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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진실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JMS는 폐쇄적이고 비도덕적인 종교집단이 아닙니다.
27년여 되는 짧은 기간에 기독교복음 선교회(JMS)가 국내 400개 교회와 해외 50개국, 20만의 젊은 청년이 모이는 선교단체로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JMS 정명석 총재의 열린 종교관과 세계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개방적인 선교자세로써 문화선교의 모델이 되고 있으며 “구원이란 곧 상실된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작품이다.”라는 JMS 정명석 총재의 말씀에 따라 문화예술, 스포츠, 학문 등과 신앙의 조화를 가르치며 전인적 인간개발에 노력해왔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는 직접 전국과 세계를 순회하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경의 진리를 전할 뿐 아니라 앞선 예술과 문화를 창조하고 전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JMS 정명석 총재의 “오직 사랑하면 평화가 오리라”는 가르침과 실천적인 봉사의 삶을 본받아 선교회 회원들은 월드컵 경기와 아시안 게임 등의 세계적인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밝은 미소 캠페인’ 등의 자원 봉사로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지역 사회의 건전한 문화 예술 보급과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으로 많은 자치단체장으로부터 수상과 격려를 받은 바 있습니다.
<해외도피는 분명한 오보>
JMS 정명석 총재는 예정된 해외선교를 위하여 1999년 1월 한국을 출국하였다가 그 후 3차례 한국에 들어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정상적으로 출국하셨습니다.
1999년 6월에는 방송, 언론사와 반대세력들의 잘못된 제보로 인한 진정 등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불기소 처분되었으며, 2000년 3월에도 반대세력들에 의한 여성관련 성문제로 형사고발 되었으나 조사 후 불기소 처분 되었고, 2001년 2월에도 역시 반대 세력들에 의하여 무고죄로 고발되었으나 무혐의처분 되었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는 현재까지 한 차례도 형사처벌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현재 계류 중인 사건은 2001년 무혐의 처분을 받고 출국한 이후 계획된 해외선교활동 및 말씀집필로 귀국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대세력의 악의적 진정 등이 계속 이어져서 여러 사건이 기소중지 되는 가운데 영장이 발부되고 수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JMS 정명석 총재님께서 들어오셔서 진실을 밝힐 것입니다.
<7년간 해외선교의 성과>
지난 7년간 JMS 정명석 총재는 기독교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로마로부터 시작해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남미 전역을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며 잊혀져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는 몸부림치는 기도와 헌신을 통해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1회 세계평화대회를 개최한 이래 프랑스, 독일, 영국, 하와이, 대만, 일본,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9차례에 걸친 세계 평화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아시아, 유럽, 미국대륙 안에 복음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알리는 국위선양까지 했던 것입니다.
특히 2002년 한국의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치러진 6차 지구촌평화문화연합대회에는 연인원 20만 관중에 16개국 회원이 참여하는 큰 규모의 행사가 되어 월드컵 이후 또 한번 한국을 떠들썩하게 하였고 한국을 세계로 또 한번 크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7년동안의 해외선교는 구원에 관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구원론을 비롯한 예정론, 사랑과 평화의 베트남전, 영감의 시, 하늘 말 내말 잠언집,등이 JMS 정명석 총재에 의해 집필되었고 그리고 일필휘지의 수많은 수묵화작품들이 잉태된 기간이었습니다.
<언론에 의한 왜곡 편파보도>
소문과 다른 사실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JMS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는 자극적인 주장으로 생떼를 부리는 몇 몇 사람들과 공중파 매체라는 거대한 무기를 가진 방송에 의해 모욕적인 상처를 부당하게 입었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폭력 관련 고소인들은 모두 반대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반대세력의 제보에 의한 방송에 이들은 늘 함께 했으며 기자회견장에도 함께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반대세력들의 악의적인 제보를 무차별적으로 계속 받아들여 마치 사실처럼 보여지도록 편집하여 보도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소송계류 중인 사건에 관한 편파적 방송과 보도는 민, 형사사건의 공정한 판결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잘못된 시도라 아니할 수 없으며 마땅히 자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책임하고 경솔한 일부 언론의 보도는 JMS 정명석총재를 중한 범죄인으로 매도하였고, 언론의 보도내용이 법정에 참고자료로까지 제출되는 등 정당한 재판에까지 영향을 끼쳐왔었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가 처음으로 이 사회에 소개된 것은 1999년 초입니다. 당시 서울방송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성추행,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말세론적 종교관, 통일교 아류 등 종교인으로서는 매우 수치스런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 후, JMS 정명석 총재의 세계 선교 활동으로 인해 서울 방송의 추적 취재가 진행되었고 이어 '도피행위'라는 딱지도 하나 더 붙었습니다. 우선 여기까지 일을 짚어보겠습니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주장한 내용 중 성추행에 관해서는 재판부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었고 이후 JMS 정명석 총재는 세 차례 귀국하여 검찰의 조사에 성실한 답변을 하고 무혐의로 재출국했습니다. 이로써 당시 제기되었던 성추행 의혹은 사실상 일단락되었습니다.
