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얼마나 알까/ “자신을 끊임없이 살펴보고 반성하라”/ 단순한 동화아닌 생생한 문명비평서
풍자는 독특하게 희극적이다.손가락질당하는 대상이 명백해 많은 독자가 풍자를 통한 비판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점,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풍자의 대상뿐 아니라 주체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관의 지평을 재조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독특한 사회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1726년 출판된 ‘걸리버 여행기’는 본래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씌인 작품이 아니다.
1688∼1689년의 혁명으로 구교와 신교간 대립과 반목이 빈번하던 그 이전의 시대보다는 영국내의 정치 사회적 현실이 비교적 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종교간의 문제가 정치적인 제반 문제로 이어지던 18세기 초,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스위프트가 통렬한 풍자로 당대의 독자들에게 말을 걸었던 작품인 것이다.
여행기 제1부는 전체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소인국인 릴리풋의 일견 정교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엄청난 부패와 부조리를 안고 있는 현실을 묘사함으로써 당대의 영국 정치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하는 부분이다.릴리풋 왕국에서 공직에 오르려면 밧줄을 묶어놓고 그 위에서 줄타기하는 실력을 보여야 한다든가,막대기 뛰어넘기나 아래로 기어가기 같은 묘기로써 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든가 하는 것은 당시 부패가 만연했던 월폴 내각에 대한 가시돋친 공격이다.
이것뿐이 아니다.굽 높은 구두를 신는 신하와 굽 낮은 구두를 신는 신하의 모습,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왕의 한쪽 발엔 굽 높은 구두가,다른 쪽 발엔 굽 낮은 구두가 신겨있어 뒤뚱거리며 걷는다.이 묘사가 수행하는 궁극적인 비판은 보수귀족층을 대표하면서 영국 국교를 신봉하는 토리당과 신흥 중산층의 부상하는 세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휘그당간의 싸움,그리고 찰스 1·2세,제임스 2세로 이어지도록 안정되지 않았던 영국의 정치현실이었다.
○외교분쟁·종교갈등 비판
브롭딩낙이라 불리는 거인국에서 마치 난쟁이가 된 듯 위축되면서 걸리버는 소인국에서 자신이 느꼈던 우월감이 순전히 몸의 크기에서 기인한 것이지를 되씹어보는 시간을 갖는다.여행기의 1·2부에서 이러한 소인국과 거인국을 등장시키면서 스위프트는 인간의 외모(키나 몸집을 포함해)와 그의 정신 혹은 영혼의 크기나 깊이가 비례한다고 믿는 걸리버의 우스운 집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너무 작아서 모든 것이 정교하게만 보이는 릴리풋 사람들의 교활함과 커다란 돋보기를 들이대고 자신의 몸을 볼 때 경험하게 될 그로테스크한 단면을 브롭딩낙 사람들의 묘사를 통해 대비시키면서 걸리버는 그간의 안일한 사고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3부는 날아다니는 섬,라퓨타에서 보낸 걸리버의 삶이다.이성(理性)을 거의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과학적 태도와 합리적 사유만을 강조하는 이 나라에서 모든 삶은 과학적인 방법을 거쳐야만 한다.걸리버는 과학과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에서 그 합리적 절차에 희생당하는 대부분 사람의 삶을 통찰할 수 있게 된다.문제는 정작 그들 자신은 이러한 자신들의 생활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영국사회에서 과학에 대한 인식이 현격히 고조되었던 시기(대략 베이컨의 저술에서 뉴턴의 죽음까지 60여년간)를 경험했던 스위프트에겐 부패한 정치적 현실이나 사소하고도 편협한 종교적 반목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과학적인 태도가 그 궁극적 대안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4부는 말들의 나라라 할 수 있는 휘님들의 왕국에서의 기록인데,어떤 의미에서 여행기의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걸리버가 이 나라에서 목격한 것은 인자하고 청결하며 합리성을 존중하는 ‘계몽된’ 말들과 치졸하고 더러우며 욕정에 사로잡힌 야후들의 모습,즉 동물과 인간의 전도된 모습이다.이 나라의 주인은 말들이며 야후,즉 인간은 이들의 노예로 천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그러나 존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들의 짐승같고 비굴한 삶을 바라보면서 경악을 느끼던 걸리버는 한편으론 이들을 경멸하면서 자신을 휘님의 일부로 간주하게 되고 동시에,아이로니컬하게도,휘님을 자신이 진정 섬길 수 있는 주인으로 여긴다.
결국 여행기의 대단원은 야후의 상태인 인간을 극도로 혐오하게 된 걸리버가 영국에 돌아와 야후(인간)가 버젓이 휘님(말들)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광적인 인간혐오자로서 가족도 이웃도 멀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는,일견 매우 비관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스위프트가 여행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다른 지평에서 바라보는 반성적 자세다.특히 좁게는 영국의 17∼18세기 정치사회적 현실을,넓게는 자신들이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던 이성적이고 계몽된 유럽인들의 문명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성만능주의 꼬집어
특히 그는 영국중산층적 가치를 갖고 있는 걸리버와 자신 사이에 간격을 설정하고,걸리버로 하여금 자신의 관점을 계속 수정하게 만든다.작가와 작중화자 사이의 이와 같은 거리를 봄으로써 독자는 단순히 하나의 관점 속에 안주하는 데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자기 자신의 위치까지도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가치관이나 역사의 흐름을 반성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걸리버 여행기’뿐만 아니라 스위프트의 다른 저작들이 갖고 있는 현대성은 그것이 당대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고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느냐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를 뒤집어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의 힘에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