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냉혹한 세계의 법칙은 사각의 링 주변에서도 다를 바 없다.‘ 링 위의 종합예술’을 펼치기 위해 격투와도 같은 역정을 겪어 온 양명규가 자신의 대치동 체육 관에서 사진기를 노려보고 있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
"태국 선수들 훈련할 땐방망이로 매일 50대씩 다리 맞아"
신은경·신동엽 매니저하다 안정환·우지원 매니지먼트
K-1 한국 파트너 선정땐조폭들 "손을 떼라" 협박
'인간은 한 마리의 벌레도 만들지 못하면서 한 다스나 되는 신(神)들을 만들었다'고 했다. 몽테뉴가 수상록(隨想錄)에 쓴 글이 양명규(梁明奎·43)의 삶과 비슷하다. 그는 평점 1.5점, 대학 졸업장을 10학기 만에 받았지만 연세대 응원단장으로 2만 명을 지휘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연예인 매니저가 됐다. 탤런트 신은경, 우희진과 개그맨 신동엽을 관리한 것이다. 한참 뜨던 이 직업을 그는 1년 만에 관뒀다. "따분하다"는 이유였다. 얼마 뒤 그는 안정환(축구) 우지원(농구)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두 사람은 한국 스포츠의 간판스타가 됐다.
단구(短軀)에 체중이 50㎏도 안 돼 보이는 이 사나이의 욕심은 그 뒤 끝없이 뻗어나갔다. 조폭(組暴)의 협박을 무릅쓰고 '파이팅 머신'들의 세계, K-1 한국 프로모터가 돼 최용수, 지인진 같은 프로복싱 전(前) 세계챔피언들과 임치빈, 이수환에 미녀 투사 임수정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강남 대치동 체육관 '칸짐'에 들어서자 그가 링 위에 있었다. '주먹깨나 쓸 것 같은 눈매'라고 잽을 던지니 카운터가 날아왔다. "3년째 무에타이를 하고 있습니다. 칸짐은 칭기즈칸의 칸(Khan), 짐(Gym)은 체육관이란 뜻이죠." 그러면서 그는 야성(野性)의 세계를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계기로 K-1 한국 공식 프로모터가 된 겁니까?
"제가 원래 안정환과 8년, 우지원과 10년을 함께 일했지요. 그들과 헤어진 뒤 다른 일을 모색하다 K-1과 인연이 닿게 됐습니다."
―한 분야에 싫증을 빨리 느낍니까.
"스포츠를 예로 들어볼까요. 영원히 인기 있는 종목은 없다고 생각해요. 프로레슬링은 김일, 프로복싱은 장정구, 프로씨름도 이만기가 있을 때 최고였지요. 농구는 서장훈, 문경은, 현주엽 같은 선수들이 뛰던 시절 연·고대(延·高大)가 매력적이었잖아요. 안정환의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이탈리아를 7~8차례 다녀왔는데 카 레이싱(Car Racing)에 관심을 둔 적도 있었어요."
―왜 카 레이싱을 포기했나요.
"우리 실정과 맞지 않았어요. 2004년 격투기의 일종인 '프라이드'와 인연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것도 우리 정서와 안 맞는 것 같았어요. 한국인들은 누워서 싸우는 데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다음이 K-1이었습니까.
"2004년 말 일본 측 K-1 관계자들이 한국측 파트너를 찾기 위해 서울에 왔어요. 5~6개 업체가 경쟁했습니다. 그중에는 조폭도 있었어요. 제게 '손을 떼라'고 협박했습니다. 저는 K-1에는 문외한(門外漢)이었지만 축구, 농구 쪽 매니지먼트 경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프로씨름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최홍만도 K-1에 진출했지요.
"최홍만은 본인이 직접 K-1과 접촉한 것이었고요, 저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헤비급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 문대성을 끌어오지 못했습니까.
"언론에는 문대성 쪽에서 수십억을 요구했다고 썼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계약금과 파이트머니를 합쳐 10억원이 제시한 상한액이었습니다만 문대성은 당시 교수직과 IOC 선수위원 같은 데 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어요."
―태권도가 K-1에서 통한다고 봅니까.
"태권도의 치명적 약점이 너무 착한 스포츠라는 거예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얼굴을 못 때립니다. 싸움닭 기질이 부족한 거죠."
―처음 스카우트한 선수가 프로복싱 전 세계챔피언 최용수였지요. 그와는 무슨 인연이 있었습니까.