방송 보도는 재연 화면과 얼굴을 가린 자칭 피해자의 자극적인 증언도 담아 매우 실감있게 구성을 했으나 재연 장면은 현실성을 벗어나 픽션의 인상을 남겼고 자칭 피해자의 증언 근거는 매우 미약했으며 그가 당사자인지의 여부도 불확실했습니다.
또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문제, 방송에서는 JMS 정명석 총재가 성도들에게 앵벌이를 시켰다고 하는 매우 과격한 표현마저 사용했습니다. 사회에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금전 문제입니다. 성직자의 성(性)과 금전 관계는 매우 자극적입니다. 여론의 폭풍 같은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너무도 좋은 소재였습니다만 결국 이 주장도 근거가 없어 유야무야되었습니다. 본 단체의 회원 중 그 누구도 속칭 앵벌이에 동원되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종말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가 1999년에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고 강조하며 신앙에 몰입할 것을 종용했다는 식이었습니다. 종말론적 신앙관은 건전한 사회인으로 하여금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내세에 전념하게 하여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신앙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방송은 그렇게 JMS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JMS)를 사회악으로 매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JMS 정명석 총재의 설교나 교리, 그리고 본 단체의 신앙 활동을 들여다보면 어느 곳에서도 종말론적 신앙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말세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가르치며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신앙생활을 주창한 JMS 정명석 총재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JMS 정명석 총재에게 종말론적 사교주의 이미지를 애써 덧씌우려 했습니다.
서울방송은 또 JMS 정명석 총재를 통일교의 아류로 폄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도에서 그런 평가를 내려준 사람은 JMS 정명석 총재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본 단체의 교리나 신앙 신조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나 데려다가 증인이라고 세우고 전혀 공인받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증거로 삼아 평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론은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그 판단은 시청자가 하는 것이 정상적인 보도 태도일 것인데 말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이며 체험에 바탕을 두는데도 언론은 바깥에서 흘깃 바라본 외양만을 보고 본 단체의 신앙을 판단해 버리는 오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를 죄인으로 부각시키려는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JMS 정명석 총재를 향한 언론의 첫 접근은 객관성을 한참 비껴갔습니다. 당시 담당 피디는 객관성을 유지하게 위해 JMS 정명석 총재, 혹은 본 단체의 지도부의 의견을 반영하려했다 합니다만, 결국 본 단체는 법원을 통해 반론보도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이는 방송 보도 내용에 본 단체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또한 본 단체의 요청이 서울방송으로부터 묵살당했던 터라 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서울방송은 JMS 정명석 총재가 '십일 조(열의 하나)'에 관한 설교를 하던 중 '열의 하나 전도 해'라고 한 말을 '여자 하나 전도 해'라고 자막을 사용해 보도함으로써 JMS 정명석 총재가 여성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왜 이토록 서울 방송은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집착했을까요? 물론 언론인에게 진실을 밝히려는 정의감이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 해도, 당시의 취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가지고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이미지를 꿰맞춰야 하는 강박관념에 몰려 정도를 벗어났음을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JMS 정명석 총재의 부도덕을 고발한다는 제보자의 주장은 언론인의 정의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한 단체의 지도자와 그를 상대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 이 둘을 비교하면 당연히 사회 정의를 꿈꾸는 젊은 언론인의 가슴은 소수의 약자가 뿌리는 눈물에 출렁거렸을 것입니다. 거기에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는 그 소수의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호사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할 만한 특종으로 키워졌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로부터 성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여성들 옆에는 항상 김도형과 김영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라는 사람들에게 JMS 정명석 총재를 공격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때로는 자신들이 직접 그들의 수장을 자임하며 JMS 정명석 총재 공격의 선봉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방법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욕설과 폭언, 입에 담기에 부끄러운 상스런 말들이 바로 그들이 보여준 내면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의 인격이하의 행동들은 여러 차례 법원으로부터 경고와 처벌을 받았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적 부도덕'이라는 공격.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JMS 정명석 총재가 철저하게 대응하는 요소입니다. 본 단체의 신앙 생활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성적 순결성입니다. 사랑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데 가장 고귀하고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올바로 알고 감당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에 눈을 뜨기 전에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신앙으로 사랑을 배우자는 것이 총재의 제 일의 가르침입니다.
