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그리고 나
그해 화창한 여름날을 잊지 못한다. 서초동 단독주택의 지하 연습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피에스타’라는 대학 댄스 동아리 모임이었다. ‘댄스스포츠’를 전공한 교수님은 자택 개인연습실에서 학생들에게 ‘콘티넨탈 탱고’를 가르쳤다. 신세계였다. 그렇게 첫날 반팔,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춤을 따라했다. 1998년 정치학과에 입학해 3학년까지 모임이라고는 학회 활동이 전부였다. 해방전후사, 마르크스 자본론, 노동 해방, 광주 민주화 항쟁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엄숙하고 때로 따분한 그런 모임이었다. 그런데 그날의 탱고는 인생의 반전이었다. 인생이 이렇게 신나고 설렐 수 있구나.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귓가엔 ‘포르 우나 카베자(Por Una Cabeza)’가 맴돌았다.
아르헨티나 탱고를 시작한 건 그로부터 일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폭스트롯, 자이브, 살사를 배웠다. 역삼동에서 스윙댄스를 배우기도 했다. 우연히 피아졸라를 듣게 되었다. 땅고 아빠씨오나도(Tango Apasionado), 리베르땅고(Libertango), 오블리비온(Oblibion), 그리고 푸가타(fugata). 음악 사이에 짙게 깔린 외로움과 슬픔에 황홀함이 스며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한 20대 시절 피아졸라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다. 피아졸라는 줄리어드에서 클래식을 배웠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카바레에서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다고 한다. 카바레를 가본 적은 없지만, 피아졸라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떤 곳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음악에 끌려 ‘솔땅’을 찾았다. 그때 품앗이 포동이형은 배가 나왔는데, 배로 텐션을 준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해서 놀랐다. 난 그때 배가 나오지 않아서 배울 수 없었다. 싱킹걸 누나는 강습 전에 항상 발레를 가르쳐주던 예쁜 품앗이었다. 10주 정도 강습을 마친 후, 졸업 공연으로 ‘이수일과 심순애’를 준비했다. 맞다. 김중배가 있어서, 땅게라 한 명에 땅게로 두 명이 함께 하는, 땅게로 입장에선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공연이었다. 어쨌든 관객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뮤지컬처럼 구성했기 때문이다. 연기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춤이 부족했다며 싱킹걸 누나한테 한소릴 들었다. 심순애 역할을 했던 동기는 졸지에 ‘나쁜 여자’가 되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어쨌든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그날 우리 세명은 최고의 주인공이었다.
군 입대를 반년 정도 앞두고 결심했다. 매일 춤을 추자. 그래서 탱고 강습, 밀롱가를 찾아다녔다. 그때 동갑이었던 첫사랑을 만났다. 역삼동의 어느 바였다. 매주 만나서 같이 춤을 추었고, 연락처를 주고 받고, 그리고 매일 만났다. 그녀의 집 앞에서 정말 우연히 입맞춤을 했다. 그날 밤 달빛이 뺨에 닿았다. 사랑에 눈을 뜨자 세상의 아름다움이 따뜻한 바람처럼 스쳤다. 탱고와는 멀어졌다. 외롭지 않았으니까.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아도 되었다. 이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었고, 기도했다. 하지만 헤어짐은 숙명처럼 다가왔다. 어느 날부터 서로에게 실망하고, 지치기 시작했다. 군 훈련소에 입대하기 전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헤어진 후 군대에서 1년 동안 매일 그녀와 함께 있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잊혀 지기 시작했다. 첫사랑의 아픔도 영원하진 않았다.
20대 후반 다른 사람들처럼 회사에 취직했다. 이제 더 이상 탱고를 추지 않았다. 밀롱가 대신 회식 2차 노래방에서 춤을 췄다. 댄스도 회사에선 사역이었다. 잘 노는 놈이 일도 잘한다는 부장님 말씀에 혼신의 막춤을 시전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 퇴근했다. 다시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헤어지면 또다른 사랑이 나타났다. 그리고 아주 가끔 밀롱가를 찾곤 했지만, 탱고는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때 나는 외롭지 않았고, 더 이상 춤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직에서 성과를 내고 인정도 받았다. 사회에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런데 그땐 몰랐다. 내 마음 속에선 여러 상처들이 훈장처럼 새겨졌다.
마흔이 넘어 다시 탱고를 찾았다. 3년 전 그리고 지금.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묻곤 한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외로움일 수도, 혹은 지금 삶에 더해진 아픈 흔적들일 수도 있다. 20년 전 함께 탱고 강습을 받았던 한 누나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춤을 출 때엔 5분 동안 마음껏 사랑을 하지. 근데 그 사랑엔 아픔이 없어서 좋아.” 사연이 있었던 누나였던 것 같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배경으로 아휘(양조위 분)과 보영(장국영)의 헤어짐과 만남, 그리고 다시 헤어짐을 보여준다. 영화 ‘라스트 탱고(Last Tango)’에서도 실존하는 전설적인 탱고 댄서인 후안 카를로스와 마리아 니브리고의 만남, 헤어짐, 그리고 재회를 담았다. 후안과 마리아는 한때 연인이기도 했지만, 사랑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후안과 마리아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루나 공원에서 마지막 탱고를 추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결국 그들이 완성한 것은 제목처럼 인생에서 마지막 한 곡의 춤이었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찰나의 사랑을 하면서도, 영원한 한 곡의 춤을 완성하고 싶어 탱고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2021년 4월 14일
준
제롬 동기님 반갑습니다! 즐거운 추억 쌓아갑시다^^
@준 (114랑해) 댓글 주셔서 다시 자소서 읽어봤어요. 사랑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 늘 땅고가 있네요 웃지못할 기억들도 그게 사랑이었으니 아름답다 생각됩니다. 자주뵐께욤~~^^
와.멋진 자소서네요! 즐땅해요~
연풍 동기님 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한편의 수필같은 자소서 잘읽었습니다
탱고에 대해서 많을걸생각하게되네요
동기가 되어 반가워요
우와한 클라라님과 동기여서 영광입니다!
준님, 우연히 선배님의 자소서를 읽게 되었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것 같았어요..탱고와의 사랑, 헤어짐 그리고 재회..어쩌면 동시대를 사는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겪었을 법한 자신의 이야기를 잘 표현해주셨네요...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저희 6/10 파티에 오시면 뵐께요~ 반갑습니다..그리고 잘 부탁 드려요..
123기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앙탈 동기님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