"TV에서 우연히 최용수가 버스 운전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처음에 전화하니 딱 끊더군요. 집 앞까지 찾아가 '맥스(미들급)의 간판스타로 당신이 제격이다'라고 설득했지만 몇 차례나 거절했습니다. 복서의 자존심 때문이었죠. 한 달 동안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았죠."
―그때도 관건이 돈이었나요?
"언론에서는 3년에 10억을 주기로 했다고 썼는데 말도 안 되는 금액입니다. 계약금 조금에 월급 정도입니다."
―은퇴한 복서가 제 기량을 찾으려면 특별훈련이 필요하겠지요.
"일단 맞아봐야 해요. 지금도 K-1, 특히 태국 선수들은 야구 방망이 같은 것으로 다리를 많이 맞아요. 보통 하루 50대씩은 맞지요. 최용수도 처음에는 굉장히 아파했지요. 그런데 복서가 다르긴 다르더군요. 상대방의 다리 공격을 피하기 위한 변칙 스텝을 개발해내는 거예요."
―지금 같이 있는 선수 중에 간판은 누구입니까.
"임치빈(31)이지요. 70㎏급의 입식 타격기 최강자입니다. 이수환은 연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중인데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 상대가 없지만 외국에만 나가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더군요."
치고받고, 피 흘리는 세계지만 K-1의 세계는 정교한 기계와 같다. 선수 스카우트, 훈련뿐 아니라 대진표를 짜고 흥행을 해야 한다. 선수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음악과 의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한마디로 링 위의 종합예술인 셈이다.
그는 '미녀 투사'로 알려진 임수정을 데려온 게 "일본에 없는 것을 한번 해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여자 K-1선수가 없잖아요. 제가 임수정에게 마지막까지 아껴놓았던 음악까지 줬어요. 얼마 전에 데뷔전을 치렀는데 부담이 컸는지 연장전 끝에 이겼습니다."
―마지막까지 아꼈던 음악이라뇨?
"K-1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입장할 때 음악이 나오지요? 저는 제가 관리하는 선수들의 음악도 모두 선정을 합니다. 제가 가장 아끼던 게 홍콩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의 테마였어요. 그걸 준 거죠."
―최용수는 어떤 음악을 썼나요.
"최용수는 영화 '록키'에 나오는 'Going the distance'라고 애절한 음악입니다. 2007년 다이나마이트 대회에서 최용수가 일본의 마사토에게 패했는데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무슨 음악이냐'는 게 더 큰 관심을 끌기도 했어요."
―다른 선수들은요.
"지인진은 경쾌한 음악을 씁니다. 박용수는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 나오는 음악을 썼습니다. 임치빈은 영화 '300'과 '미션 임파서블2'를 섞어서 만들었어요. 이수환은 작년 에 히트 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사용한 음악을 썼습니다. 드라마보다 제가 더 먼저 사용했으니 원조라고 할 수 있죠."
―왜 음악이 중요합니까.
"입장할 때, 경기가 중단됐을 때,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에, 판정을 내리기 전에 아무 장치가 없다면 팬들에 대한 서비스가 아니지요."
―임수정은 K-1에 오라고 하니 그냥 오던가요?
"그 전에 도움을 조금 줬죠. 출전 기회를 만들어줬고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기에 성형외과도 소개시켜줬습니다. 코뼈 부러졌을 때 치료도 시켜주고요. 협찬도 해주고 스폰서도 붙여주고, 뭐 그런 겁니다."
―K-1에 격투기 선수들이 많은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씨름 선수들이 많은가요?
"김영현은 씨름에서 명성을 떨쳤는데 K-1에 오니 사정이 달라지더군요. 경기 전 굉장히 긴장해요. 맥박을 재보면 정상 때보다 훨씬 높습니다. 하드웨어(체격)는 좋은데 잘 못 살리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말 한마디로 가라앉은 적이 있었습니다. K-1도 그런가요? 예를 들어 밥 샙 같은 선수를 보면 그런 생각이 가끔 듭니다만.
"공식 프로모터는 대진표를 짤 권한이 있어요. 대진표를 짜다 보면 누가 이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요. 쇼는 아닙니다. 밥 샙 같은 경우는 팬들에게 어필하는 측면 때문에 살아남은 거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강한 격투기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무에타이가 가장 세지만 2가지 면에서 경원(敬遠)시 됩니다. 워낙 세다 보니 자국 선수를 보호하려는 측면이 강하고요, 무에타이가 원래 수비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K-1 룰에 가장 적합한 격투기는 가라테라는 생각도 듭니다."