JMS 정명석 총재로부터 시작된 본 단체는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진리탐구의 열정이 많은 연령층입니다. 반면 가장 혈기왕성하고 명예와 성공에 대한 야망도 많은 때입니다. 바로 그런 젊은이들의 진리탐구 열정을 성경 말씀으로 채워주었던 JMS 정명석 총재였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참사랑의 도를 가르쳐 일탈의 유혹을 다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자신의 야망과 사랑을 접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본래 JMS 정명석 총재와 함께 가는 길은 구도의 길이요 헌신의 길이 우선이나 젊은 혈기로 자신들의 야망과 욕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JMS 정명석 총재를 따르며 야망을 성취하고 명예를 얻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JMS 정명석 총재의 가르침은 연륜이 깊어갈수록 선행과 헌신의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자들은 결국 JMS 정명석 총재를 떠나기도 했고 자신들의 지난 세월들에 대한 상실감을 보상받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JMS 정명석 총재의 성품과 본 단체의 체제에 대해 익숙했기 때문에 어떻게 공격하면 JMS 정명석 총재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바로 피해자요 제보자라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김도형, 김영수도 그들 중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목적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 모든 탓을 JMS 정명석 총재에게로 돌린 그들은 돈으로 보상받고자 했음이 여러 차례 드러났습니다. 지난 2005년에 김도형이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 취하와 자신과의 화해 조건으로 JMS 정명석 총재에게 20억 원을 요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애초부터 <반정명석 총재그룹>을 이끌던 김도형의 활동 목적이 결국 일확천금을 얻어보겠다는 야심이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며,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와 취하 여부도 김도형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정도로 그 여성들의 활동 역시 김도형의 목적에 부합하여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본 단체는 JMS 정명석 총재를 고소한 한 여성이 <반정명석 총재그룹>으로부터 'JMS 정명석 총재를 고소하면 유학 경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습니다.
피고(서울 방송)는 이 사건 화해권고결정 확정일 이후에는 프로그램 명칭여하를 불문하고 소외 김도형, 김영수의 직접적인 제보 또는 자료제공 등에 의한 원고(JMS 기독교 복음 선교회)측에 관한 방송을 제작, 보도하지 아니한다.
이 문구는 2004년 본 단체와 서울 방송사이에 이루어진 화해 권고 결정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동안 서울 방송에서 주 취재원으로 활용했던 김도형 김영수의 본 단체에 대한 자료 제공이나 제보가 옳지 않았다는 것을 법원에서 판단하고 서울 방송에서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의 거의 모든 언론 보도는 바로 이 두 사람에 의한 제보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아울러 위 결정문에서는 서울방송이 본 단체에 관련되어 보도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 48시간 전에 그 내용을 본 단체(JMS)에 고지하고 보도 내용에 대해 5% 분량으로 본 단체의 반론을 방송하도록 명시되어있습니다.
