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다 똑 같이 하루 24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늘 분주하게 만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믹스가 잘 돌아간다고
쉬지 않고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연기가 모락 모락 나게 되듯,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쁠 망(忙)이라는 한자는 마음 심(心)+ 망할 망(亡)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너무 바쁘게만 살면 마음이 망(亡)하고, 몸이 망하고, 관계가 망하고, 인생이 망합니다.
그것이 질병이요, 고통이요, 파괴요, 슬픔이요,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됩니다.
당신은 어느 쪽이신가요?
"나는 대체로 한가하다" 하시는 분이십니까? 아니면 "나는 대체로 바쁘다" 쪽입니까?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서 2030 직장인 1,112명을 대상으로 "자신을 '타임푸어(시간 빈곤층)', 즉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가?"라고 물었더니 남성의 70.9%, 여성의 71%, 평균 약 71%가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여유나 휴식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미혼 직장인은 68.5%, 기혼 직장인은 74.2%가 “바쁘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기혼자는 퇴근 후 집안일과 육아가 더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무엇을 포기하며 살아야 할까요?
시간이 부족해 포기한 1위는 체력과 건강 관리, 2위는 대인관계, 3위는 자기계발, 4위는 충분한 휴식, 5위는 취미·여가 활동이었습니다.
여유 시간이 생긴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는 '늦잠·낮잠 등 원~ 없이 잠자기'가 1위였고, 당일치기 여행, 철저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가 뒤를 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실 이렇게 바쁘다고 느끼는 상당 부분이 사실은 '착각'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단비뉴스 보도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항상 바쁘다고 느끼지만, 실제 노동 시간을 조사한 BBC 라디오 방송 〈바쁨의 역설〉에서는 "스스로 가장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실은 과거에 비해 그리 바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1950년대에는 연간 노동 시간이 2,000시간을 넘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1,800시간대로 줄었습니다. 과거 주 6일 근무나 반공일(토요일 반일 근무)을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근로 시간 총량은 줄어들거나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1980년대 사람들보다 현대인이 훨씬 더 바쁘다고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경제 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증가할수록 '시간의 가치'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예전 농경 사회나 수공업 시대에는 계절과 수확의 때를 기다려야 했고 사람이 손으로 만드는 한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현대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시간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과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내 안의 침팬지 길들이기》의 작가 토니 크랩(Tony Crabbe)은 현대인이 '무한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메일, 넘쳐나는 정보, 회의, 스마트폰 기술은 집, 체육관, 휴가지 등 언제 어디서나 일거리를 연결해 줍니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는데 무한한 일에 도전하다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뇌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정보를 입력하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뇌가 쉴 틈이 없어지고 결국 현대 질병의 주원인인 만성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분주한 삶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누가복음 10장에서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머물 집이 없으셨기에 쉼이 필요하실 때면 제자나 친구들의 집을 찾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마리아와 마르다의 가정을 방문하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자들과 일행 10여 명이 함께 방문했으니 손님맞이 준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즉시 부엌으로 달려가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했습니다.
음식 준비에는 참으로 많은 수고와 정성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조용히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분주함에 지친 마르다는 주님께 다가와 항의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공동번역이나 우리말 성경에는 "그러나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르다가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틀렸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마음을 품은 뒤에 봉사하면 기쁨으로 할 수 있지만, 주님의 마음 없이 일부터 앞세우면 쉽게 지치고, 지치면 원망과 짜증, 불평이 생겨 결국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몸을 관리를 해야, 더욱 멋진 자유를 누릴 수 있듯,
우리의 마음, 시간, 욕심들을 관리해야 더욱 멋진 인생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예술의 극치가 화려함보다 절제된 음과 선에서 나오듯, 영적인 성스러움 역시 분주한 열심보다 '단순함'에서 나옵니다. 영성을 기르고 주님을 닮아가려면 삶을 단순화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7절에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얽어매지 말고 단순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삶을 단순화하는 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1. 생각의 단순화
전도서 7장 29절에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정직하게(야샤르)'는 '단순하게'라는 뜻도 지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단순하고 평범하게 만드셨으나 인간 스스로 복잡한 꾀를 내어 삶을 얽어매었습니다. 지나치게 영리해져 손해 보지 않으려 계산하고, 사소한 자존심 때문에 남도 괴롭히고 자신도 피폐하게 만듭니다.
정신적 과잉활동 증후군(PES)이라는 대중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끊임없는 잡생각, 타인의 감정과 시선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 지나친 감정 이입 등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상태입니다.
튜링상 첫 수상자인 앨런 펄리스(Alan Perlis)는 "바보는 복잡성을 간과하고, 실용주의자는 복잡성을 견뎌내며, 천재는 복잡성을 제거한다"고 말했습니다. 영적 천재, 곧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복잡성을 제거하고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예수님을 참되게 믿는 것은 까다로운 완벽주의가 아니라 원만함과 단순함입니다.
식사 당번 봉사가 부담스러워 교회를 못 가겠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안 하자니 눈총을 받을 것 같고, 하자니 몸이 힘든 것입니다. 봉사하기 싫으면 당번을 내려놓고 남들의 시선을 감수하든지, 비난받기 싫으면 불평 없이 기쁨으로 감당하면 됩니다. 두 가지를 다 쥐려 하니 고통스럽습니다.
금강경 해설서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 한 선사의 문답이 나옵니다.
"스님도 도를 닦으십니까?"
"그렇다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네."
"그건 누구나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네. 세상 사람들은 밥 먹을 때 온갖 잡생각을 하고, 잠잘 때 갖은 걱정에 시달리지 않는가.“
사과 하나를 먹더라도 세상 근심과 원망을 내려놓고 사과의 향과 맛을 온전히 음미할 때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신앙의 가치관에 온전히 몰입할 때, 세상의 번잡한 일들은 부수적인 것이 되고 참된 평안이 찾아옵니다.
2. 문제의 단순화
디모데후서 2장 14절은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고 경고합니다. 교회 안에서 다투어 얻을 유익은 전혀 없습니다.
사회학자 윌리엄 섬너(William Sumner)의 개념을 신앙적으로 적용해 보면 규범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