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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야곱의 우물가 원문보기 글쓴이: ♡겨자씨♡
주님의 사랑과 섬김을 본받으라. (막9:22-29) 주신 말씀 막9:22-29절을 중심으로 주님의 사랑과 섬김을 본받으라는 제목으로 선포되어지는 멧세지를 통해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후기사역을 보도하고 있는 막6:7-50의 연속부분으로써 변화산상에서 내려오신 주님께서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고쳐 주십니다.제자들은 왜 자기들이 기도했는데도 고치지 못했느냐고 묻자 기도와 금식외에 어떤 것으로도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합니다. 지난 한주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이제 본격적인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늦가을에 접어들어 곧 눈이올 것 같습니다. 이런 환절기에 특히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에 유의하셔서 건강하고 풍성한 가을을 멋지게 보내시기를 소원합니다. 변화산상의 영광스러움과 극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귀신들린 자로 대변되는 변화산 아래의 참담함,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 조롱당하는 모습과 귀신을 제어하는 큰 능력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엘리야 모세와 함께 변화산상에 계시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낮은 곳 가장 참담한 낮은 곳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백성들과 함께하며 귀신들린 자를 치료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닮아야할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참된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하라.(22-23) 귀신들린 자의 아버지는 “만일 고쳐 주실 수 있다면 고쳐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심투성이의 불완전한 간구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며 꾸짖습니다. 주님의 언약, 주님의 권세, 주님의 진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하는 가정은 불신앙을 말합니다. 주님에 대한 참된 믿음에는 [만약]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란 말은 반신반의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의 제자들이 실패한 것처럼 부창부수라 하듯 그 아비에 그 쏠린 관심은 예수님도 할 수 있으려나하는 의심 반,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 반인 상태입니다. 만약 천국에 간다면 혹 만약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이란 이런 종류의 의심투성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바라지 않으십니다.‘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에이티 뒤내]는 ‘만약에 예수 선생님이 귀신을 쫓나낼 수 있는 능력이나 역량이 있으시다면’아들을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소년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반신반의하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아달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자들의 실패를 예수님에게 결부시켜 생각함으로써,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아들의 치유를 바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며 그 능력을 의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그는 자신과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의 능력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는 예수님께 [스프랑크니조마이]라는 내장을 움직이다, 동정심으로 마음을 움직이다. 사랑과 긍휼, 동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서도 그로부터 도움을 얻어 보려는 인간의 얄팍한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도 이와같이 전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 능력을 의지하지 못한 채 다만 땅에서 물질이나 명예나 건강의 복만 바라지 않으시는지요? 히11: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는 말씀처럼 주안에서 믿는 다는 것은 실상이지 허상이 아니요,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인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그런 확신을 지녀야 합니다.주님이 우리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면 그런줄 믿어야 하며, 주님께서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나에게 그 약속이 이루어질 줄 믿어야합니다.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주님의 약속은 나에게 현실화 될줄 믿어야 성도의 바른 자세이지, 만일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불신태도는 과감히 버려야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주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까요? 둘째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24) 24절에서 예수님께 책망 받은 아이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이의 아비가 즉시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주님 내가 믿습니다.내 불신앙을 도와 주십시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 안에서 스스로 갖게 된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유지하고 지킬 수 있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성령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유지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며 , 그러기에 믿음이 건재하고 또 자라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주님 말씀하셨습니다.어리석은 인생이 눈에 보이는 것도 다 믿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까지 믿으려고 몸부림치는 이유를 아시지요? 보이는 밥은 40일을 먹지 않고 금식해도 살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는 4분만 숨을 쉬지 않으면 뇌사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밥보다 보이지 않는 공기가 더 중요한 것처럼, 육체의 수련은 약간의유익이 있을지라도,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 평생을 좌우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나의 주님으로 믿는 믿음도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요 성령님의 도우심 때문에 유지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여 내 믿음을 도와주시고, 유지시켜 주시고, 성장시켜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쉬지 말고 해야 될 줄 믿습니다.특별히 매 믿음이 크다고 자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믿음이 작다고 깔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믿음이나 다른 사람의 믿음이 한결같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유지시켜 주시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주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까요? 셋째로 주님 손에 붙들린 삶을 살라.(25-29) 25-26절은 귀신에 대한 예수님의 축사명령이 있은 후 아이는 귀신에게 해방되어 평안을 얻었습니다. 발광을 멈추고 아주 고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본 무리들은 ‘죽었다’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오해 하였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사역에 대해 주님 사역기간뿐 아니라 아직도 세상은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선한 사역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 부터 당하는 박해와 비난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뿐더러 ,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하시는 주님의 선한 사역을 곡해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인 사단에게 속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선한 일을 하면서 오해를 받고 비난을 받을 때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고 오해받고 비난을 받으면 ,비로소 내가 이제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의 사람이 되고 있음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 진실을 아시고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억울함을 풀어주실 뿐 아니라 하늘에서 큰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27절은 주님께서 벙어리 귀신이 나가고 죽은 자처럼 누워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놀라운 장면입니다. 옛사람이 회개했다고 해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귀신에게서 해방되었는데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으니 사람들은 죽었다고 수군거린 것입니다. 옛 사람의 죄를 회개했으면 이제 주님께서 손잡고 일으키신 후에야 온전히 새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출석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신앙고백을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어 거듭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듭난 이후의 생활이 더더욱 중요한 것은 거듭난 후에 더욱 주님의 손을 굳게 잡고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새사람이 되어 영원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눈을 뜨게 해준 소경이 시장에서 술에 취해 술주정을 하다가 주님께 달려와서 “예수님 차라리 나를 소경으로 그냥 두셨다면 이 더러운 세상 보지 않고 동냥 받은 몇 푼으로 하루 하루 살았을 텐데, 내 눈을 뜨게 해주셔서 이렇게 괴롭게 삽니다” 한다면 예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는 주님께서 내민 손 붙잡고 새사람되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 따라 나에게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도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타락한 사람이 많습니다.왜냐하면 사탄 마귀 귀신은 영적인 존재여서 우리가 한순간만 방심하여도 순간적으로 침투해 들어와 집을 짓고 마침내 타락으로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손에 온전히 붙들려 옛사람의 구습을 벗어버리고 주님이 입혀주시는 의의옷 거룩하고 성결한 옷을 입고 예수님을 만나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듭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고백을 했기에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상속자 되었기에 더욱 근신하고 경계하며 주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굳센 손, 의로운 손으로 항상 자신의 영호노가 삶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골3:1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8절에서 제자들이 자기들이 이미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은사를 받았음에도 고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합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같은 질문에 마태는 ‘너희의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17:20)하는데 마가는 ‘기도 외에는’이란 표현을 통해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 말합니다. 다른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오직 기도만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신뢰하고 구하는 것이기에 믿음의 신실한 표현이라 할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그분만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인본주의적 성향은 언제나 믿음 이면에 숨기워져 우리를 악으로 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서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불신앙을 극복하는 길이 될줄 믿습니다. 어떻게 주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참된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하라(22-23). 둘째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24).셋째로 주님 손에 붙들린 삶을 살라(25-29).주님께서 변화산의 영광에 심취하여 베드로의 말처럼 내려오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께서 그 영광의 장소를 떠나 문제투성이인 산 아래로 내려 오셨기에 ,죄에 눌려 희망이 없이 죽어가던 인생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주십니다. 주님은 죄에 눌려 희망없이 죄에 눌려 희망없이 죽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구원과 희망을 주시기 위해 하늘 보좌 영광을 버리고 죄와 사망이 들끊는 이 세상 가운데로 오신 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