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신기하고도 친근한 옛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또 다른 이야기의 갈래
곰과 사람을 지키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웅녀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곰의 딸 이야기는 어떨까? 곰을 닮은 맑은 눈과 냄새 잘 맡는 코, 나뿐 아니라 남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마음을 가진 곰의 딸이 있었다면? 전쟁터에 나아가 온갖 무기를 먹어치운 ‘불가사리’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있어도, 전쟁이 끝난 뒤 그 불가사리가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곰의 딸, 달이』는 독자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옛이야기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그 속에 있는 인물을 이야기 밖으로 불러낸다. 옛이야기 속 평면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대상으로 다시 만난 옛이야기 속 인물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 줄까?
누구든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 속에 깊숙이 빠져들게 될 텐데, 옛이야기의 독특한 분위기가 주는 묘한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 특유의 톡톡 튀는 입말체로 빚어낸 힘 있는 문장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깃거리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는 귀한 생각을 담은 것이어서, 아이들이 읽어도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얻는 바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이야기에 담긴 생각을 놓고 토론해 본다면 더욱 좋겠지요. -서정오(작품 해설 중에서)
이 책은 2009년에 출간된 『불가사리를 기억해』를 제목을 바꾸어 다시 펴낸 책입니다.
목차
글쓴이의 말
곰의 딸, 달이
산삼이 천 년을 묵으면
우리 누이 여우 누이
불가사리를 기억해
달래 달래 진달래
책 속 책, 빗살에 햇살
해설
저자 소개
글: 유영소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겨울 해바라기』로 마해송문학상을, 『꼬부랑 할머니는 어디 갔을까?』로 정채봉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쓴 책으로는 『네가 오니 좋구나!』 『불가사리를 기억해』 『단짝이 아니어도 좋아』 『옹고집과 또 옹고집과 옹진이』 『알파벳 벌레가 스멀스멀』 등이 있습니다.
그림: 홍선주
어린 시절 책을 펼치면 그림부터 뒤적이며 보다가 책에 그림 그리는 작가가 되었어요. 그동안 동화 『무단 도움 연구소』 『초정리 편지』 『흰산 도로랑』 『흑룡을 물리친 백두공주와 백 장수』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 고전소설 『박씨 부인전』, 그림책 『임금님의 집 창덕궁』 『소원을 그리는 아이』 등에 그림을 그렸고, 그림책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옷』 『모두 모두 안녕하세요!』 등을 쓰고 그렸어요.
출판사 리뷰
새롭게 읽고, 다시 쓰는 옛이야기
「여우 누이」의 누이는 왜 집안을 망하게 했을까? 「쇠를 먹는 불가사리」에서 불가사리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백두산 메산이 전설’의 천년 묵은 산삼 메산이는 어떻게 알아볼까? 작가 유영소는 이런 점들에 의문 부호를 붙여 보았다. 옛이야기를 꾸준히 공부하면서 현대를 사는 작가로서 옛이야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왔다. 동화집 『곰의 딸, 달이』는 그런 작가의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다. 옛이야기는 수천 년에 걸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또 글로 이어져 왔다. 누가, 언제,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옛이야기도 그렇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유영소 작가는 옛이야기에서 단순한 괴물로, 재치 있는 캐릭터로, 의지를 가진 인물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되 조금은 납작해져 있는 인물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옛이야기 속 세계를 여성의 눈으로, 또 약자의 눈으로, 지금 우리 독자의 눈으로 새롭게 보았다.
『곰의 딸, 달이』는 2009년에 출간한 동화집 『불가사리를 기억해』를, 표제작을 바꾸어 새롭게 펴낸 책이다. 초판본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흥미롭게 여길 만한 이야기를 표제작으로 세웠다면, 2024년 개정판은 어린이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은 인물을 맨 앞에 내세웠다. 표제작 「곰의 딸, 달이」는 ‘단군 신화’ 속 웅녀 이야기에다 아버지를 찾아 떠난 ‘지혜 있는 아이’(『한국구비문학대계4-2권』 148쪽)를 접목시킨 이야기다.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딸에서 한 걸음 나아간 ‘달이’는 자신의 뿌리를 직접 찾아 나선 강단 있는 어린이다.
여우 누이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면?
