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처럼 가을이 피었습니다.
바람 부는 날 하동 북천에 가고 싶었습니다.
이명산 너머 직전리 넓은 들녘
하늘하늘 물동이 인 처녀허리같은 코스모스와 소금을 뿌린 듯 숨 막히는 메밀 내음 안으러 고불고불 황토재 넘어가는 수고도 아끼지 않을것입닏.
짙은 푸르름으로 터질것만 같이 티없던 그 쪽빛 하늘도 구름 제껴내고 누런 나락 논으로 내려와 앉아 버린다는 그 들녘으로
바람 부는 가을 날 가슴이 시리도록 그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메밀밭 어귀 아무렇게나 자란 감나무가 황금색 가을 빛으로 물들면 거기서 당신과 함께 흙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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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여일이나 북천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언제 갈꼬? 언제 한번 가 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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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3일 토요일 나는 하동군으로 일일테마여행을 떠났다.
먼저 악양만 평사리 최참판댁 토지문학제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천에 들리기로 하는 코스를 짰다.
하동은 밀양과 함께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처럼 남아있는 곳이다.
평사리는 벌써 몇번째인지도 모르겠다.
가고 가고 또 가도 언제나 그립다.
그러나 토지문학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생전 처음이다.
평사리 문학관과 박경리 선생 시화전을 둘러보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였다.
아들은 미술대회에 참여하였으나 그림을 망쳐서 제출도 못했고
후라이드 백작은 토지퀴즈 도전 골든벨에 참여하였으나 예선에서 탈락하였고
나만 유일하게 대학 일반부 백일장에 나가서 입상을 하여 하동군수상,경남문인협회장 상장과 함께 부상으로 상금을 받았다.
노는 입에 나발 분다고 각자 나누어서 나발을 불긴 불었는데
우리집 두 남자의 나발은 깨어지고 찢어져버렸는데 그래도 내 나발은 아직 건재한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거금이 생겼으니 어찌 아니 기쁘랴?
남는 시간에는 천연염색 체험도 하고, 대장간 체험도 하고
최참판댁 황금색으로 물들은 토지도 둘러보고 허수아비 전시도 둘러보고
벼타작, 콩타작, 떽메치기, 엿치기, 쌀튀밥 뻥튀겨보기, 새끼꼬기, 이엉잇기 등 체험들을 빠짐없이 하였다.
가장 좋았던 것은
산림조합에서 주관하는 햇밤, 고구마 구워먹기 체험이었는데 초가집 마당에 가족별로 둘러앉아 하동군 생산의 건실한 햇밤과 고구마를
번개탄위에 석쇠를 놓고 실컷 구워먹는 일이었다.
배가 터지도록 구워 먹다 먹다 다 못먹고 생밤 두어 되를 더 얻어왔다.
하동군의 자랑 대봉감도 따고.... 목화밭, 메밀밭, 조밭, 수수밭, 옥수수밭,.....
내 어릴적 가물가물하는 기억속을 다 헤집고 다녔다.
4시쯤 되어 이제 내가 그렇게도 가 보고 싶어했던 북천으로 차를 몰았다.
가늘가늘 처녀허리 같은 코스모스 한껏 휘어 꺽고 싶은 마음에
소금 친듯 숨막힐 듯 뿌우연 메밀꽃 자태에 가슴 한껏 떨리고 싶은 마음에
해지기전에 그녀를 보리라.......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꼬불꼬불 황토재를 넘고 넘어 달려갔다.
아아.....
6만 3천여평의 코스모스와 12ha에 걸친 메밀밭
이들의 절묘한 조화
때마침 하늘마저 쪽빛이라 남비구 들녘에 머문 내 발걸음이 사그락사르락 저 아련한 추억속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시리도록 들녘을 내 눈속에 다 넣어두고서 메밀공동작목반이 운영하는 천막속으로 들어갔다.
상금으로 마음껏 썼다.
공짜 돈은 진짜 팍팍 써야된다.
그냥 놔두면 똥 된다고 어릴적 어른들이 귀따갑게 말했다.
100% 순수 천연 순 진짜 정말 사실, 진실, 의 메밀묵과 메밀국수, 메밀묵사발, 메밀부침개, 메밀떡 ....
메밀로 만든 것이라면 무조건 다 맛을 보았다.
메밀은 겨울철 비타민의 보고이지 않은가?
추운 겨울 날 메밀묵~~~~~~~ 하고 지나가는 어느 총각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아련하다.
그 메밀묵을 사태가 나도록 먹어보다니..
친정 엄마 생각이 나서 몇 모를 더 샀다.
내 어릴 적 멜랑꼬리 정여사는 자주 자주 메밀묵을 해 주었었다.
추운 겨울.... 이가 따닥따닥 맞부딪히는 그 언 겨울날 저녁
등잔불 아래서 그 차가운 메밀묵을 먹으면서 나는 작고 어여쁜 하얀 메밀꽃을 먹는다고 생각했었다.
메밀꽃의 꽃잎 만큼이나 맛났던 그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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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분좋게 아들 녀석에게 용돈으로 10,000원을 주었다.
공짜돈이니 팍팍 쓰자 싶어 거금 만원을 디밀었더니 아들 입이 귀에 가 걸렸다.
그렇다면 아부 한마디 할 수 밖에 없다.
-엄마는 어디 나갔다 하믄 무조건 상타노? 돈을 타던지 아니면 물건을 공짜로 갖고 오던지? 엄마는 복이 많은거제 맞제?
아들의 아부성 발언에 기분이 하늘을 난다.
나는 또 다시 운전하는 후라이드백작에게 용돈으로 10,000원을 주었다.
남자에게는 무조건 공평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이므로 어른이나 아이나 용돈은 균등해야 한다.
그랬더니 후라이드 백작 거금 만원에 입이 찢어진다.
그렇다면 아들보다 더한 아부를 해야지 않겠는가?
-당신은 어째 불패를 모르고 사노? 우리가 결혼한지 25년이 넘었는데 아직 나는 당신이 어디 나가서 실패하는 꼴을 못봤데이
무대 체질도 맞고, 대회 체질도 맞고..... 우찌 그리 성공만 하고 사노? 불패신화라는 당신 별명 아직까지 유력하데이
하하하..
아이고 두 남자에게 아부를 팍팍 받고 보니 아랫도리에 힘이 진뜩하니 도는것이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그래, 나의 좌우명이 무엇이었던고?
첫째는 부지런하라
둘째는 밖에 나가 집에 돌아올때는 반드시 빈손드로 돌아오지 말라
가 아니었던가?
하다못해 길가의 못이라도 하나 들고 들어와야 되는 것이 내 인생의 철학 아니었던고?
이것이 곧 바르게 사는 길이요, 부자로 사는 길이요, 성실하게 사는 길이 아니었던고?
우리 아들 작년에 절대 빈손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이 에미 말에 순종하면서 길에 내다버린 자전거 바퀴도 두 짝 주워다 놓고
철사줄도 주워다 놓고 하더니만 요즘은 살만한지 토옹 중학교 들어가고부터는 빈손으로 다니는 것이 영 내 맘에 들지 않는다.
안되겠다.
내일부터 정신교육 단단이 시켜서 <전 가족의 빈손 퇴치 일치화>에 힘써야 하겠다.
-경남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남비구들녘의 메밀꽃 축제는 10월 말까지 계속됩니다.-
**평사리의 초가지붕과 박 and 북천면 메밀꽃밭 사진 보이소
첫댓글 불패신화...들판님..삶은 언제나 역동적입니다. 좋습니다..여행담 재밌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