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부부를 처음으로 만난 곳은 남인도의 '안주나 비치' 언덕이었다.
바다 방향으로 놓인 긴 벤치에서, 그들 부부는 어깨동무하듯 서로 기대어 해질녘 석양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세찬 바람이 한차례 불면서 여인의 밀짚모자가 가볍게 날아갔다.
남자가 일어나 모자를 주우러 갈 때 머리칼 한 올 없는 여인은 담담히,
그러나 엷은 미소로 남자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넝마 차림으로 인도를 떠돌다 '안주나 비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가량 머물고 있었다.
해변 언덕의 야자수 그늘에 앉아 좌선에 몰입하다, 다리운동을 위해 가볍게 거닐고 있을 때
그들 부부의 정겨운 보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대화 한마디 나눈 적은 없지만, 말기암 치료 중인 여인이 남편과 함께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 여행을 인도의 해변에서 보내고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죽음을 앞둔 그들의 다가올 이별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내 처지는 그들에게 동정을 보낼만큼 여유롭지 못할 때이다.
말라리아에 쓰러져 죽음의 터널에서 겨우 벗어난 직후였고,
환장하고 미칠 만큼 한국의 모든 것이 그리운 향수병에 거식증세까지 달고 다닐 때였기 때문이다.
그들을 다시 만난 곳은 '바라나시'였다.
천민의 살이 기름불에 타는 강변의 화장터에서다.
그들 부부는 인도 고유의상을 입고 있었고 여인은 더욱 깡말라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남자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나마스떼"하고 제법 큰소리로 인사했다.
'안주나 비치' 언덕에서 나는 반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는 동양 히피족 수행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안주나 비치'에서의 며칠 만남에는 눈인사 정도를 나눈 침묵의 인연인데,
그들 부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머물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에는 어느 방에나 빈대 떼가 득실거려,
언덕의 야자수 그늘을 움직이는 수행처로 삼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손짓과 눈빛으로 나를 이끌어 외국인이 즐겨 찾는 강변의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말 없는 대화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 식당에는 나의 단골 메뉴인 코리안 누들(신라면)은 아예 그림자도 찾을 수 없어 팬케이크를 손짓으로 주문했다.
그들이 따라주는 맥주도 반 컵쯤 마셨다.
미소로 모든 언어를 대신하고 눈인사로 작별을 나눌 무렵,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국인 부부가 관세음보살이 되어 나타났다.
여법히 차려입은 승복 차림이 아닌 넝마에 가까웠으나,
삭발한 머리에 짙은 눈썹으로 보아 향봉 스님일 수 있겠다며
그들 중 한 사람이 내게 한국말로 확인한 후 합석하게 된 것이다.
그들 한국인 부부는 교사였고 겨울 방학기간 동안 인도에서 자유여행 중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있던 한 거사는 어찌나 대화를 잘 풀어가는지,
외국인 부부에 대한 나의 궁금증이 일시에 풀리고 있었다.
그들은 예상대로 영국인이었다.
아내가 위암 말기로 희망이 없자, 직장에 장기 휴가를 낸 후
아내가 원하는 인도 여행을 하며 영혼의 안식처를 찾고 있었다.
'안주나 비치'의 언덕에서 바위처럼 앉아 있던 동양 히피가 승려라는 사실에
그들은 '역시나'하는 표정이었다.
묵언수행자로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뒤 얼마만큼의 세월이 지난 후 나는 티베트인이 모여 사는 '라다크' 지방의 '레'라는 도시에서,
정확히 말하면 '헤미곰파'의 천장터에서 영국인 부부 중 남자를 만나게 된다.
'헤미곰파'는 티베트 사찰인데, 그 사찰의 천장터에서 자루에 든 시체에 작두칼질을 해
독수리 먹이로 뿌려주는 일을 영국인 남자가 자청해서 하고 있었다.
아내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죽었고, 세상를 떠나기 전에 달라이 라마를 만나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이후 남편은 영국행을 접고 티베트 불교의 승려가 되었던 것이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속 깊이 피멍울로 간직한 채,
바람을 닯은 자유인이 되고 싶어 수행자의 길에 접어든 영국인은 나에게 '나마스떼'라는 말 대신 합장으로 인사했다.
티베트에는 사람이 죽으면 자루에 넣어 사찰 부근의 천장터로 오게 된다.
그 자루에 든 시체를 영국인 수행자는 작두칼로 내리쳐 독수리 밥으로 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달관한 초인의 모습이었다.
생멸의 고통에서 벗어나 적멸의 자유인으로 향해 가는 수행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작두칼로 내려치는 것은 관습과 허울을 벗어버린 진공의 묘유를 찾는 작업일 터.
머리털 한 올 없던 그의 아내가 더러는 목울음덩이가 되어 그의 시야를 흐리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날리'에서 만나 함께 간 한국인 거사가 띄엄띄엄 통역을 해줘, 영국인 수행자의 사연을 대강이라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