―현재의 선수 중에서 최강은 누구라고 봅니까? 저는 레미 본야스키 같은데.
"얼마 전에 바다하리에게 졌지만 세미 슐츠가 방심만 안 하면 제일 세다고 봐야지요."
―언젠가 K-1도 그만둘 생각입니까?
"격투기의 환경이 너무 열악합니다. 태국의 무에타이 코치를 한명 쓰려 해도 비자가 안 나오는 정도입니다. 경기 때 보험도 안 돼요. 이런 걸 방치하고 떠날 수는 없지요. 조금은 더 기반을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연세대 체육교육과 출신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니 비현실적인 게 많았다. 가르치던 후배의 아버지가 해군 장성이라는 걸 믿고 덜렁 해군에 지원했다가 '덕' 한번 못보고 3년 4개월 동안 복무한 것이나 언론사 시험 전날 밤 새워 술 마시다 결시(缺試)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요즘 같으면 빈약하기 그지없는 '스펙(Spec)'에 황당한 일화로 점철됐지만 그는 지금까지 취직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응원단장 출신 특유의 근성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그를 처음 받아들인 직장이 디지털미디어라는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연예인 매니저를 했지요. 누구를 맡았습니까.
"여자 탤런트로는 신은경, 우희진이 있었고 개그맨으로는 신동엽이 있었습니다. 남자 탤런트로는 이효정씨가 있었고요."
―그들이 까칠하던가요?
"그건 아니고요. 연예인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는 대개 본인이 연예인 지망생입니다. 연기가 안 되든가 외모가 안 될 때 매니저가 된다더군요. 당시 회사 사장이 매니저를 하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했어요. 저는 아무리 해도 대리만족이 안 생겼어요. 촬영장에 가는 것도, 방송국에 가는 것도 싫었어요."
―그래서요.
"당시 우지원이 연대 4학년이었는데 어머니를 찾아가 '우지원의 매니저를 해보겠다'고 했어요. 반신반의하시더군요. 계약서 같은 건 쓰지도 않고 시작한 거지요."
―대박을 쳤나요?
"예전에 문 기자님 어릴 때 유명 배우 책받침이나 그런 것 산 적 없습니까?"
―이소룡(李小龍) 팬이었지요.
"바로 그거예요. 책받침, 스티커, 사진, 엽서처럼 초상권을 이용한 제품을 만드니 상상한 것 이상으로 대박이 났어요. 지금의 배용준보다 훨씬 더 팔렸을 겁니다. 우지원이 운동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과 사복(私服)입고 찍은 사진 중에 어느 게 더 인기 있을 것 같아요?"
―사복 입은 거겠군요.
"정장, 턱시도, 카 레이싱 복, 이런 거에 아이들이 미치는 거예요. 당시에 700 유료전화 서비스도 했어요. 코 묻은 돈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하기는 했지만."
―우지원이 당시 대우 소속이었는데 회사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계속 양보하던가요.
"팀에서 제 존재를 인정해줬습니다. 1997년에 박찬호, 박세리가 나오면서 처음 에이전트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했어요."
―안정환과는 어떻게 연결이 된 겁니까.
"어느 날 앙드레 김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오늘 스포츠 뉴스 봤느냐'는 거예요. '안정환이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선수를 잡으면 대박이 날 거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달려갔나요?
"다음날 안정환이 전지 훈련하는 경기도 용인으로 갔지요. 당시 안정환의 소속팀이었던 부산대우에 안종복 단장이 계셨는데 '매니지먼트를 해보고 싶다'고 하니 '이민성이냐'고 해요. 안정환이라고 하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해보라'고 하더군요."
―안정환은 어떻게 띄운 겁니까.
"당시 '야다'라는 그룹이 뮤직 비디오를 찍는 데 출연시켰지요. 호주에서 촬영했어요."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어릴 때 헤어진 형제가 형사와 암흑가의 거물이 돼 재회한다는 내용입니다. 형사 역은 탤런트 정찬이 맡았고 안정환은 암흑가의 거물로 나왔지요. 대역을 쓰긴 했지만 여자를 구하는 애절한 장면도 있었어요. 안정환을 광고 모델로 쓰고 싶어한 기업들이 연기력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을 시점이었어요. 그런데 화면을 잘 받고 연기도 제법 했어요. 그룹 '야다'가 안정환 경기 있을 때마다 공연해주고 뮤직 비디오를 틀어줬어요. 결정타가 됐어요."
