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
117. 헷갈리는 장유파
문도네가 촉석문 주차장으로 올라와 보니 장유파의 에쿠스는 이미 떠나고 없다.
삼봉이 투싼 운전석에 올라가 시동을 걸고 두 사람도 차에 올랐다.
“이 경사, 회식하는 김에 강철이도 나오라고 할까?”
조수석에 앉은 문도가 뒤에 앉은 정훈을 돌아보고 물었다.
“아, 그 오토바이 배달사업 한다는 친구 말이지? 그래, 좋아. 나도 인사 나누고 싶었다.”
정훈도 문도에게서 고아원 동기로 싸움도 잘한다고 말로만 듣던 강철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김해 장유파와 진주 이병율파가 마약을 거래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앞으로 수사하려면 김해에도 들러서 여러 가지로 탐문할 일도 많을 것이다.
“지금 출발하면 김해에 7시쯤 도착할까?”
“일요일이라서 좀 밀리지 싶은데? 두 시간 반은 잡아야 될걸?”
“그래? 그럼 강철이한테 여덟 시에 나오라고 할게.”
문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코모도. 진주에는 잘 다녀왔나?”
아침에 해삼 병실에 문병하러 온 강철에게 진주에 간다고 말했었다.
“응. 지금 진주에서 출발하려는데, 여덟 시쯤 강변장어타운 보국에서 만날 수 있나 해서.”
-“여덟 시에? 나는 지금부터 영업 시작하는 줄 알면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너네 오토바이 부대 덕분에 해삼이랑 멍게가 살아났잖아? 그래서 보답으로 식사 좀 대접하려고. 그러고, 네게 정훈이도 소개해줄까 하는데, 괜찮겠어?”
-“아, 그래? 알았다. 김해 다 오면 다시 전화 주라. 나도 그 정훈이라는 친구 만나보고 싶었다.”
“좋았어. 그럼 이따 보자.”
통화를 끝낸 문도가 싱긋 웃으며 삼봉에게 출발하라고 손짓했다.
**
저녁 6시 반경, 김해시 장유면 코아상가 사거리 북쪽 먹자골목 끝자락에 있는 ‘무계헌’ 아구찜 식당.
식당 건물 4층 장유파 본부에서 지금 막 도착한 두목 이무계와 행동대장 쌍칼이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중간보스와 함께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중간보스는 바로 이번에 실패한 파사석탑 도둑질 책임자로, 이무계의 신임이 두터워 쌍칼이 늘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이다.
“거래는 잘 마치고 오셨습니까?”
중간보스가 겸연쩍은 얼굴로 쭈빗거리며 인사말을 올렸다.
“응. 물건은 샀는데, 문제가 좀 생겼다.”
이무계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문제라 하시면, 무슨 큰일이라도 있습니까?”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심각한 표정이라, 중간보스는 혹시 파사석탑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닌지 걱정되어 오금이 저린다.
“파사석탑 때문은 아니니까, 우거지 면상 좀 펴라! 돈이야 몇억 들었지만, 장물을 미끼로 거래도 트고 이병율파와 우호 관계를 맺은 것만 해도 어디야?”
이무계가 자기의 수족인 중간보스가 울상을 짓자 피식 웃으며 풀어줬다.
석탑이 확보 안 돼서 생돈을 급히 마련해 지불한 이무계가 그래도 보스로서의 통 큰 행동을 보이며 무게를 잡았다.
“우리 차에 위치추적기를 달고 미행하려던 놈들이 셋이나 있었소.”
쌍칼이 쌀쌀한 말투로 내뱉고는 중간보스를 유심히 살폈다.
이제는 혹시 저 중간보스 놈이 마약을 탈취하려고 어떤 놈들을 고용한 게 아닌지 의심까지 하는 모양새다.
“예? 미행이요?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보스가 오늘 진주에 간 줄은 저희 세 사람밖에 모르는데...”
말을 하던 중간보스가 흠칫 놀라며, ‘나는 절대로 아닙니다’ 하는 얼굴로 이무계를 바라봤다.
“혹시 이병율파가 중간에서 강탈하려고 그랬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게 밝혀졌소.”
“아, 그래요? 그건 어떻게 확인했는데요?”
“내가 이병율파한테 긴급 지원요청을 했더니 대여섯 명이나 배를 타고 남강을 건너왔소.”
“아, 그럼 그 세 놈을 때려잡았겠네요?”
