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만나든 그날 얼굴을 붉히면서 철없이 어쩌구 저쩌구.....♬
때는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파아란 가을 하늘에 날씨마저 화창한
어느 한가위 명절 오후 이었다.
사정상 두메산골 고향에 갈수없어 부산의 변두리 하숙집 아담한 문간방에서
뻔질나게 드나들던 직장동료는 물론 찿아오는 이 하나없이 쓸쓸히 혼자서
추석명절을 보낼수 밖에 없었는데.........
아직 초등하교 입학전인 다섯살쯤 된 정말 깜찍하고 귀여운 주인댁 막내딸이
손 잡고 끄는데로 따라 안방에 들어갔더니 명절 차례 제사를 막 끝낸 뒤였다.
크다란 두레상에는 보기에도 먹음직한 기름진 햅쌀밥에 이어 갖은 나물과
온갖 한약재등을 넣고 알맞게 잘 삶은 고기 수육에다 건어물 그리고
생선등 푸짐한 제사음식은 물론 제주(제사지낸 술)까지 차려져 있었다.
어제밤 철공소에서 밤세운 철야 야간작업으로 지칠데로 지친 몸에다
낮부터 마신 제사 술에 취해 문간방앞 통로에 기대앉아 명절 차례도
성묘도 갈 수 없었던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워 그저 무심하게 내고향
김천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딸 사형제를 둔 중년에 접어드는 여인 이었지만 빼어난 미모에다
마음씨도 무척이나 고운 주인댁 왕눈이 아줌마께서 서둘러 설겆이를
끝내는가 싶더니 이어서 새까만 치마에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블라우스
깔끔하게 차려입고 연분홍 분단장도 곱게 하시고는 나오시면서
문간방 총각을 향해
"아니 여기서 혼자 무얼해요?"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속삭이듯
적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더니 이어서
"저~기 용두산 공원에 안 가봤으면 지금 같이 가기로해요".
부산에 내려온지 여러 달 지났지만 아직 용두산 공원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매혹적인 미모의 여인 왕눈이 아줌마와 순진한 산골출신 문간방 총각
단 둘이서 갈려니까 선뜻 내키지도 않고 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아니 뭘해요 막내딸 들어오기전에 어서 같이가요"
그러시면서 살짝 홀겨 보시는 그 옥구슬같은 눈매에 놀라 그만 엉겁결에
아무런 생각없이 무작정 따라 나서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부산의 유명한 용두산 공원 이였다.
"저~기요 우리........."
"노래가사처럼 계단수가 일백구십사계단이 맞는지 함께 세어보기로 해요".
그렇게 되어 문간방 총각이 먼저 계단수를 세어가며 성큼 올라갔었다.
스물 몇 계단쯤 세며 올랐을까 순간 이상한 생각에 잠시 뒤를 힐긋 돌아본
문간방 총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계단씩 번갈아 세며 오르기로 했던 왕눈이 아줌마께서는 왠일인지
첫번째 계단에서 꿈쩍도 않고 언짢은 표정으로 멈춰 서 있는게 아닌가.
당황한 문간방 총각은 잠시 머뭇거리다 서둘러 내려가 눈치를 살폈더니
잔뜩 지푸린 얼굴로 하시는 말씀이
"세상에 어떻게 여자를 두고 남자 혼자만 먼저 올라 갈 수 있나요?"
"나는 여자 아닌가요 어이구 못살아 내가 정말 못살아........"
어휴! 아니 계단좀 먼저 올라간것 뿐인데.......
그리고 누가 여자 아니라 했으며 또한 누가 살자고 했나........
