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수요일>(2023. 8. 9. 수)(마태 15,21-28)
복음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아지들』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 15,21-28).”
이 이야기는, ‘우상숭배자’들은 구원받지 못하지만,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티로와 시돈 지방, 가나안 부인, 강아지들’이라는 말은,
여자가 이방인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신 것은, 분명히 거절입니다.
그러나 그냥 거절은 아니고, 은총을 청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상태를 반성해 보라는 ‘무언의 가르침’입니다.
여자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여러 우상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평소에 자기가 섬기는 우상에게
소원을 비는 것처럼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자의 간청에
대답하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예수님께 간청하려면 그렇게 불러야 한다고
누군가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또 주님으로 믿은 것은 아닙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라는 말씀도 거절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그냥 거절은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느님의 양이 되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으로 귀화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에 연결됩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10,5-6).”
<이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라는 말씀도 거절인데, 이 말씀도 그냥 거절은 아니고,
“자녀들의 빵을 먹고 싶다면 먼저 자녀가 되어라.”,
즉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싶다면 먼저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은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는 여자가 ‘이방인’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자’ 라는 점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에게 은총을 주신 이야기가 아니라,
‘우상숭배자’를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거절하시는데도 여자가 끈질기게 간청한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간절함’ 때문입니다.
<그 간절함이 결국에는 믿음으로 이어졌지만......>
여자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침묵의 뜻도, 또 거절하시는 말씀의
뜻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강아지들이라는 말을 듣고 비로소
‘말씀의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라는 말은, 자신이 강아지라는 것을,
즉 ‘어리석은 우상숭배자’ 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우상숭배를 버리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는
말은, “제가 비록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은총의 부스러기라도
좀 주십시오.” 라는 간청입니다.
<사실 ‘간절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그 ‘간절함’만으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함’ 때문에 더 심하게
미신과 우상숭배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여자가 예수님에게로 온 것 자체를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부르심과 여자의 응답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라는 말씀은,
여자의 변화와 결심을 칭찬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올 때에는 믿음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여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칭찬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버리고 이제 새롭게 믿음을 갖게 된 것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복음서의 기록만 보면, 여자가 금방 깨닫고, 금방 변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예수님과 여자 사이에 더 많은 대화가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좀 더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간절함만으로 금방 우상숭배를 버린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는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즉 신앙인이면서도 ‘미신’을 믿고 ‘점’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인 사람이 스스로 ‘개’가 되는 일이고,
십계명 제1계명을 위반하는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출처]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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