“아니야! 그 세 놈이 동전으로 팔매질을 기똥차게 해서 이병율파가 전부 얼굴에 맞고 다쳤다. 그러니 이제 이병율파에 뭐라고 해야 할지 큰일 아니냐?”
이무계가 어쩌면 좋을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놈들이 분명 어느 조직의 하수인 같은데, 어딘지 알아내야 대책을 세우든지 이병율파한테 변명을 하든지 할 거 아니겠소?”
쌍칼은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중간보스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아하.. 그럼 혹시 어제 그놈들이, 이글스파에서 보낸 놈들이 아닐까요?”
“뭐? 이글스파? 서울 신림동 이글스파 얘기야? 어제 네가 파사석탑 그 새끼들은 삼방파라고 하지 않았어?”
“예, 보스! 실은 오늘 애들한테 다시 확인하다가, 그 혁대 휘둘렀던 놈이 자기가 이글스파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젯밤에 수하들한테서 들은 얘긴데,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잘못 보고했다가 더 야단만 맞을까 봐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진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고, 이글스파로 주의를 돌려야 자기를 향한 의심에서도 벗어나겠다 싶어졌다.
“그래? 그럼 애들이 헷갈렸던 모양이네. 야, 쌍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아까 그 새끼들한테서 뭐 들은 말 없어?”
한 놈을 납치하고 남강 둔치에서 칼부림까지 했는데, 그 와중에 서로 말을 주고받다가 얼떨결에 그놈들이 실수로 뱉은 말이 없었더냐는 뜻이다.
“아, 그 자식들이 서로 부르는 호칭 중에 지부장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납치했던 놈 이름은 삼봉인데, 그놈이 제일 덩치 큰 놈을 지부장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여튼 파사석탑에 갔던 애들은 어찌 된 게 한결같이 띨띨한지 모르겠어요.”
쌍칼이 자기만 알고 넘어가려던 사실을 하는 수 없이 까발리게 되자, 중간보스가 더욱 미워지고, 파악도 제대로 못 한 게 짜증스럽다.
“지부장이라고? 그럼 혹시 이글스파가 진주에 지부를 두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무계가 엄청나게 놀라운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수하를 번갈아 봤다.
“글쎄요... 만약 그렇다면, 이글스파의 수준으로 봐서 이병율파의 동태를 주시하다가 우리가 누군지 확인하려고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쌍칼도 이글스파가 조직원이 100명도 넘는 큰 조직이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 조직이 마약을 확보하려고 진주에 지부를 두고, 조직원이 30명 정도인 이병율파를 감시하며 뭔가 약점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틀림없이 그런 모양이다. 진주에 지부를 차리고 이병율파를 염탐하다가 우리하고 접촉이 있는 줄 알아챈 모양이네. 그래서 여기에 그 두 놈을 밀파했다가 수로왕비릉까지 따라 들어왔던 게 분명해! 이제 어쩌면 좋냐?”
이무계가 소설을 쓰고는 쌍칼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듯 쳐다봤다.
“어쩌기는요! 당장 그 이글스파란 놈을 잡아야지요. 그래야 이병율파한테 변명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쌍칼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싶은지 해삼을 잡자고 나섰다.
“그놈을 어떻게 잡아요? 어디 있는 줄 알고?”
중간보스가 띨띨한 표정으로 쌍칼을 쳐다봤다.
“어디 있다니요? 그놈이 우리 애들한테 묵사발로 맞았는데, 지금 병원 말고 어디 있겠소? 어제는 우리가 문화재 작업하다 들킨 거라 쉬쉬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잖소?”
“그래 맞다. 어서 가서 잡아라! 그놈만 잡으면 이병율파한테 변명이 아니라 생색내면서 뭔가 큰 거 하나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크.”
이무계가 새 판타지 소설 시놉시스가 떠오르는지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예, 보스! 지금 당장 애들 풀어서 김해에 있는 병원 싸그리 다 뒤지겠습니다!”
중간보스가 벌떡 일어서며 서둘렀다.
“다 뒤질 필요가 뭐 있소? 갈 데는 뻔한데! 중상 입으면 어디 갈 거요?”
쌍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간보스를 흘겨봤다.
“아, 그렇지! 제일 큰 김해중앙병원부터 가보면 되겠네요.”
감을 잡은 중간보스가 핸드폰을 꺼내 수하들을 부르려고 했다.
“잠깐만요! 이번 일은 매우 중요하고, 내가 관련된 일이니까 내가 직접 나서겠소. 그래도 되겠습니까?”