하지만 아무말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문간방 총각에게
"저기좀 봐요 눈은 뒀다 뭐 할꺼에요"
사실 남달리 큰 눈 때문 왕눈이 아줌마란 별명이 붙었듯 가족모두
눈이 큰데 식구중에서 유일하게 눈이 작은 문간방 총각에게는
단추구멍이란 별명을 붙여 가족들이 골려주기 일쑤 였었다
그 단추구멍 같이 작은 눈으로 왕눈이 아줌마 가리키는 곳을 보니
추석 차례를 끝낸 오후에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함께 나와서는
서로가 다정하게 손잡고 한 계단씩 번갈아 세어 가며 오르기도 하고
더러는 아카시아잎을 따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고 즐거운지 여기 저기서 하하..호호..헤헤..히히.....
그야말로 온통 웃음꽃이 활짝 피어 오르고 있었다.
아직은 산골티가 흐르는 그저 순진한 숙맥 문간방 총각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제는 제법 정이 들어 한집식구처럼 살아가고는 있다지만
아직은 우리사이 아무 사이도 아닌 그냥
"문간방 총각과 주인댁 아줌마 사이" 일 뿐인데........
어쩔줄 모르고 그냥 눈치만 살피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더니
"총각 자기야 그러니까 우리도 이렇게 저렇게........."
총각 자기는 무엇이며 또한 세상에 이보다 더 빠른 속성반 강좌는
일찌기 본적이 없었다.
어쩔수없이 시키는데로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게 팔장을 끼고서
우리도 남들처럼 자기 한 계단 당신 한 계단 번갈아 세어가며
마침내 용두산 일백구십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실은 누가 자기이며 또 누가 당신이 되는지도 모른체.........
유학자요 한학자이신 조부님 슬하에서 천자문을 배우면서
어린시절을 보낸데다 성격마져 내성적인 문간방 총각은
처음으로 꽃처럼 곱고 예쁜 여인과 팔장을 끼고 어깨까지 맛대며
걸어 올라 가자니
온통 가슴은 쿵닥거리며 뛰고 전신이 덜덜 떨리며
등엔 식은땀이 흐르는게 사실여간 불편한 진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향긋한 화장냄새를 곁들인 매혹적인 여자의 향기에 취해서
그랬을까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기는 했으나 이상하게도
이러는게 왠지모르게 내심 결코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원앙처럼 한쌍이 되어 한 계단씩 조심 또 조심 오르다보니
어느새 중간지점까지 올라왔을까 문득 위쪽을 처다보니 저 멀리
위에서는 난데없이 이웃집 구멍가계 아줌마 가족들이 내려오고
있는게 아닌가.
행여나 그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소문에 휘말릴 걱정에 황급히
팔장을 풀랴 어깨에 둘러맨 핸드백을 돌려주랴 그리고 서로가
모르는 사이처럼 저 만치 떨어지는 등 그야말로 한바탕 소동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다.
이럴껄 가지고 왜 그렇게도 팔장은 끼자고 했는지?.........
대체 우리사이 어쩌시려고 이러실까?...........
조금전 집을 나설때의 그 수줍움은 아니 벌써 어디에다 버리셨는지
이웃집 가족이 멀어지기가 바쁘게 손가락 마주 끼면서 꼭잡고서는
둘이서 한몸처럼 붙어서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오르긴 했었지만
가슴은 물론 전신이 덜~덜~ 떨리기만 할 뿐 문간방 총각은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그때였다.
♬활짝 핀 백합처럼 우리사랑 꽃 필때 아~아~..........♬
나훈아님의 이 노래를 은방울 굴리는 고운 음성으로 불러 주셨다.
애틋한 노래가락이 끝날즈음 갑자기 문간방 총각의 양볼에다
연분홍 고운입술 자국마져 선명한 뜨거운 키스를..........
그날 닥쳐온 작은 이 소동이 그만 돌이킬수없는 사랑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끝없이 밀려오는 첫사랑의 시련"에 시달리게 될줄은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체..........
끝.
※ 언제나 재미없는 필자의 글
끝까지 읽어주시는
송설친구 여러분!
고맙기도 하지만 죄송하기도 하네요
좀더 멋있고 좋은 글 올리지 못해서........
첫댓글 첫 사랑은 꿈인듯 사라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