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학교는 다른 곳에서 다녔지만 실로암 주교에 다녔던 아이들의 첫 세대인 남자아이,
10학년을 마치고는 주교 보조 교사로, 때론 성가대로, ㄱ회의 모든 일에 참가하며 실로암의 가족으로 살았던 친구다.
더 이상 진학도 안 하고, 할 일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하는 그에게 무언가 살길을 좀 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운전을 배우겠냐고 물으니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당시 운전학원 강습비가 2,000/, 여기 주변 사립초등학교 교사들 초임의 절반이다.
노동자들의 월수입 1/3 정도 되는데 그 돈이 없어 운전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인구 많은 여기는 인건비가 싸니까 당시 차가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운전사를 두던 때다.
그래서 운전만 할 줄 알면 자가용이든 화물차든 일할 거리는 많은데 돈이 없다고 약 2주간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그 아이의 문제만 아니라 어찌어찌 하면 그 돈을 마련할 수는 있지만 살아갈 대책도 없는데도 장래 대비나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이 없는 여기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의 생각이고 삶이다.
결국 그 돈을 주어 운전학원에 보냈다.
면허를 따면 내 차를 운전하라는 당근과 함께...
그렇지 않으면 기술이 없이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하며 사회 밑바닥에서 고달프게 일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면허 필기시험이 따로 없고 단지 교통 신호등이나 안내판 몇 개만 묻고 거리를 주행하는 것이라 대부분 통과하는 쉬운 시험이다.
몇일 후에 면허를 땄다고 좋아하는 그 녀석을 운전사로 고용했다.
첫 월급을 우리 교사 초임 수준으로 정하고...
생애 처음으로 월급을 받게 된 녀석이 너무 기분이 좋은지 감사를 연발한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운전한다고 생각했는지 차를 보자마자 운전석에 앉는다.
면허를 따고 나서는 차만 보면 운전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차의 뒷문이 열렸는데도 출발하고, 시동도 안 걸렸는데 출발하려고 하고...
아직 타이어도 갈지 못하고 휴즈 박스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지만 의욕은 대단한 녀석이다.
그 상태에서 운전대를 맡겼다, 몇 일간은 옆에 타서 가르쳐 주면서...
1980년 면허이니 한국에서 14년 운전했고 우측 핸들인 인도에서도 그때 이미 10년 정도 운전을 해서 사실 필요하지 않은 운전사를 그렇게 채용했는데 젊은 친구 앞길 열어준다는 생각에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던 때다.
그리고 2년간 경험을 쌓게 하고는 제대로 운전을 하는 곳에 보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다른 곳에 가서 운전을 하다가는 오래 정착하지 못한다.
아마 차주의 등쌀에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
운전사로 갔는데 운전만 아니라 빨래를 해라, 물건을 옮겨라, 청소해라... 고 해서.
고용주는 근무시간에 수하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든지 시키려고 하는 게 당연한데 여기는 계급 사회이다.
여기는 식당에 가면 음식 나르는 직원은 식탁에 행주질을 하거나 빈 그릇을 치우지 않는다.
역시 식탁을 청소하는 직원은 음식 주문을 받지도 않고 나르지도 않고...
우리가 보기에는 그게 그건데 모두 역할이 나눠져 있고 또 금지된 일이 있어 불러도 쳐다만 보지 자기 일이 아니면 상관도 안 한다.
계급과 역할에 따라 누구의 일인지 분명히 분류되고 차별된 곳인데 운전 외에 다른 일들을 시키니 적응이 안 된 모양이다.
그래서 잠시 이곳에서, 저곳에서 일을 하는 신세가 됐다.
나와 같이 일할 때 그 친구는 모든 것을 했었는데... 시키지 않은 일도 했었는데...
첫 고용주가 뭘 잘못 가르쳤을까?
지금?
일보다는 술과 더 친하다는 소문이 돈다, ㄱ회도 잘 오지도 않고...
같은 처지에서 똑같이 시작한 그의 동네 친구는 지금 실로암의 집사가 되어 있는데...
250104 글에서 후미에 언급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