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교회
마16;13-20
영국의 존 뉴턴 목사는 우리의 애창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곡하셨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좋은 삶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은 한 때 노예처럼 살기도 했고, 또 노예선의 선장으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목사님은 주님 은혜로 목사가 되어 평생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이 남기신 설교 중에 남기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다음에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세 가지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곳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곳에 없어서 놀랄 것이고,
둘째는
그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셋째는
나 같은 죄인이 그곳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사실 천국은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리와 창기처럼 겸손하게 자기 죄를 깨달아 회개하면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의가 드러나야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달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입니다.
아니, 너무나도 큰 죄인이라서 죽어 마땅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깜짝 놀랄 것입니다.
또 하나, 목사님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쇠퇴하자 종종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건 과거에 너무 큰 죄인인 나를 예수님은 마다지 않고 내 구세주가 되신 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크나큰 죄인이라서 죽어 마땅하고 용서받기조차 어려운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죄인임을 아시고도 마다지 않으시고 우리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아니,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천국에 대한 염원이 없는 사람이므로 천국은 요원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을 다해 예배드리고 전진해서 영원한 천국을 향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귀들이 모여서 한 회의와 천사들이 모여서 한 회의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기쁨을 빼앗을 것인가가 주제였습니다.
마귀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 늙은 마귀가 한 가지를 제안했는데, 만장일치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웃는 웃음을 뿌리자는 것이었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마귀들은 흩어져서 사람들 마음속에 거짓 웃음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고 세상에는 금방 웃음꽃이 넘쳐났습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누구를 만나도, 심지어 꾸지람을 들어도 웃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거짓 웃음이 넘치면 넘칠수록 진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으로 일단 마귀가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도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잃어버린 기쁨을 찾게 할까?"하고 회의가 열렸습니다.
천사들도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지만, 다들 고개만 갸웃거릴 뿐 마땅치 않았습니다.
한 어린 천사가 일어나 사람들에게 눈물을 뿌리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천사들이 흩어져서 사람들 마음에 눈물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눈물을 통해 점점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거짓을 보아도 눈물을 흘렸고 다른 이의 아픔을 보고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메말랐던 마음이 살아나 사람들 마음에 눈물이 다시 고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 이상한 것은 눈물이 넘치면 넘칠수록 기쁨 꽃이 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이성, 감성, 지성을 주셨습니다.
이 셋을 합쳐서 인간성이라고 하는데 이성, 감성, 지성은 예배를 통해 살아납니다.
오늘날 교회는 바로 이성과 감성과 지성을 회복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온전한 주일 성수를 통해 이성, 감성, 지성이 회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행복이 달라집니다!
한 젊은이가 우연히 길을 가다가 길에 떨어진 오만 원짜리 지폐를 주었습니다.
그 후 이 젊은이는 고개를 숙이고 길바닥을 보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고개 숙인 채 걸어가던 그분 눈에 노란 은행잎이 들어왔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따사로운 가을 햇살, 푸른 하늘, 울긋불긋한 단풍이 빛났습니다.
이 청년은 비로소 자신이 지나간 세월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청년은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니 얻은 것은 돈 몇 푼, 잡동사니, 구부러진 어깨였습니다.
그 대가로 밤하늘의 별도, 불어오는 바람소리도, 나뭇잎의 춤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돈은 시계를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고 사람은 살 수 있어도 마음은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호화로운 집을 살 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은 결코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책은 사도 지혜는 살 수 없고 지위는 사도 존경은 사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행복입니까? 불행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가정을 만들어 주시고 교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정을 통해서 회복을 허락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교통의 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회복과 교회의 봉사 헌신이 행복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고 비바람을 막고 등을 누울 수 있는 집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감사한 마음을 모아 거룩한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가는 것입니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을 뵙는 것 그것이 샬롬이며, 온전한 회복입니다.
여기에 우리교회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예정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하신 유명한 장면입니다.
예수님 일행은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합니다."
그러자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교회 설립을 선포하십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
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구약의 다윗도 신약의 베드로도 전부가 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설립된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고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로;신앙고백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결심의 표현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한 가지 분명하게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낳았더니, 자식은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는 자식을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아이들에게 부모님은 정말로 신뢰하는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의지하는 이유는 부모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괜찮더라는 것입니다.
또, 어린 자식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을 부모님은 마음대로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엄마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런 믿음이 점점 싸여서 나중에는 부모님을 완전하게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의지하는 자식이 될 때 행복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특정한 것 하나를 믿습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쌓이고 쌓여서 완전한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이란 하나님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믿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고백이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완전한 신뢰로 구축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이란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라는 고백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동일하게 고백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고백,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 다는 고백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그 고백을 듣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면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열세 명의 뜨거운 심령들이 모여서 찬양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합력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을 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 위에 교통하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신앙고백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누구랄 것 없이 감동되는 대로 헌금을 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어떤 교회가 개척하게 된 과정입니다.
교회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집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런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신앙고백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자식을 길러보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자식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때는 나도 모르게 즐거워졌습니다.
바로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는 자식에게 용돈도 주고 칭찬도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만일에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결코 순종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앙고백은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순종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순종은 이성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이성을 넘지 못하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성을 뛰어 넘을 때에 비로소 행동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감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감성을 극복하지 못해도 순종하지 못합니다.
바로 감성을 극복한 다음에서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순종은 지성을 초월해야 합니다.
지성을 초월하지 못해도 순종하지 못합니다.
바로 지성을 초월한 다음에야 비로소 깨달아져서 가슴으로 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님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칭찬의 기쁨과 대가가 있음을 경험으로 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과 주실 축복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앙고백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명절이 되면 귀향을 합니다.
형제자매가 한 자리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족이 모인 자리에 형제자매간에는 나이차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의지하며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간에는 권력도, 물질도, 명예도 상관없이 그저 보는 것만으로 행복합니다.
그런데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없으면 더 이상 목사가 아닙니다.
물질이 모인 것도 교회가 아닙니다.
물질은 교회를 운영하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은 성도가 모이는 곳일 뿐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영접하고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신앙고백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여럿이 모여 힘을 합하니 건물도 짓고 능력도 나타나고 큰일도 하는 것입니다.
한 장로님이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요양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연히 두메산골 마지막 마을 일곱 가구가 있는 곳의 교회를 보았습니다.
장로님이 그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그만 교회를 건축 하라는 주님 명령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은 전 재산을 정리해서 교회로 이사를 와서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은 노동을 제공하고 목사님은 터를 제공하고 장로님은 물질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서 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힘을 합하여 우리 교회를 하나하나 완성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으로; 우리는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먼저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고백한 그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여기서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내가 의지하는 우리 아버지라는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순종해서 서로 섬겨주고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먼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먼저가 되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