. 서둘러 열어보니 동그랗게 눈을 뜬 검은 눈들이 올려다보고 있네요. 아버지가 미처 지우지 못한 바닥의 색깔이 파르스름하게 고여 눈물샘을 자극해요. 꼬들꼬들하고 매끈한 은빛의 언어는 시도 때도 없이 바다를 노래해요. 가슴이 흥건하게 푸른 빛으로 젖을 즈음 마른 멸치 떼는 다시 아버지를 데려갑니다.
남해(南海)에는 비릿한 바닷속에도 은하수가 흘러 다닌다는 것을 아시나요. 은밀한 반짝임은 하늘과 바다에도 존재해요. 누군가 하늘과 바다는 하나로 통한다고 했어요. 그래서일까요. 캄캄한 밤이면 하늘과 바다 사이에 별들이 오가는 걸 보았어요. 그건 어쩌면 오래전에 아버지가 잃어버린 꿈일 수도 있어요. 이루지 못한 꿈은 바다로 흘러들어 바람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바람이 불면 아버지 어깨가 들썩거리곤 했나 봐요.
누가 저토록 많은 은하수를 바다에 풀어놓았을까요.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이 흰 가슴을 열고 바다로 걸어들어오면 죽방렴 삼각 그물 안쪽은 자디잔 별들이 팔딱팔딱 뛰어다녔지요. 봄가을이면 뭍으로 떠난 그리움 때문에 유속이 빨라져요. 가난의 밑바닥에도 반짝임이 있다고 아버지는 믿었어요.
망에 가득 찬 바다의 속살을 끌어 올려 뜰채로 가짜 별들을 분리해요. 조치, 갈치, 도다리, 잔챙이를 뺀 멸치만 산 채로 바구니에 넣어야 하거든요. 바구니가 무거울수록 아버지의 이마에는 비린내가 더 선명해지곤 했어요. 아버지는 싱싱한 별을 좋아해서 별에 취하면 콧노래가 흘러나오죠. 이젠 별들에서 진한 비린내가 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도 아버지는 바람의 길목 멀리까지 나왔어요. 제대하고 돌아온 이마가 파릇한 아들과 낡은 뱃머리 끝에 마주 앉아 물밑 은하수의 이동로를 갸웃 살피던 아버지는 “아비가 가난해서 미안하구나” 하며 눈가가 촉촉해져요. 때론 눈이 침침한지 자꾸 눈을 깜빡거려요. 까무룩 졸며 뱃전에서 부표처럼 흔들리다가 다섯 평 물속으로 뛰어든 적도 있어요.
저 멀리 수평선을 쥐고 있는 아들의 미간에 고단함이 묻어나요. 해변에 북두칠성처럼 늘어진 채반에서는 꾸덕꾸덕 어촌의 하루가 짭조름하게 말라가고요. 갯바람에 미역처럼 검게 탄 아버지는 채반 깊숙이 손을 넣어 쉽사리 마르지 않는, 부자간의 뜨거운 거리를 가늠해 보곤 해요. 아들의 넓은 어깨 뒤로 펼쳐진 바다의 속살을 헤아리던 눈빛에는 지나온 세월이 수평선처럼 아득하네요. 아마도 당신의 젊음을 아들의 꼿꼿한 등에서 읽히기도 하나 봐요.
가끔은 선실 창가에 구겨진 채 걸터앉은 체납고지서가 먼바다를 먼저 살피기도 하죠. 충전된 바람이 모두 바닥난 선실의 선풍기는 혼자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요. 하지만 다행이랄까요. 남해에서는 태풍이 섬을 적셔도 어부들은 오랜 슬픔에 젖지 않는대요. 바닥은 때로 그 힘으로 바닥을 살리기도 하니까요.
별들은 떼살이어서 산 채로 담아야 싱싱해요. 아버지는 반짝이는 게 춤이라고 말씀하시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을 보는 듯 눈빛에 생기가 살아나요. “얘야, 저 몸짓을 보렴, 저 시린 등뼈의 흔들림이 파도를 닮았구나.” 어찌 아름답지 않겠어요. 온몸의 기를 쏟아 파도를 타는 절박한 몸짓이야말로 숭고한 삶인 걸 아버지는 진즉 알아본 거죠.
육지 멸치 막으로 온 별들은 이내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휩쓸려가 뜨거운 수증기 속에 잠겨요. 팔딱이는 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아버지는 가난이든 별이든 바짝바짝 잘 마르길 원했죠. 반짝이는 것이 가난의 마지막 춤이라는 건 저물녘 그물에 걸려든 멸치들의 몸짓이 말해줘요. 그때 멸치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춤을 추어요. 멸치들도 제 등뼈가 별빛에 시리다는 걸 아나 봐요. 바다를 누비며 떼 지어 다니다 육지 멸치 막으로 온 멸치는 마지막 삶의 궤적을 은빛으로 갈무리해요.
눅진한 해풍도 멸치처럼 채반에 잘 널어 말리면 갈매기로 환생하고 섬에서는 허공 저쪽으로 날아오른 몇 모금 담배 연기도 흰 돛단배가 된다고 해요. 먼 곳에서 유성비처럼 몰려올 수천수만 개의 별들은 오리온,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보다 투명하고 환하대요. 그래요, 남해의 멸치 떼는 은빛 파도가 비늘에 알알이 박혀 은박지보다 더 눈부셔요. 파도를 갈무리하는 그것들의 미세한 춤을 위해 바다는 가끔 여러 갈래 물길을 만들어요.
썰물이 되면 지족해협 삼각 그물 속으로 은하수가 떼 지어 몰려와요. 그 소리는 대나무숲에 이는 바람처럼 청량해요. 죽방렴 물속 길목이 순간 활시위처럼 팽팽해지고 물속에 종아리를 담근 대나무 발이 벙긋벙긋 웃음을 쏟는대요. 말뚝 밑 촘촘한 발가락 사이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멸치 떼가 당도한 걸까요? 죽방렴 높이 솟은 대나무 꼭대기에서 망을 보던 햇살들이 휘파람을 부네요. 아버지보다 먼저 공중에 붙박인 갈매기들의 환호성이 싱싱하게 튀어 오르는 은별들을 잽싸게 받아 물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요.
오늘 밤 당신이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한가요. 아마도 바람결에 비린내가 실려 온다면 그것은 순전히 남해의 푸른 심장이 키운 은빛 지느러미 탓일 거예요. 해풍의 모서리가 동그랗게 오그라드는 섬 끝에서부터 남해의 별들은 눈을 뜬대요. 죽방렴 캄캄한 수심 아래 푸른 숲의 메아리를 숨겨둔 참나무 말뚝들은 입이 무거워요. 저마다 비린 가족사를 안고 다시 천년을 꿈꾼다네요. 이것은 어쩌면 당신 몸에 지느러미가 처음 돋아났던 그때부터 생긴 비밀일지도 몰라요.
오늘은 아버지가 보낸 편지처럼 내 가슴에도 별들이 팔딱거려요. 그동안 내 삶이 아버지를 포획하는 시간이었다는 걸 각진 나무 상자 안의 은하수가 말해주네요. 아버지가 밤하늘 어딘가에서 내려다보듯 나는 자망(刺網)에 가득 찬 희망일까요. 어쩌지 못해 뒤돌아 훔쳤던 눈물이었을까요. 아버지의 거친 등에 새겨진 청람 빛 바닷바람이 오래도록 가슴에서 떠나지 않아요.
ㅡ2023 제11회 등대문학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