―안정환은 매니지먼트를 한다고 하니 뭐라고 하던가요.
"처음에는 '왜 나를?'하는 표정이었어요. 제가 그랬어요. '나와 같이 일하면 10억원은 벌 것'이라고요."
―광고로 승부의 끝을 본 겁니까.
"1998년 축구 올스타전은 안정환, 고종수, 이동국 세명을 위한 경기였어요. 제가 앙드레 김에게 부탁해 안정환의 머리띠를 만들었어요. 본인은 땀이 나면 머리띠가 흘러내린다고 불평했지만 다 전략이었어요. 안정환을 럭셔리하게 만드는 거였거든요. 고종수, 이동국이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면 안정환은 '김혜수 쇼'에 출연시켰지요. 고종수, 이동국이 하이틴 잡지에 나오면 안정환은 엘르나 마리 끌레르 같은 잡지에 나가게 했죠."
양명규는 부산에서 세 아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와 관계가 깊었다. 1989년 타계한 그의 어머니(김정순)는 개인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달리 프로복싱 후원회장을 지냈으며 부산의 문화예술계에 통 큰 여걸로 통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그의 집에 세계챔피언 김상현 같은 복서와 이영무(축구) 같은 스타들이 드나들었다. 그는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요즘 K-1에 푹 빠진 아들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K-1 구경을 몇 번 시켜줬더니 각종 기술을 전부 친구들에게 쓰고 있지 뭐예요."
―앙드레 김과는 또 어떤 인연으로 만난 겁니까.
"제가 응원단장일 때 연대 농구부에 스타가 많았어요. 우지원, 김훈, 석주일이 같은 날 공익근무 요원으로 들어가는데 팬 클럽 행사를 했어요. 그때 앙드레 김에게 의상 협찬을 받았지요. 사회를 윤정수가 맡았고 박진영, 류시원, 그룹 '쿨'이 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앙드레 김이 대뜸 찾아갔는데도 의상협찬을 해주던가요?
"공생하는 거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운동선수 의상을 해 준 적이 없었는데 그분은 저를 통해 스포츠 스타를 공급받고 저는 협찬을 받는 식이었습니다. 처음 앙드레 김 패션쇼에 선 선수가 우지원과 핸드볼의 최현호였어요. 두 번째가 안정환과 이승엽이었고요"
―지금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나요.
"조총련 소속의 축구선수인 정대세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다른 매니저에게 뺏겼어요."
―언제까지 프로모터나 매니지먼트를 할 생각입니까.
"스포츠 그룹 같은 걸 만들고 싶어요. 안정환, 김연아 같은 대형 선수들은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재목들이지요. 예를 들면 게이머 임요환, 인라인 스케이트를 하는 궉채이 같은 선수를 모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연대 응원단장들끼리는 지금도 친목 모임을 가지나요?
"그럼요, '독수리회'가 있고요, 고대 응원단장들 모임과도 교류를 합니다. 잘 아시는 임성훈 선배가 1973년 응원단장이었고 공성진 한나라당의원이 1974년 응원단장이었지요."
―작년에 임성훈씨가 쿵푸의 달인(達人)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이죠. 대단하세요."
―추성훈도 대단합니까?
"터프하게 보이는데 실제는 굉장히 세심해요. 자기 소지품 챙기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추성훈이 일본의 미녀 모델과 결혼한다는데 미인들이 왜 터프가이를 좋아할까요.
"생긴 건 터프가이인데 여자한테도 세심하게 해줄 걸요? 제가 작년에 6~7개월 같이 일을 해봐서 알거든요."
사진촬영을 하려 할 때 링 위에 예쁘장한 20대 초반의 남자가 무에타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동행한 채승우 기자가 구도를 잡는데 그의 매니저인 듯한 사람이 나서 "사진 찍으면 곤란하다"고 했다. 요즘 '꽃남'으로 인기가 높다는 김범이라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가죽점퍼 차림의 양명규가 링에 올라서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3시간 반 내내 웃지 않던 그에게 '미소'를 요구하자 그는 "괜히 악덕 프로모터같이 나오는 거 아닌가요"라며 파안(破顔)했다. 그에게 이번에는 기자가 카운터를 날렸다. "그건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인데요."
[문갑식 기획취재부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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