이는 해당 언론사의 임원의 고백대로 언론이 백기를 든 것과 같은 것이며 그동안 JMS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대한 서울 방송의 보도 태도가 지극히 편향적이었음을 법원과 서울 방송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3년에는 JMS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영수라는 사람이 당시 홍콩에 머물고 있던 JMS 정명석 총재의 집을 습격해 구타를 하며 이를 촬영해 언론에 제보하고 또한 인터넷에 유포하며 심각하게 JMS 정명석 총재를 조롱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방송의 <세븐 데이즈>에서는 이를 그대로 보도했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그 동영상이 심지어 인터넷 상에서도 유포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극도로 흥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감정을 억누르며 신앙인의 본 자세를 굳게 지키려 하였으나 그 중 네 명의 대학생이 분한 마음으로 김도형과 김영수를 찾아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김도형과 김영수를 만난 자리에는 <시사저널>의 신호철 기자가 와 있었습니다. 신호철 기자도 역시 김도형 김영수의 제보를 토대로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기사를 작성코자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호철 기자를 알아볼 턱이 없었던 본 단체의 청년들은 바로 김영수 김도형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시사저널>의 신호철 기자는 그들과 한 패로 오인받아 몸싸움에 휘말렸습니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몸싸움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된 일임을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JMS 정명석 총재)을 나이도 한참 어린 사람이 폭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에 그 장면을 유포하면서 모욕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입니다.
이런 악연으로 신호철 기자는 김도형, 김영수에 필적할 만한 반 JMS 정명석 총재 집단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노골적인 자세는 그의 기사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단 본 단체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며 기사의 논조를 고착시켰습니다. 그가 홍콩에 JMS 정명석 총재가 거주했던 집을 사진으로 게재하면서 JMS 정명석 총재가 홍콩의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JMS 정명석 총재는 사진에 게재된 집의 2층에 방 두 개를 세를 얻어 쓰고 있었습니다. 기자의 붓놀림 하나로 지극히 검소한 삶이 지극히 호사스런 삶으로 탈바꿈해서 여론에 전달되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되도록 JMS 정명석 총재를 부도덕하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는 홍콩 이민국 감호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올 때 홍콩 달러 10만 불을 지불했습니다. 이는 한화로 약 천 만 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호철 기자는 굳이 미화 10만 불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약 1억 원의 금액으로 실제와 8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분명한 오보였습니다.
물론 사안의 핵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없는 것은 이 같은 언론의 의도적인 매도행위가 암암리에 JMS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를 지속적으로 옭아매왔고 설상가상으로 이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JMS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게 하는 소위 '왕따 만들기'의 효과를 톡톡히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본 단체와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의 그동안의 시각도 상당히 기울어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과 또 그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처음부터 이렇게 부정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보도태도를 지금까지도 이어오면서 몇 몇 언론은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점잖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일반인에 보여주는 언론의 공명정대를 가장한 제스쳐일 뿐 이미 JMS 정명석 총재가 돌아오면 뭇매를 들이댈 삐딱한 몽둥이를 감추고 있음을 본 단체는 충분히 헤아리고 있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는 1999년부터 세계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총재는 1978년 복음 사역을 시작한 때부터 20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고 그 후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 시점이 바로 1999년이었습니다. 그 것이 공교롭게도 서울방송의 보도 시점과 맞물렸고 JMS 정명석 총재의 세계 선교는 마치 소송과 언론 보도를 피하려 했던 것으로 오인되었습니다. 오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JMS 정명석 총재가 1999년과 2000년 2001년에 입국해 검찰 조사에 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쳐 조사에 응하는 그 시간들은 JMS 정명석 총재에게는 참으로 소모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을 각오하고 출국한 발걸음을 다시 돌이키기를 세 차례나 한 이상 더 이상 이같은 일로 무의미한 시간을 쓴다면 본 단체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한창 선교에 불이 붙은 외국 현지에서는 그나마 총재로부터 시작된 선교의 열정이 자칫 수그러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에게 주어진 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20만 회원들의 삶의 방향이 뒤바뀌고 때로는 한 생명의 죽고 사는 문제까지 좌우되기도 합니다.