쌍칼이 중간보스를 만류하며 이무계에게 허락을 요청했다.
별로 어렵지도 않아 보이는 이런 큰일을 깔끔히 처리해서, 이번 기회에 중간보스를 확실히 누르고 제2인자 자리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이다.
“아, 그래라. 이번에는 쌍칼이 욕 좀 보거라.”
이무계 생각에 입원해 있는 이글스파 조직원을 잡아 오는 일이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닐 거라고 느껴졌다.
분명히 병원 주변에 이글스파 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와 오랜 시간 고락을 함께하며 조직을 키워온 중간보스 대신에, 데려온 지 얼마 안 된 쌍칼을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 자식 얼굴 아는 대원 두 명만 붙여 주시오.”
쌍칼이 중간보스에게 해삼 얼굴 아는 대원을 요청했다.
“중앙병원 병실이 엄청 많은데, 대원들 다 데려가야 되지 않겠어요?”
중간보스가 두 명 데리고 가서 그 많은 병실을 언제 다 뒤지냐는 투로 말했다.
“그래, 맞다. 이글스파 대원들도 병원에 몇 놈은 와 있지 않겠냐?”
이무계도 인원은 넉넉하게 데려가라고 했다.
“병실은 많아도 외과 병실만 뒤지면 되지요. 그러고, 혹시 모르니까 보호하러 나온 이글스파 눈에 안 띄게, 우리 대원은 전부 열 명만 데려가서 2개 조로 나누어 은밀히 훑어보려고 합니다.”
쌍칼이 자신감을 내비치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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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일찍 왔네. 삼봉아, 해삼 병실에 잠깐 들렀다 가자.”
예상외로 두 시간도 안 걸려 7시 조금 지나 남해고속도로 서김해 IC 가까이 다다르자, 문도가 삼봉에게 지시했다.
서김해 IC에서 병원까지는 2km 정도이고, 병원에서 강철과 만나기로 한 강변장어타운까지는 7km 거리다.
오늘 아침 일찍 문병하러 갔다 왔지만, 장유파 파사석탑 도굴 패거리에게 얻어터진 해삼을 정훈에게 보여주고 생색을 내고 싶어졌나 보다.
우리 애들이 이병율파와 마약 거래하는 장유파와 이렇게 먼저 전투를 벌였다는 걸 해경 마약 수사팀 반장인 이정훈 경사에게 보여주고 공치사라도 듣고 싶어진 게다.
“아, 그 수로왕비릉에서 장유파 도굴꾼과 싸웠다던 해삼이라는 친구?”
아까 진주 촉석문 앞에서 문도에게 얘기 들었던 정훈이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
“응, 멍게가 옆에 있어도 종일 심심했을 거야. 얼굴이나 보고 얼른 가면 돼.”
기특한 수하들 얼굴을 떠올리며 문도가 기분 좋게 씩 웃었다.
“그러면, 빈손으로 가기 그렇고, 어디 슈퍼라도 들렀다 가면 좋겠는데.”
뒷좌석의 정훈이 삼봉에게 얼굴을 당기며 말했다.
“아, 예. 병원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습니다. 거기 잠시 멈췄다 갈게요.”
삼봉도 해삼과 멍게 보는 게 좋은지 서둘러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벌써 어둠이 깔린 왕복 4차선 도로를 질주해서 5분쯤 달리자 길 건너 왼쪽에 ‘탑 마트’ 간판이 보이더니, 곧바로 우뚝 선 7층 높이의 김해중앙병원 건물이 나타났다.
병원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꺾어 든 투싼은 왼편 병원 건물 동관과 오른편 서관을 잇는 구름다리 밑, 서관 입구 길가에 멈춰 섰다.
“저기 편의점에서 간단한 마실 거나 사고 여기서 기다려라. 저 앞 주차타워에 파킹하고 여기로 올게.”
문도가 내리는 정훈을 돌아보고 일렀다.
저만치 수십 미터 거리에 왼편 동관에 붙어있는 3층 주차타워가 보인다.
“응, 그래.”
차에서 내린 정훈이 문을 닫고 두리번거리다 바로 앞에 불이 환히 켜진 작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편의점 우측 으슥한 골목 안에 있는 흡연실에서 나오던 쌍칼이 정훈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며 구름다리 기둥 뒤로 숨었다.
그러고는 멀어져가는 투싼 뒷모습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쌍칼은 지금 데려온 대원들 10명을 병원 안에 들여보내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