「불가사리를 기억해」는 원전에 없는 불가사리의 감정과 느낌에 충실하게 서술한 작품이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원전을 먼저 알고 넘어가자면, 원전 「쇠를 먹는 불가사리」는 아주머니가 밥풀로 만든 불가사리가 온갖 쇠를 다 먹어치워 전쟁을 끝내게 해 준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불가사리의 기분은 어땠을까? 작가는 불가사리의 심정을 사려 깊게 헤아리며 이야기를 다시 썼다. 불가사리는 자신을 만들어 준 아주머니의 부탁에 전쟁터로 나섰건만, 전쟁이 끝나도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 사람들은 불가사리를 놓아 주지 않는다. 임금은 불가사리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공격할 계획까지 세운다. 사람들은 쇠를 먹는 불가사리를 괴물이라 부르지만, 불가사리에게 임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악취 나는 쇳덩어리일 뿐이다. 그래서 임금을 해치우고 그리운 아주머니를 찾아간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그사이 불가사리를 까맣게 잊고 잘 살고 있었다. 불가사리가 풀려났다는 소식에 집 안의 엽전을 숨기기에 바쁜 아주머니 모습에 절망한 불가사리는 영영 멀리 떠나고 만다. 하지만 유영소 작가는 아주머니의 자식인 차돌이를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보여 준다. 차돌이는 용서를 구하기 위해 불가사리를 찾아다니고, 어른이 된 다음에는 기와장이가 되어 기왓장에 불가사리를 새기며 그 존재를 영원히 기억하려 애쓴다.
「우리 누이 여우 누이」는 ‘왜 여우는 늘 못된 역할만 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여우는 그냥 여우일 뿐인데. 여우 누이에게도 뭔가 피치 못할 사연이 있지 않을까?
평안한 집안에서 갑자기 소가 죽어 나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까지는 원전과 같다. 세 아들이 범인을 잡으려 애쓰는데, 정작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입을 다물도록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 털 꼬리를 가진 선비가 아버지를 찾아와 누이를 데려간다. 훗날 아버지는 ‘여우 누이’에 관한 진실을 아들들에게 털어놓는다. 젊은 시절 여우 선비에게 신세를 졌는데 여우 선비가 딸을 잠시만 맡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 막내아들는 여우 누이가 형제들에게 사랑받던 시절을 떠올린다. 오빠들이 만들어 준 팽이와 호드기를 가지고 놀던 누이를. 막내는 여우 선비가 주고 간 족자를 들여다보다 누이의 생일날에 족자 속 세상에 들어가 여우 누이와 어울려 한바탕 놀고 온다. 사실 원전의 여우 누이란 평면적인 ‘악역’이다. 작가는 그런 여우에게 사연을 부여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누이로 다시 보도록 했다.
버들잎으로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는 ‘유공엽 일화(『한국구비문학대계5-2권』 306쪽)’에 조선 후기 이원교 남매가 「소씨 명행록」을 지었다는 기록이 「임하필기」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상상하여 쓴 이야기가 「책 속 책, 빗살에 햇살」이다.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같다. 할머니 제삿날 안채에서 쌍둥이 자매가 사이좋게 이야기를 짓는다. 자매가 짓는 이야기는 어머니를 잃고 몽유병에 시달리던 영수 도령이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자, 둘도 없는 친구 현진 도령이 영수 도령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러 다닌다는 줄거리이다. 누명을 쓴 친구를 구하는 추리 과정도 그렇지만,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담긴 형식도 흥미롭다. 제삿날이면 으레 수동적인 존재로 치부되던 자매가 이야기를 짓는 능동적인 주체가 된 것이나, 현진 도령 이야기 속에서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를 예인 낭자로 그린 것은 옛이야기의 틀 안에서도 여성의 힘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여우 누이처럼 잘 아는 이야기는 비교해 보는 맛이 쏠쏠하고, 백두산 메산이 전설(「산삼이 천 년을 묵으면」)이나 충주강 달래전설(「달래 달래 진달래」)을 푼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옛이야기를 새롭게 접해 볼 기회가 된다.
익숙한 이야기와 낯선 이야기, 과거와 현재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여우 누이처럼 잘 아는 이야기는 비교해 보는 맛이 쏠쏠하고, 백두산 메산이 전설(「산삼이 천 년을 묵으면」)이나 충주강 달래전설(「달래 달래 진달래」)을 푼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옛이야기를 새롭게 접해 볼 기회다. ‘단군 신화’ 속 웅녀 이야기에다 아버지를 찾아 떠난 ‘지혜 있는 아이’(『한국구비문학대계4-2권』 148쪽)를 접목시키니, 강단 있는 여자아이 캐릭터가 새롭게 탄생한다.(「곰의 딸, 달이」)
『곰의 딸, 달이』는 옛이야기 다시쓰기와 새로쓰기의 경계에 있다.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 지금 작가가 가진 고민과 가치관을 투영했다. 옛이야기의 구수한 입말체를 제대로 살려 읽는 맛도 생생하다. 왜 익숙한 옛이야기를 새롭게 바꾸어 쓰게 되었을까? 그 답은 「책 속 책, 빗살에 햇살」에 쌍둥이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짓게 되었는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쌍둥이들은 이야기책을 아주 좋아해서 거의 만날 책을 읽었다. 하도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읽는 재미가 말하는 재미로 번졌다. 각자 어찌 읽었는지 서로 떠드는 일이 신났던 것이다. 그러다 나라면 이리 썼겠네 저리 썼겠네 하더니 드디어 직접 이야기를 짓기까지 한다. 우리 조상들이, 유영소 작가가 계속해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자기 꿈과 생각과 바람을 전하는 행동의 이유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곰의 딸, 달이』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역시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