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고황
그간 나는 봄방학 기간 동안 들녘으로 나가 냉이와 쑥을 캐 찬거리로 써 오고 있다. 식탁에서 봄내를 잘 맡고 있다. 들녘 산책을 겸한 봄나물 채집은 어느새 여가활용이며 취미활동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면서 덤으로 하나 더 얻은 것이 들꽃 감상이었다. 큰개불알꽃과 광대나물꽃은 한 달여 전에 보았다. 며칠 전 냉이꽃과 꽃다지가 피어난 것도 홀로 완상하였다.
들꽃만 본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매실나무 꽃눈이 몽실몽실 부푸는 것도 보았다. 산수유나무에서도 노란 꽃망울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모습도 눈여겨보았다. 삼월 첫날은 토요일이었다. 바깥은 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신학기를 앞둔 때라 개학하면 교실 수업에 들 교재연구를 하면서 집안에 조신하게 머물 셈이었다. 그런데 몸이 근질근질해 마음이 흔들렸다.
마침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는 친구가 전화가 와 점심자리를 갖자고 했다. 자기네 학교 야구부가 전국대회 결승전에 올라 시합하는 날이라 응원 나갔더니 비가 와 취소되었단다. 같은 학교 학부모 업무를 맡은 여자 동기와 함께 있다면서 도교육청에 장학사로 근무하는 동기와 동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이웃이라 둘은 같은 시내버스로 이동했다.
창원역에서 멀지 않은 청국장집에서 대학 동기 넷이 자리를 같이했다. 낮이었지만 마음 편히 보쌈수육으로 맑은 술을 몇 잔 들었다. 서로는 자주 만질 못하고 전화도 뜸했다. 장학사 친구는 교장 자격연수를 받아 머지않아 학교 관리자로 나갈 예정이었다. 교감 친구는 올봄에 교장 자격연수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여자 동기는 승진 대열에서 멀어져 가는 모양이었다.
중등으로 건너온 나는 승진과 담을 쌓고 교실 수업에 꼬박꼬박 들어가야 했다. 동기 셋은 공통화제로 신학기에 맡겨진 학교 특색 과제 해결을 위한 정보를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와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지만 공감 가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교단 언저리의 이모저모를 되짚어본 자리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점심 식후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머릿속 구상을 짚어보았다.
장학사 친구는 새로 부임할 분에 대한 업무보고 준비를 위해 휴일 시간외 근무를 하러 가야된다고 했다. 여자 동기는 집으로 돌아갔다. 교감인 친구는 시간의 제약이 없다기에 시골 들녘으로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비는 옷이 젖지 않을 만큼 실비로 가늘게 내려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북면 승산마을 산기슭에서 텃밭을 가꾸는 지인한데 전화를 넣었다. 텃밭 방문을 흔쾌히 환영했다.
친구와 화천리에 내려 막걸리 두 병과 두부를 한 모 샀다. 그새 텃밭 임자인 지인은 차를 몰아와 우리를 태우러왔다. 나는 운동화였다만 친구가 구두를 신고 있어 지름길로 야트막한 산자락을 넘기엔 무리인 듯했다. 지인은 승산마을로 가는 아스팔트도로를 가다가 포장이 되지 않은 산모롱이를 돌아 텃밭으로 들어갔다. 동행한 친구는 처음으로 가 본 지인이 가꾸는 분재농장이었다.
학교 현장 업무에만 파묻혀 살아왔던 친구는 근교 텃밭을 무척 부러워했다.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분재와 유실수들이 자라는 텃밭이었다. 방사시켜 볏이 검붉고 튼실한 토종닭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친구는 지인과 첫 인사를 나눈 자리에서 가져간 곡차를 비우면서 금세 친밀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도 성장지가 시골이라 어릴 적 땔나무도 해오고 농사일을 많이 도왔다.
내가 텃밭에서 눈여겨본 관찰 포인트가 있다. 그간 찾지 않았던 며칠 새 매실나무 꽃눈은 얼마나 부풀었는지 가늠해 보았다. 개학하면 바빠 한동안 들리지 못할 텃밭이었다. 산수유꽃은 매화보다 더 화사하게 피어났다. 내가 친구 보고 비가 부슬부슬함에도 근교 텃밭으로 나가보자고 제안한 뜻은 봄이 오는 길목에 피어나는 꽃망울이 궁금해서였다. 이 정도면 깊은 천석고황이다. 14.03.01
천석고황(泉石膏肓) :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性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