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관광명소탐방객즉석시낭송
제1회 해변시낭송학교
2023.8.5(토)~6(일)
부산 해운대 토요코인호텔
교육산업신문 부산시낭송협회 공동주최
문학채널 시시콜콜 주관
바다가 내게 / 문병란
내 생의 고독한 정오에
세 번째의 절망을 만났을 때
나는 남몰래 바닷가에 갔다.
아무도 없는 겨울의 빈 바닷가
머리 풀고 흐느껴 우는
안타까운 파도의 울음소리
인간은 왜 비루하고 외로운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울려야 하고
마침내 못 다 채운 가슴을 안고
우리는 왜 서로 헤어져야 하는가.
작은 몸뚱이 하나 감출 수 없는
어느 절벽 끝에 서면
인간은 외로운 고아,
바다는 모로 누워
잠들지 못하는 가슴을 안고 한밤내 운다.
너를 울린 곡절도, 사랑의 업보도
한데 섞어 눈물 지으면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허허 몰아쳐 웃어버리는 바다
사랑은 고도에 깜박이는 등불로
조용히 흔들리다
조개껍질 속에 고이는
한 줌 노을 같은 종언인가
몸뚱이보다 무거운 절망을 안고
어느 절벽 끝에 서면
내 가슴벽에 몰아와
허옇게 부서져 가는 파도소리...
사랑하라 사랑하라
아직은 더욱 뜨겁게 포옹하라
바다는 내게 속삭이며
마지막 구석까지 채우고 싶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무덤이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무덤이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를 보고 있는 고립
성산포에서는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 이외의 주인을 모르겠다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두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바다여 당신은 / 이해인
내가 목놓아 울고 싶은 건
가슴을 뒤흔들고 가버린
거센 파도 때문이 아니다
한 밤을 보채고도 끊이지 않는
목쉰 바람소리 탓도 아니다
스스로의 어둠을 울다
빛을 잃어버린
사랑의 어둠
죄스럽게 비좁은 나의 가슴을
커다란 웃음으로 용서하는 바다여
저 안개 덮인 산에서 어둠을 걷고
오늘도 나에게 노래를 다오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투른 이방인
언젠가는 모두가 쓸쓸히 부서져 갈
한 잎 외로운 혼임을
바다여 당신은 알고 있는가
영원한 메아리처럼 맑은 여운
어느 피안 끝에선가
종이 울고 있다
어제와 오늘 사이를 가로 누워
한 번도 말이 없는 묵묵한 바다여
잊어서는 아니될
하나의 노래를 내게 다오
당신의 넓은 길로 걸어가면
나는 이미 슬픔을 잊은
행복한 작은 배
이글거리는 태양을
화산 같은 파도를
기다리는 내 가슴에
불 지르는 바다여
폭풍을 뚫고 가게 해 다오
돛폭이 찢기워도 떠나가게 해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