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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 21일 Sat.】 Good Morning
【의병의 날과 곽재우】
2011년에 제정된 '의병의 날'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이들의 애국애족정신을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1552~1617)가 의령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로 제정했다.
2011년 제1회 의병의 날 기념식은 경남 의령에서 개최됐다.
곽재우는 전형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실천한 인물이었다.
곽재우는 정암진 전투 등에서 왜적의 진군을 차단하면서
조선군이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전세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작 1604년에 이루어진 공신 책봉에서 그 공을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의 왕 선조는 자신을 수행해
피난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에 대해서는
호성공신(扈聖功臣)이라 하여 86명이나 책봉했지만,
직접 전쟁에서 싸운 데 공을 세운 선무공신(宣武功臣)은
16명밖에 책봉하지 않았다. 그나마 곽재우는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생존했다는 이유로 공신에 오르지 못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의병장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호남 의병장 김덕령은 역모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후
심한 고문 끝에 죽었다. 곽재우는 자신에 대한 조정의
감시가 심해지자 산으로 들어가 벽곡(壁穀)을 해
솔잎만 먹으면서 세상을 피했다. 김덕령이 뛰어난 용맹과
힘을 지니고도 모함에 빠져서 비명에 죽은 것도
곽재우의 은둔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곽재우나 김덕령 같은
의병장들의 쓸쓸한 말로는 일제 강점 시기 치열하게 항전했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던
현대사의 한 단면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역사의 잘못된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시대에는 국가에 헌신한 인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 작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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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 지음
【조선 산책】
- P. 85 ~ 89 중에서
옮긴 이 : S.I.AHN (요셉)
*벽곡: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이나 대추, 밤 따위를
조금씩 날로 먹음
*선무공신 :조선 시대, 1604년에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 권율 등 18명의 무신에게 내린 훈공
*호성공신: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이항복 등 86명에게 내린 훈호