이에 JMS 정명석 총재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어떤 고소 고발로 총재의 발길을 잡아두려 한다 해도 거기에 일일이 대응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혹 여러 가지 오해를 받고 누명을 쓰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소명을 이루는 것이 더 우선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단체의 수장의 위치며 또한 세속의 관심보다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명자의 노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명과 위치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판단의 가치기준이 다릅니다. JMS 정명석 총재가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불신과 모욕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간 이유는 그가 진정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JMS 정명석 총재 스스로도 어찌 오해를 벗고 싶지 않겠으며 타인의 찬사를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자신의 오해를 벗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당장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는데 쓰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영광과 당당함을 갈망하여도 당장에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듣고 처절한 험곡의 길을 택한다면 그가 진정 신앙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JMS 정명석 총재와 본 선교회는 일부의 부정적인 선입관과 오해로 인하여 크나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검정되지 않는 자료를 짜집기한 왜곡되고 편파적인 방송을 통하여 지금까지 각고의 몸부림 속에 사회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온 본 선교회의 명예훼손은 물론 선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작년 말 캘리포니아 전역에 걸친 산불은 50만명에게 긴급대피령이 내려졌고 2천채의 가옥이 파손되었고 수많은 이재민과 9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조사결과 한 소년의 방화로 시작되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본 단체에 대한 몇몇 악의적인 감정을 지닌 이들이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미명하에 내질러놓은 만행으로 받은 JMS 정명석총재와 기독교복음선교회의 회원들이 받은 고통과 피해는 어디에서 받아야 합니까?
JMS 정명석 총재는 유년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저 교회를 열심히 다닌 차원이 아니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또 말씀대로 실천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2천 번이 넘도록 성경을 읽으며 주야로 기도하고 전도하였습니다.
JMS 정명석 총재는 거지와 부랑자를 데려다 같이 먹고 재워주었으며 월남전에 참전하여서는 70회가 넘는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소생하여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도 체험하였습니다. 하루 앞의 생사를 내다볼 수 없는 전쟁터에서조차 성경을 품에 안고 읽으며 그 가르침대로 행동하다 보니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JMS 기독교복음선교회의 회원들의 신앙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JMS 정명석 총재가 가르친 말씀과 행동이 상식적으로 옳았고 또한 그대로 실천하니까 즐겁고 행복한 삶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JMS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어떠한 편견과 오해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대처해 갈 것이며, 무수히 많이 남아있는 JMS 정명석 총재와 기독교 복음 선교회의 진면목을 밝힐 수 있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사회의 본이 되는 건전한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현 사태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함으로써 언론의 바른 위상을 성실히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정보 유출 사고로 인해 검게 채색되어진 JMS 정명석 총재의 참 모습은 건전한 시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스며든 마녀사냥의 찌꺼기를 닦아낸 후에야 비로소 바로 보일 것입니다. 언론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실을 바로 알리기를 원한다면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편향적인 정보 유출을 멈추고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진실을 투명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지극히 객관적인 자리에 멈춰 서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정 능력을 가진 거대한 바다에 유화제를 뿌려 2차 오염을 일으키는 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JMS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JMS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주장>
1. 음해세력 및 이들과 결탁하여 피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언론을 악용하여 근거없고 무책임한 폭로를 일삼지 말라.
2. 언론인은 피의자 및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된다는 점을 유의하여 경칭을 사용하는 등 그의 명예와 인격을 존중하고 개인이나 단체를 저속하게 표현하여 명예를 훼손하지 말기를 촉구한다.
3. 재판부는 일부 왜곡된 방송보도를 사실인양 증거로 채택하여 불리한 판결을 내리지 말고 최대한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
[JMS/정명석 총재]
웨슬레 신학을 졸업하고 기독교복음선교회를 창립했다. 스리랑카의 유네스코 산하 오픈인터내셔널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의 총재로서 매년 평화를 위한 예술, 스포츠 등의 활발한 문화교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영감의 시> <하늘말 내말> <비유론> <생명의 말씀> <새벽단상> <구원론> 등이 있다.
JMS란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라는 의미로 시작되었으나
JMS가 정명석 목사님의 이니셜과 같다하여 단체명을 현재의 기독교복음선교회로 개명.
그러나 계속 언론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JMS라고 저희 단체를 지칭하고 있기에
저희도 JMS가 아니라 할 수 없어 JMS라고 합니다.
JMS는 언론의 보도처럼 성적으로 문란한 곳이 아닙니다.
JMS는 지구촌 어느단체 보다도 깨끗하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JMS는 술도 담배도 마약도 전혀 하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이성적으로도 아주 깨끗한 곳이 바로 JMS입니다.
언론의 보도만 믿지 마시고 가까이 있는 JMS 교회를 가 보세요.
JMS 정명석 목사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JMS의 교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시고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새벽별들의 모임 JMS
첫댓글 아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